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수기] 나의 유아독존 시말

신앙수기

2008-01-01     베봉한

  [1]범부의 생활철학

  [천상찬하 유아독존]{天上天下唯我獨尊}, 이 여덟 자는 오만과 아집과 대립과 집착에 얽매어 사는 범부들에게는 아마도 생활철학을 표방한 적절한 좌우명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남을 얕잡아 보기도하고 욕하고, 미워하기도 하고, 속이고 훔치기도 하고, 그리고 우선은 내것으로 만들어 놓고보자는 독점성 생활이되는가 한다. 그로해서 싸우고 탐하고 심하면 죽고 죽이고 ,,,,, 이래저래 세상은 아수라의 세계를 연출하는 것인가 한다. 범부들에게는 정말 위험스런 [여덟 자]다. 그렇지만 좀 생각해 보면 이 여덟 자는 범부들에게 매우 친근한 면이 있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어떤 유행가에는 [제 잘난 맛에 사는 게 인생인데 ,,,,]라 했듯이 이 여덟 자 성향이 없다면 세상은 무슨 재미로 살 것인가.

  나도 50평생을 이 여덟 자를 삶의 좌우명으로 사는, 한 표본이었던 것을 부정할 수 없다. 뒤늦게나마 삼보에 귀의하여 만난 부처님의 법[法}, 그것이 또 어찌 [천상천하 유아독존}일 줄이야. 이것이 오늘날 새로 태어난 내 삶의 철학이요, 위대한 좌우명이 되었으니 어쨌든 이 여덟 자는 신기하고 신기한 것임에 틀림없다.

  이 좋은 부처님 법을 만나서 나혼자만 간직힐 수는 없기 때문에 나와 같이 어둠속을 해매는 형제들에게 이 소식을 전하지 않고 견딜 수 없었다. 나는부처님의 위대하신 가르침으로 나의 삶의 근본을 알게 되었다. 이것은 분명 나와 이웃과 온 국토를 밝히는 진리의 횃불이다. 조용히 지난 날을 돌이켜 보며 이 횃불로써 불국토를 이루는 과업을 향하여 매진할 것을 다짐하면서 나의 전신기{轉身記] 한 토막을 적어본다.

  [2]고집불통 인생

  나는 어릴 때 정계에 투신하여 명예를 얻고자 하는 것이 유일한 소망이었다. 그래서 22세 때부터 정계에 몸을 담아 오직 한 가지 소망만을 위하여 좌충우돌했다. 이리 뛰고 저리 뛰는 사이, 한때는 제법 권세도 잡아 보았다. 비록 대단한 권좌는 아니었지만 자유당 말기의 혼탁한 사회상에서 불가능이란 것이 없었을 정도로 막대한 권한을 부리는 데 한 몫을 했었다.

 제행무상{諸行無常}

  무엇이 영원한 것이 있다던가, 나의 이 권좌도 5,16혁명과 함께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젊은 나이에 권세를 부리던 습관이 들어버린 나에게 남은 것이라고는 오만과 아집 뿐이었다. 범부들이 가질 수있는 [내가 제일이다]라는 식의 천상천하유아독존격 아집에 굳은 중생이 되어 있었다. 그후 마음을 가다듬고 교육기관의 행정간부로서 근무하게 되었으나, 역시 과거의 못된 습성은 뿌리 뽑히지 않았다. 오만과 안하무인, 게다가 세상만사에 불평불만 투성이었던 나는 이유 없는 반항심으로 앙앙불락했으니, 신성한 교육기관에 몸담은 사람으로서 정말 부끄러운 시절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직장에서 화합도 제대로 될 리가 없었다. 직무의 발전을 바랄 수가 없었다. 마음을 비워 참회할 줄 모르는 나로서는 권좌 아니 직장이 아무리 마음을 고쳐 먹는다해도 흡족할 리가 없었다. 돌이켜 보아 참으로 부끄럽게도 불평,불만,오만,아집을 청산하지 못한 채 13년이라는 긴 세월을 보냈다.

  궁리 끝에 지금의 사업에 손을 대게 되었다. 내 평생에 사업이라는 것도 처음이려니와, 평생나를 따라다니는 못된 버릇인 [천상천하유아독존]이 여기에서도 여전히 발동했다. 종업원에 대한 불만과 불신, 고객들에 대한 아니꼽다는 생각, 장삿꾼이 되었다는 비굴감, 단숨에 천금을 벌겠다는 망상 등으로 여전히 불평, 불만 투성이었다. 이런 데서 발생하는 심리적 갈등으로 인하여 고객에게는 불친절, 종업원에게는 욕설, 사회에는 불평, 이웃에게는 멸시, 가족에게는 폭군,,,,이런 것들로 내몸과 마음은 채워져 있었다.

  이러고서 어찌 사업이 성장할 수 었겠는가, 어려움은 계속해서 밀려왔다. 이로 인하여 신경쇠약이 생기고, 위장병, 간장병, 심지어는 백내장까지 얻게 되엇으니, 육신은 상처투성이가 되어 온갖 병을 구비한 저주받은 인생이 되고 말았다. 이런 세월이 6년이 흘렀다. 그동안에 불행, 고통, 정말 인생고를 톡톡이 맛보았다.

  [3]하느님을 찾다

  그러던 어느날, 서울 여의도 모 교회의 집사로 있는 대학동기가 찾아왓다. 자기 교회에 나가면 사업의 융성은 물론, 병마도 하루 아침에 사라질 것이니 교회로 가자고 했다. 그리고서 매주 일요일만 되면 우리집을 찾아왓다. 나는 물에 빠진 사람이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하느님께 메달려 구원을 받기로 작심했다. 물론 내 이웃에 있는 교회 목사 몇 분이 자기 교회에 나오라는 권유도 여러 차례했지만 이번에는 영험이 있고, 신도가 많기로 소문난 교회일 뿐만 아니라, 그 교회 목사가 나와 동기라는 친근감에서 그 교회에 나가게 되었던 것이다. 한 번,두 번, 세 번, 일요일 오후 5시에 열심히 다녔다. 목사님의 설교는 말끝마다 하느님의 성령을 입어 불치의 병을 고친다는 얘기였고, 그 넓고 웅장한 성전에 조그맣게 해놓는 칸막이. 그 속에서 울려 나오는 괴상한 기함소리 {병을 고치느라고 기합을 넣는소리], 하느님이라는 절대신에게만 메달려야 된다는 목사님의 설교,

  아무리 수긍하고, 긍정하고, 맹신하려고 노력하였으나 모든 것이 내 비위에 맞지 않고 이치에 합당하지 않았다. 여기에서도 나의 지병, 천상천하 유아독존병이 재발했다. [왜, 내가 절대신에 매달려 이리저리 끌려 다녀야하나? 제 잘난 멋에 사는 게 인생인데,,,,에라 그만두자. 하느님이 벌을 준들 이 이상의 고통이 또 있겠는가. 나물 먹고, 물 마시고, 팔이나 베고 누워 있자.] 이렇게 결론을 내리고 교회 길에 이별을 고했다.

  [4]찾아온 불법 인연

  이렇게 되어 하느님에게 매달려 보겠다는 생각도 그만 두고 되는대로 살겠다고 버티고 지내는 동안 고통의 연속은 여전했다. 하루하루를 정말 힘겹게 지내던 어느날, 얼마 전 고혈압으로 쓰러졌던 친구가 내 사무실로 찾아왔다. 그가 바로 지명{知明} 거사였다. 나는 정말 놀랐다. 몇 달 전 고혈압으로 반신불수가 되었던 이 친구가 걸어서 내 앞에 나타났으니,,,,, 순간 나는 놀라운 반가움과 함께 기적이라는 생각을 했다. 무엇보다 어떻게 치료하였느냐고 물을 수밖에 없었다. 그는 간단히 절에 나가 공부하는 것이 치료 방법이라고 말을 했다.

   나는 마음 속으로 [이 친구 돌았군,원 세상에 별꼴 다 있네. 아니 중풍 환자가 절에 간다고 병이 나아? 누구 닮았군.] 하고 비양거렸다. 그런데 나는 겉으로는 뜻밖의 말을 하고 있었다. 아마도 기적적인 현실 앞에 내면의 내가 그렇게 말하도록 충동했는지 모른다. 어쩌면 [네가 그럴 바에 나도 미친소리나 하자] 는 심정이었는지도 모른다.

   [김형, 나도 그 절에 나가 공부할까?] 말을 건네 봤다. 그랬더니 허허 웃으면서 하는 말이

  [자네는 나갈 곳이 못 되네. 자네 같은 사람이야말로 불교를 믿어야 하지만, 자네 성격으로 보아 믿음을 가질 사람이 못 되네.]

  나는 마음 속으로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자네 말이 맞아. 천상천하 유아독존병에 걸린 내가 나무토막에 금색 칠한 불상에 절하고, 손 비비고, 중얼거리겠나,,,,] 더욱 건강해지라는 말을 나누고 우리는 헤어졌다.  [계속]

  (불광법회 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