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스님 한암(寒巖)스님 (4)

노사의 운수시절

2008-01-01     관리자

 우리 스님과 운봉스님의 문답은 기막힌 험구의 교환이다. 운봉스님은 조실스님에 대하여 추호도 법을 인정하는 빛이 없고 순 세속 글이나 아는 선비라고 깎아 말하였는가 하면, 이에 질세라 조실스님은 조실스님대로 "이 밥 도적놈!"하는 투로 몰아 세운다. 말이야 한문 문장 격식으로 조용한 말이 오고 갔지만 거기에 담긴 뜻은 기막힌 험구였다. 하지만 번개가 터질듯한 그런 기상에서도 그대로 가라 앉았다. 역시 도인 노름이었다.

8. 마명보살 주소

 유동화스님의 이야기인데, 동화스님은 나이가 그 당시 30세는 되었고 용모가 미남형이었다. 그 해 여름에 북대에서 지냈는데 글을 잘 하였고, 혼자 지내더니 귀찮아서 그런지 머리를 안 깎아 장발을 한 채로 있었다. 가을에 내가 중대에서 스님을 모시고 있는데 찾아 왔다. 스님께 예배드리더니 물었다.

 "기신론에 '일체망념을 수렵제하되 역유제상이라' 하였아오니 어떻게 그 제상을 제하오리까?"

말하자면 망념을 다 보내고 망념을 보낸 상도 또한 없애야 한다고 하였는데 어떻게 제상을 제하느냐는 질문이었다. 스님은 가만히 계시더니 대답하였다.

 "문취마명하라."

마명보살에게 물어 보라는 뜻이다. 기신론은 마명보살이 지은 것이다. 동화스님은 또 물었다.

 "마명이 지금어디에 있읍니까?"

스님의 대답이시다.

 "마시성고과벽력"

[말 울음 소리가 벽력 소리 보다도 더 높은 데]라는 말이다. 동화 스님은 아무 말 하지 않고 스님께 절하더니 물러갔다.

 그 날 저녁이었다. 저녁 공양을 마치고 아까 동화스님께 하신 법문을 들어 스님께 물었다. 나로서는 '마시성고과벽력'이라고 하신 말씀을 그대로 지나칠 수가 없었다. 뜻을 알 것 같기도 하고, 뜻이 분명하지도 않았다. 그냥 있을 수도 없었다. 스님께 여쭈기를,

 "아까 동화스님에게 스님께서 이르시기를 '마시성고과벽력'이라 하셨는데 그것 참 우습군요."

 "그래 말해 봐라. 무엇이 우습지?"

이렇게 스님께서 물으시는데 나는 할 말이 없어 돌아서면서 "마시성고과벽력" 이렇게 했다.

 "예끼놈, 남의 흉내만 내면 나중에 원숭이가 된다."

하셨다. 그 때의 스님의 말씀, 그리고 내가 어리광부리듯 속에 있는 의심을 털어놓고 스님께 대들던 그 때 상황이 지금도 가슴에 역력하다.

9. 성불 못 한 佛

 그 해 삼동에 스님에게서 법화경을 배웠다.

그런데 '대통지승여래가 십겁을 도량에 앉아있어도 불법이 현전하지 않아서 성불하지 못 했다'하는 대목에 이르러서 퍼뜩 생각이 동했다. 그래서 스님께 대어들었다.

 "스님, 이것이 무슨 뜻입니까?"

스님께서 대답했다.

 "수불세수요, 지불자촉 이니라."

[물로 물을 씻지 못하고 손가락은 스스로를 닿지 못한다]는  말씀이시다. 이 말씀을 듣고 나는 마음에 들어 온 것 같으면서도 이상하기도 하며 무엇인가를 알듯말듯 했다. 그래서 또 여쭈었다.

 "그럼 그 뜻이 그렇게만 되어 있는 것입니까?"

 "네가 생각한 바가 있는 모양인데 어디 네 생각을 한 번 말해 보아라."

 나는 얼른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생각이 나지 않아 잠시 생각하다가 대답했는데 아마도,

 "본무여시사입니다. [본래로 이러한 일이 없읍니다.]"라고 대답하였다고 생각이 된다

그랬더니 스님께서는

 "너도 공밥은 안 먹었구나."

하셨다. 이 말씀을 들을 때 나는 참 기뻤다. 약간의 이치를 이해한다는 것을 스님께서 인정하신 것 같아서 마음 속 기쁨은 말할 수 없었다.

10. 날고 싶은 마음

 그 다음에 금강경 오가해를 배웠다. 정말 좋았다. 이런 도리가 다 있는가  하고 신명이 나서 막 동심(動心)이 되는 것이다. 내가 움직이니 하늘이 움직이고, 내가 춤을 추니 해가 춤을 추고, 산천초목도 함께 춤을 추는 것 같았다. 세상에 이런 도리를 가지고 만첩산중에 들어 엎드려 청산만 쳐다보고 있어야 한다는 말인가? 이법을 누가 있어서 아는가! 세상에 알려야지, 포교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동해서 그때부터 발광기가 동하기 시작했다. 생각해 보면 그럴 때 마음을 진압하여야 하는 것인데 거기서부터 마음이 비뚤어져 내 본분이 부스러지는 판이 되었다. 그 후에 금강산을 돌아다니며 백운도인을 만나서 방망이를 주고 석두당을 만나서 큰소리치고 효봉스님을 만나서 끄떡댔던 것이다.

11. 화두 결택

 우리 한암조실스님께서 참선하는데 대하여 어떻게 가르치셨던가. 이에 대하여는 이미 얼마간 그 겉모습이나마 말한 것으로 생각된다. 여기서는 화두 결택에 대하여 한 마디 하겠다. 우리노장님은 누가 화두공부를 물으면 대개 고봉원묘화상 말씀을 많이 인용하셨다. 또 어떤 화두가 좋겠읍니까 하고 물으면 특별히 정해 놓은 것은 없으시고 '시심마' '구자무불성' 간혹 마조스님 법문인 '불시심 불시불 불시물'을 말씀하실 때도 있다. 그리고서 여러가지 화두 중에서 자기가 생각해보아 의심이 잘되는 화두는 그것이 인연이 있는 화두니 그 화두로 공부하라고 말씀하셨다. 일단 결택한 화두는 결코 버리지 말고 항상 끊임없이 추궁해 가라고 말씀하신다. 그리고 결코 혼침에 떨어지지 말고 산란심에 끄달리지 말고 행주좌와 어묵동정에 간단없이 화두를 들 것을 간곡히 말씀하셨다. 또한 고양이가 쥐를 잡듯이, 닭이 알을 품듯이 끊임없이 하라는 말씀도 또한 빼놓지 않으셨다. 그리고 '무간단 시도(無間斷是道}라 끊임이 없는 것이 이것이 도다 하는 것은 언제나 빼놓지 않으셨다. 화두를 결택한 다음에는 다시는 문자를 보거나 문자 속에서 언구를 생각하는 것을 금하셨다. 당연한 말씀이다. 순수하게 의심타파만을 생각하고 온 정성을 기울이라는 것이었다.

12. 졸(拙)을 지키시다

 보조스님에 대하여도 각별한 신앙이 있었다.

혹 물으면 보조스님을 찬탄하신다. 말세 중생에게 큰 이익을 준 것은 아무래도 불일보조국사라는 것이다. 우리에게 남겨준 '간화결의'라든가 '원돈성불론' '법집별행록' 등 그밖의 여러 글들이 후래를 위하여 간곡히 남기신 법문임을 재삼 말씀하셨다.

 우리 한암조실스님께서 보조스님을 숭상하긴 하였지만 거기서 보조스님과 좀 다른 것은 당신을 스스로 졸하다고 생각하시고 수절(?)을 하셨던 점이다. 보조스님은 선종도 일으키셨고 불교교단을 위하여 많은 일을 하셨다. 그렇지만 우리 스님은 먼저 자기 힘의 확충을 제일 요건으로 삼았다. 힘이 확충되지 못하였을 때는 힘을 확충하는 데 온 힘을 써야한다. 결코 지나치거나 넘어가거나 과장하는거와는 천리만리였다. 성실하시고 늘 고인들이 힘이 확충하는 것을 기다려 교화하신 것을 거울 삼으셨다. 그래서 당신께서는 졸하게 지내는 것이 당신의 분에 맞는다고 하셨고, 보살도니 종단이니 사회니 하는 일은 입밖에도 내지 않으셨다.  *  (조계종 원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