[특집] 지우변(知愚辨)

특집 · 새해에 부친다

2008-01-02     이은상

 불교에서는 지혜를 가장 귀중하게 여기는 것이다. 모든 일의 옳고 그른것、바르고 굽은 것을 판별할 수 있는 힘이 지혜이기 때문이다.

 지혜를 높은 산에 비겨서 지산(智山)이라고도 하고、또 맑은 물에 비겨서 지수(智水)라고도 한다.
 그 밝은 빛을 달에 비겨서 지월(智月)이라고도 하고、그것으로써 능히 번뇌를 끊을수 있기 때문에 지부(智斧)라고도 한다.

 이같이 높은 지혜야말로 얼마나 귀한 것인지 모른다. 불교의 모든 경전은 모두다、이 지혜를 가르치는 것이다.
 그러나 참지혜、 높은 지혜를 얻기란 쉬운 것이 아니다、상등지혜에 미처 이르지 못하면、도리어 간휼한 지혜로 떨어지기가 쉽다. 그것이 이른바 간지(奸智)다. 교지다. 악한 지혜다. 사이비(似而非)지혜다.

 그러한 지혜로서는 도리어 자기 스스로를 망치기도 하고、또 그것으로 인간사회에 해독을 끼치는 일이 허다한 것을 본다.

 그러므로 옛사람들은、설익은 지혜보다 차라리 어리석은 것을 취했던 것이다. 오히려 어리석은 것을 더높이 평가하기도 했다. 우직한 것은 남을 해치는 일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불경에서는 어리석은 사람을 천애(天愛)라고 썼다. 하늘의 사랑을 받는 사람이란 뜻이다. 천진(天眞)한 사람이다. 상지(上智)와 대우(大愚)를 같이 보는 까닭도 바로 거기에 있다.

 그러기 때문에 지자(智者)도 아니요 우자(愚者)도 아닌 자가 가장 제도하기 어렵다고 했다. 위로는 지혜에 이르지도 못하고、아래로는 어리석음에 미치지도 못한 、이른바 중근(中根)이기 때문이다. 익지도 설지도 않은 얼치기란 속담이 바로 그런 사람을 두고 이른 말이다.

 현대는 과연 제도하기 어렵다는、이른바「智도 아니요、愚도 아진 者」들로 가득찬 시대인 것만 같다. 현대를 타락한 시대라 하고、죄악의 시대라 하는 까닭이 바로 그 때문인 것이다.

 순후한 시대에는 차라리 어리석은 사람들이 많았는데、오늘은 어리석은 사람이 없다. 모두 다 아는 척하는 것이 현대인의 특성이다. 그러나 실상 따지면 아는 것이 없다. 저마다 모르는 것이 없는 것처럼 덤빈다. 그러나 사실은 모르는 것밖에 없기 때문에 곳곳이 일일이 저지르기만 하다.

 참지혜、으뜸지혜、깨달은 지혜에 이르기 전에、서투른 사이비지혜를 가지고서는 지자(智者)행세를 말아야 겠다.

 차라리 물러나 어리석은 사람으로 처할 수 있는 공부가 더 필요할 것이다. 그것이 참 지혜를 얻는 경지에 이를 수 있는 지름길이기 때문이다. (1677년을 맞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