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을 향하는 길] 2. 해와 달· 대지와 물

빛을 향하는 길 2

2008-01-01     이기영

  보살은 어둠을 깨끗이 몰아내는 태양이 되어야 한다. 또한 보살은 모든 중생을 다 키워내는 대지가 되어야 한다.

  우리는 지난 호에 보융의 이정표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하였다. 경전속의 말씀을 통해 우리는 그 이정표, 그 길의 팻말을 보며 우리의 길을 서두르자고 말하였다.
  오늘은 대승보운경의 말씀들을 소개한다. 경에 의하면 해와 달이 그 팻말이요, 대지와 물이 그 이정표요, 불과 허공이 그 이정표다. 우리는 이어 우리 주변의 모든 것이 부처님 화신이 아님이 없다고 생각해 오던 터이다. 경전의 말씀이 또한 우리의 생각을 뒷받침해 준다.
  보라 태양을, 그것은 어둠을 깨끗이 몰아내지 않는가? 보살은 세상에서 태양이 되어야 한다. 무명, 그것은 어둠이다. 지혜롭지 못함을 말한 것이다. 세상 속에서 다른 사람들과 같이 살면서 지켜야 하는 도리를 모르는 것이 곧 무명이다. 또 대자연 속의 한 분자를 이루는 내가 그 속에서 무슨 의미를 가지는 지를 모를 때 우리는 무명에 빠져 있는 것이다. 색. 수. 상. 행. 식이 모두 공한 것을 그렇지 않은 듯 생각하는 것, 그것이 무명이요, 얼굴, 귀, 코, 혀, 몸, 생각이 다 공이요, 빛, 소리, 향기, 맛, 촉각, 법이 다 공한 줄을 모르는 그것이 곧 무명이다. 더 나아가 고, 집, 파, 도의 사제설에도 집착해서는 안되고, 십이인연설에도 집착해서는 안되며, 열반이라는 두 글자에도 집착해서는 안되는 데, 그것을 모르는 것이 무명이다. 밝음이 없다. 즉 어둡다는 이야기이다. 보살은 그 어둠을 없애는 세상의 태양이 되어야 한다는 말씀이다.

  해와 달이 보살의 이정표요, 대지와 물이 그 이정표요, 불과 허공이 그 이정표다.

  태양은 사람이나 물건을 골고루 비추지 차별을 하지 않는다. 물론 제 스스로 그 태양빛을 안받겠다고 어둠속으로 도피하는 자들을 쫓아가 비추는 일은 하지 않는다. 그러나 태양은 그 음침한 곳을 좋아하는 응달의 생명들을 강력하게 쫓아버리고 말려버리는 위대한 힘을 가지고 있다. 무엇이 진짜인지, 무엇이 가짜인지를 잘 들어내 보이는 것이 태양의 빛이 하는 일이다. 또 무엇이 좋은 것인지, 무엇이 나쁜 것인지를 숨기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 태양의 빛인 것도 우리는 다 잘 알고 있다.
  어둠은 공포를 낳는다. 어둠은 범죄의 현장이 된다. 어둠속에서, 그 침침한 응달에서 병균은 자라고 물건은 썩는다. 어둠은 치(癡)다. 즉 무명이다. 거기서 진심(瞋心)과 탐심(貪心)이 자라난다. 그것을 물리치는 것이 태양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해뜨는 아침을 환호하여 맞이한다. 거기서 새 생명의 탄생을 기뻐하는 것이다. 희망을 가지고 새로운 하루의 과제를 시작하는 것이다.
  경은 이 태양을 보고 보살의 길을 가라고 가르치시는 것이다.
  보살은 또 달과 같아야 한다고 경을 가르쳐 주고 있다.
  나는 경주로 가는 고속버스 차창너머로 비쳐 들어오는 반달을 보고 그 교훈을 생각했다. 태양이 잠시 그 자리를 비킨 뒤에 사람과 그의 뭇 형제들에게 휴식의 시간이 주어진다. 이 시간은 분주한 심신을 쉬게 하는 시간이다. 나는 일찌기 잠자리에 들 것을 가르치는 우리 사찰의 규칙은 참으로 잘된 제도라고 생각한다. 새벽을 온전히 맞아드릴 준비를 시키는 것이며, 밤의 기능을 가장 잘 정당하게 살리는 제도이기 때문이다. 자정을 넘겨 밤새워 향락하는 풍습을 만든 현대인들은 조용해야 할 밤을 소란케 함으로써 심신의 피로만을 더욱 축적시키는 자괴의 길을 재촉하고 있는 것이다.
  경은 달을 찬양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달은 중생들에게 시원하고 맑고 서늘한 시간을 보장한다. 달을 보고서 기쁨을 표시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 그리고 달을 보고 있으면 보름달 만월이 얼마나 원만한가를 잘 알게 된다. 그 원만한 모습은 마음의 고요함이 얼마나 중요한 미덕인가를 가르쳐 준다. 어둠속에 빛나는 그 아름다움은 공히 침범할 수 없는 위덕을 갖추고 있다. 그것은 정법속에 노니는 보륭의 면모를 드러낸다……』
  나는 새로 단장된 경주 박물관에서 고요한 미소를 담은 와당을 보면서 달을 생각했다. 신라인의 염원, 보살을 기리는 그 갸륵한 생각이 그 흙덩어리 속에 남김없이 응결되어 있는 것이다.
  경은 또 토지와 물을 들어 보륭도를 가르쳐주신다.
  『보라 대지를.  얼마나 넓으냐? 모든 중생을 다 키워 기르고 있다. 대지는 그를 욕되게 한 배은망덕한 그의 아들과 딸들을 마다하지 않는다. 그 품안은 넓다. 비, 때로는 억수로 퍼붓는 비, 그리고 때로는 땅을 때리듯 쏟아지는 비, 갖가지 형태의 비를 대지는 말없이 용납한다. 대지가 겁을 집어먹는 것이 아니다. 그가 기르는 중생이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는 가를 가만히 보고 있는 것이다. 대지가 아니면 일체의 중생이 의지할 곳이 없다. 바다도 강도 대지를 바탕으로 삼고 있다. 따라서 물고기도 대지의 덕을 보고 있는 것이다. 모든 나무는 대지에 뿌리를 박고 있다. 모든 보석도 대지에 간직되어 있다. 대지는 확고부동하다. 누구가 그것을 송두리채 기울일 수가 있으며 전복시킬 수가 있단 말인가. 대지는 공포를 모른다.』
우리는 국가를 또 국토라고도 부른다. 경은 부처님의 나라를 불국가라고 부르지 않고 불국토라고 부른다. 나아가 모든 경들은 우리 자신을 국토라고도 하였다. 흙에서 나와 흙으로 돌아간다는 뜻에서 만이 아니라, 바로 이 심신의 덩어리 위에서 우리는 경작을 하고 양육을 하고, 수확을 거두어야만 하기 때문인 것이다. 보살은 이 땅을 경시해서는 안된다는 중요한 사실을 가르치고자 한 것이다.

우리 주변의 모든 것은 부처님의 화신이 아님이 없다.

  보살은 물을 보고 가라고 했다. 그대는 물이 모든 더러움을 말끔히 빨아 내듯이 그렇게 너 자신을 정화하고 중생을 정화하여 사는가, 그것을 경은 우리에게 묻고 있는 것이다. 땀과 눈물과 피는 우리의 번뇌(煩惱)와 죄구(罪垢)를 씻는 우리 안의 물이다. 물은 번뇌의 열을 식혀준다고 했다. 또 물은 갈애(渴愛)를 낫게 해준다고도 하였다. 또 물은 우리에게 부드러운 마음, 윤기와 광택을 준다고도 하였다.
나는 땀방울이 맺힌 사람의 얼굴에서 가장 아름다운 미를 발견한다. 또 나는 기쁨이라는 덕목이 얼마나 깊이 윤기와 관련이 있는가를 생각해보기도 한다. 보살은 메마른 사람이 아닌 것을 나는 항상 절감하고 있다. 『바다의 물은 깊어서 감히 침범할 수가 없다.』고 하신 경구를 외우며 우리는 깊지 못한 자신을 슬퍼하는 것이다.

 

동국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