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과 그 천분

여성, 결혼, 행복의 장

2007-12-29     관리자

   -이 글은 필자가 불광법회, 대각 법회 및 여러 법회에서 이야기한 것을 간추려 정리한 것이다.

   물고기가 마치 물에서 떠난 것이라고나 할까?   남편과 헤어진 아내에게 행복이 있을 리 만무하다.   S여사는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암담한 장막에 같힌 것 같아 어찌 할 수 없게 되었다.   과연 이렇게 되면 행복했을까?

   ①  가정을 떠난 여인

   이야기의 주인공은 S여사.   그의 교육 정도는 여고를 졸업한 것 뿐이었지만 현대적 소먕은 넉넉하다고 자처했었다.   자기가 여자라는 사실보다는 한 인간으로서 남편과 대등한 입장을 지켰다.   게다가 자기가 남편보다 머리도 좋고 판단력도 나은 편이어서 「나 없이는 이 짐은 안된다」는 자부심도 있었다.   이렇게 남편을 얕잡아보는 마음가짐에서 가정이 재미가 있을 리 없다.   결혼 전 기대도 컸던 만큼 실망도 큰 것이어서 S여사 생각에는 차라리 헤어져 「친정에 가서 사노라면 어떻게 되겠지!」하는 생각도 했다.   원래 S여사는 성질이 거센 편이어서 의지도 단단했다.  

이런 기질인 만큼 자기주장도 분명한지라 남편과도 마찰이 대단했다.   「마음의 마찰ㆍ부조화는 필경 몸에 병을 부르는 법이다.」 마음이 갖는 공덕을 가로막기 때문이다.   이래서 S여사는 결혼 얼마 후부터 잔병이 잦았다.   이런 끝에 S여사는 남편과 헤어질 것을 결심하고 친정으로 돌아갔던 것이다.   이렇게 되면 행복했을까?   남편과 헤어진 아내에 행복이 있을 리 만무하다.   그것은 마치 물고기가 물에서 떠난 것이라고나 할까?   S여사는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암담한 장막에 같힌 것만 같아 더 어찌할 수 없게 되어갔던 것이다.   친정은 불교집안이었다.  

오라버니댁(올캐)도 신심있는 분이어서 친정에 돌아온 시뉘를 위로했다.  「아무래도 업장인 것 같소.   염불을 하고 기도를 해보시지요.」한다.   가정의 불화도, 몸의 병도 업연때문이니 염불하면 좋을 것이라는 권고였다.   처음에는「고귀한 약을 먹어도 효과가 없는데 염불해서 뭐가 좋아질라구?」하고 믿음이 안갔으나 정성스리 권하기도 하고 마음이 괴롭기도 하여 참참이 마음을 잡고 염불을 시작했다.   그러자니 어느덧 마음의 불안이 가시고 평화해졌다.   따뜻하고 고요한 기운이 마음에 차오르는 것 같았다.  

하여튼 염불하기를 한달만에 S여사는 마음의 평화를 찾았을 뿐만 아니라 만성적인 위장병도 신경통도 깨끗이 나았던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남편에 대립하고 반항적이고 따지고 들던 지난날의 자기가 얼마나 잘못투성이었던가를 뼈에 사무치도록 알게 되었다.   그리하여 이제까지의 자기는 여자는 아니었다는 사실을 깊이 뉘우쳤다.   「이제까지의 나에게서 여자다운 것이 무었이었던가!   머리로 따지고 대립적 위치에만 서있지 않았던가?   어째서 남편을 이유없이 감싸주고 따뜻하게 대해주지 않았던가.   여자는 사랑이 천분이다.   나는 이 천분을 역행하였으니 이꼴이 되는 것도 당연하다.」점점 이렇게 깨달아 들어가면서 눈물이 쉴사이 없이 흘렀다.   S여사는 판단이 명석한 분이었다.  

관세음보살과 같이 자비롭게 사랑으로만 살아야겠다고 결심하였다.   바다와 같은 어머니의 사랑을 생각하였다.   그래서 남편에게 모두를 바쳐서 사랑하고 순종하고 섬기고 받들 것을 결심하였던 것이다.   그리고는 곧장 집으로 돌아가 새살림을 차린 것처럼 변해졌다.   S여사의 집안에는 오랜만에 봄볕이 담뿍 비춰왔다.   S여사의 가슴 속은 한없이 가쁜하고 기쁨에 꽉 차 있었던 것이다.

   ②  남성과 여성의 제 위치

   여기까지 읽어 온 독자 중에는 「어째서 여자는 사랑만 주고 살아야 하는가?」반문할 지 모른다.   그러나 대답은 좀 더 기다려 주기를 바란다.   어차피 해답은 나올터이니까.....   해방후, 한때 기승을 부리던 여권문제는 근일에 와서 다시 잔잔한 물결을 일으키고 있다.   여성의 지위향상에 관하여 친족법 개정문제를 들고 나선 것이다.   지금 이에 대하여 운위할 형편은 아니나 단 한가지 말해둘 것은, 여성을 남성과 비교해서 대립적 관념을 전제로 하여 논의되어서는 안된다는 사실이다.  

 원래 남성은 남성대로 여성은 여성대로 제각기의 특성을 지니고 이 지상의 성스로운 사명을 다하기 마련이다.   아름다운 덕행이란 것도 남녀에 따라 그 내용을 달리한다.   모두가 똑같은 것도 아니며 대립적 존재도 아니다.,   남녀가 평등하다는 것은 그 본서에 깃드는 불성을 지칭하는 것이며 그 표현의 차원에서는 제각기의 특색을 가지고 표현하게 되어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대립관념으로 대하면 근본 바탕을 등지는 불행을 낳게되고, 동일시하는 평등을 주장하면 각기의 개성과 특성을 짓밟는 결과가 된다.   생각해보자.   남녀가 대립적 관계에서 행복할 것인가?   아니면 근자의 어떤 류위 풍조처럼 남성이 여성을 흉내내고 여성이 여성다움을 버리려 할 때 설사 그 주장이 얼핏듣기에 당당한 듯 하지만, 그것은 모두가 공상론인 것이다.   예를 들어보자.   여성이 아름다와지기를 바란다든가 화장하고 옷매무새를 곱게 꾸민다는 것은 이것이 남자의 장난감이 되고자 한다든가 장식물이 되고자하는 것은 아니다.  「아름다움」이란 본래 이것이 인간 본성의 한 속성이어서 그대로 가치가 있는 것이다.   이 점은 남성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여서 스스로 아름다와지고자 하는 요구의 표현이지 이것이 결코 여성의 환심을 사기 위하거나 남의 희롱감이 되기를 희망해서는 아닌 것이다.  

「아름다움」이란 본래 인간성 깊은 곳에 내재하는 생명의 한 표현인 것을 알아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표현방식도 남자와 여자에 따라 각각 다르게 마련이다.   그로므로 남녀는 근본적으로 같은 이해와 신뢰로 근본적 신성을 존중하고 서로가 지니는 특성을 소중히 하고 각기의 특성을 십분 조화있게 피어내어야 하는 것이다.   거듭 말해서 남녀관계에서 대립이나 무모한 동일시는 인간행복의 파멸을 부른다는 것을 기억할 일이다.

    ③  여성의 천분

   인간은    원래 그 본성이 절대의 신성체인 불성이며 그것이 표현의 차원이어서 남녀의 특성을 지니는 것이며 그리고 그 특성은 서로가 망각하거나 범할 수 없는 소중한 것이라면 그러면 여성의 천분은 무엇이란 말인가!   그것은「사랑」(자애)이라 하겠다.   여성은 인간이 지니는 모든 덕성과 능력을 모두 갖추고 있지만 그 중에도 여성은 「자애」가 그의 특성이 되는 것이다.   이 자애는 고집이 없다.   바다와도 같이 어떤 완강성도 유연히 받아들이며 그를 섭수한다.  

자애에는 대립이 없다.   어떤 장벽도 장벽이 못된다.   자애는 그를 싸고 넘기 때문이다.   자애는 외로움도 쓸쓸함도 없다.   한몸의 체온이 일체를 데우기 때문이다.   자애에는 막힘이 없이 통하고, 대지와 같이 그 모두를 성장 시키고, 허공처럼 많은 공덕을 그 속에 담고 그에 맞설 적이 없어지고 바다처럼 넉넉하고 의젓하며, 언제나 관세음보살의 따뜻한 햇빛이 그 속에 빛난다.   그러므로 「자애」를 완전히 나타내는 여성은 이것은 부처님의 자비공덕이 나타남이며 관세음보살의 시현인 것이다.   그러므로 여성은 그 마음이 따뜻하고 유화하고 너그럽고 모두를 성취시키는 위대한 힘과 커다란 포옹력을 갖는 것이다.  

여성은 이 천분을 자각하여야 한다.   이 천분을 잊는다면 그는 여성이로되 여성이 아니다.  그가 있는 곳에 거칠고 삭막하고 불모의 황폐가 뒤따른다.   경에는 모성으로서의 여성을 태양에 비하고 대지에 비하였으며, 가정에 있어 아내는 어머니와 같이, 남매와 같이, 친구와 같이, 또는 종과 같아야 함을 말씀하였다.   여성은 모름지기 이 천분의 덧엉을 함양하여 이 땅의 행복을 가꾸어 나가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