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볕 더위

2008-01-02     관리자

벌써 2주째 불볕더위가 계속되고 있다. 일부 지방에서는 섭씨 삼십 오륙도를 오르내리는 열기로 닭, 돼지들이 열사병에 걸려 떼죽음당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오늘도 어지간히 찔 것 같다. 선풍기에서 토해내는 바람이라고 그저 후덥지근하기만 하다. 나는 읽던 책을 덮어 놓고 마당으로 나가 라일락나무 그늘에서 신문을 펴 들었다.

복더위 2주째 계속,

피서탈출 3백만 명

하루 익사 65명,

크고 작은 활자들이 극성스러웠던 휴일의 표정을 되새긴다. 어느 해수욕장 공중 촬영 사진에는 '70만의 목욕탕' 이란 제목이 붙어 있다. 영낙없는 섣달 그믐날의 목욕탕이다.

'이건 고역이다. 사서 고생할 게 뭐람?'

하고 나는 은근히 ' 피서탈출'에 못 기게 된 것이 잘된 일이라고 자위하고 있는데 아내가 마실 것을 들고 나온다.

'대단하네요'

'한증막이야'

'여름 예찬론자들은 신나 있겠죠?'

아내는 야릇한 미소를 지으면서 내 얼굴을 슬쩍 쳐다본다. 은근히 비꼬아 보자는 심산인가.

'여름 예찬론자'란 바로 나를 두고 하는 말이니 말이다.

내가 사서 ' 여름 예찬론자'의 감투를 쓰게 된 것은 지금으로부터 삼십 년 전, 그러니까 아내 아닌 그녀로부터 아내를 알게 되었을 무렵의 일이다.

그날 우리의 화제는 조금 전에 본 영화 ('죄 많은 여인'이었던가?)에서 시작하여 사람의 혈액형에 대한 얘기며(나는 아내의 혈액형을 그때 알았다.), 좋아하는 계절에 대한 얘기며, 그리고 좋아하는 계절이 아마 그  사람의 성격과 어떤 관계가 있으리란 얘기며, 두서없이 이어져 나갔는데, 그때 나는 내가 좋아하는 계절이 여름이란 것과 좋아하는 까닭에 대해 요설을 늘어놓았던 것이다. 요설이라 함은 그것이 필요 이상의 수식과 허풍으로 점철되었기 때문이다.

젊은 시절의 추억이란 흔히 훗날 얼굴이 화끈거리고 유산들을 남기게 마련이지만, 나의 경우 이 여름 예찬이 그런 것의 하나이다. 생각컨대 나는 그때 여름 예찬에 빗대어 은근히 자신의 삶의 열도가 여름의 화끈함 만큼이나 높다는 것으로 위장하려 했던 것이다. 이를테면 일종의 호랑이 위세를 빌린 여우꼴이었다고나 할까.

-아닙니다. 가을은 애상의 계절, 비생산적입니다. 여름 꽃들을 생각하십시오. 가령 해바라기- 그 꽃 어느 구석에 애상이나 낭비의 군덕지가 있어 보입니까? 생명의 약동과 확충이 있을 뿐입니다. 여름은 실존의 계절이니까요. 그것은 나와 너와의, 그리고 나와 자연과의 만남의 계절이요, 그래서 서로간에 길들이고 길들여지는 사랑이 맺어지는 계절이기도 하답니다. 내가 여름을 좋아하는 것도 여름의 화끈함 때문입니다. 그렇게 살고 싶으니까요-이상은 지금이라면 - 하는 가정에서 시도해 본 요설이다.)

그건 그렇고 아무튼 아내는 그때 고개를 다소곳이 수그린 채 듣고만 있었는데 지금에 와어 걸핏하면 비꼼의 대상으로 '여름 예찬론자'를 들먹인다는 것은 그리 유쾌한 일은 아니다.

'여보, 여름 예찬론자 나리.... 그래 수십 년을 내리 집에서만 여름을 예찬하시던가요? 이 여름도 말이에요.

하는 아내의 마음의 소리가 귓전을 때리는 듯하다.

나는 슬며시 '70만의 목욕탕'을 들어 아내 앞에 내밀었다.

'이 바글바글 좀 보구려. 이거야 고역이지 어디 피서요?'

빤히 쳐다볼 뿐, 아내는 말이 없다.

;뭐니뭐니해도 내 집이 젤이야. 그 이상의 피서가 어딨어?'

해도 말이 없다. 솔바람 강바람에 여름이 식는다는 심산유곡은 어디 두고 하필 '70만의 목욕탕'이냐는 걸까?

아내는 묵묵히 쟁반을 챙기더니 일어서면서 나직이 입을 열었다.

'피서 가고 안 가고가 문제 아네요. 당신의 무기력, 우유부단이 걱정이에요. 겉늙었단 말이에요. 그래도 한때는 여름처럼 화끈하고 싶다느니 뭐니로 허풍이나마 떨 줄 알았는데......'

그것은 실로 면상을 향해 날아드는 스트레이트 펀치였다.

나는 레프리의 카운트소리를 아득히 들으면서 하늘을 쳐다보았다.

순간, 나는 웬 일인지 야릇한 혼미에빠져 들었다. 하늘에 넘실거리는 저 열기도 실은 오늘 한때뿐이고 내일은 자고 일어나면 말끔한 가을 날씨로 변해 있으리란-.

그러자 쨍쨍한 뙤약볕이 늦가을의 애잔한 석양빛으로 서서히 퇴색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