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전의 세계] 백유경百喩經의 비유설법

백유경의 세계

2007-12-28     김보경

  이 경은 백유경이라고도 하고 백구비유집경[百句譬喩集經}이라고도 한다. 또한 이 경은 인도의 승가사나[僧伽斯那}가 번역한 것인데 남제무제{南齊武帝}의 영명{永明} 10년에 구나비지{求那毘地}가 또 번역한 것이다.

  제목에 보이는 것과 같이 중생을 교화하기 위하여 가장 쉬운 비유로써 혹은 불도에 유인하고 혹은 불도를 이해시키기 위하여 어리석은 일을 풍자하고 편리하게 유모어스런 이야기를 비유로든 것이다. 이 가운데에 널리 대중을 상대로하여 비유를 설한 이야기가 들어 있다.

  이러한 이야기를 통해서 오늘을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유익한 교훈을 주려는 의도에서임은 말할 나위도 없으며, 이러한 비유나 인연 설화는 불교만의 독창적인 것이 아니라 고대 인도사회에서 전레된 민담{民譚]이나 전설 속에 들어있는 재미있고 교훈적인 이야기에 불교적인 입김을 불어넣어 그 틀을 바꾸었을 뿐이다.

  백유경에는 제1권에 21, 제2권에 20, 제3권에 24, 제4권에 33 모두 합하여 아혼 여덟의 비유설화를 들었다.

  이 경의 이야기는 처음에는 비유를 들고, 뒤에는 불법에 뿌리하여 보여준 이단{二段} 조직으로 되어있는 것이 특징이다. 이야기 가운데에 수록된 몇 가지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1] 어리석은 사람이 소젖을 모으는 비유

  옛날 어떤 어리석은 사람이 손님을 청하여 소의 젖을 모아 대접하려 하였다. 그는 이렇게 생각하였다.   

  [내가 날마다 미리 소젖을 짜 두면 소젖은 점점 많아져 둘 곳이 없을 것이다. 또한 맛도 변해 못 쓰게 될 것이다. 그보다 소젖을 소 뱃속에 모아 두었다가 그때 가서 한꺼번에 짜는 것이 낫겠다.]고 생각하고는 곧 어미소와 새끼를 따로 매어 두었다.

  한 달이지난 후 잔치를 배풀고 손님을 맞이하였다. 그러나 그 소의 젖은 말라 없어졌다. 그때 손님들은 성을 내거나 혹은  비웃었다. 어리석은 사람도 그와 같다. 보시를 행하려다가 [내게 재물이 많이 쌓인 뒤에 한꺼번에 보시하리라]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모으기 전에 관청이나, 화재나 수재나, 혹은 도적의 겁탈을 당하거나, 또는 갑자기 목숨을 마치기 때문에 적절한 시기에 보시하지 못한다. 그도 또한 이것과 같은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아무리 좋은 일이라고 해도 오래 하는것을 싫어하지만 무슨 일을 하든지 매일 같이 꾸준히 계속해야만 진보가 있는 것이지 하루, 이틀 미루었다가 하면 위와 같은 모양이 되기 쉽다.

  기계도 마찬가지다. 기름을 치고 손질을 해서 사용하면 기계가 잘 돌아가지만 몇 년이고 그대로 두었다가 갑자기 사용하려고 하면 녹이 슬어 기계가 잘 돌아가지 않는 것이다. 우리 중생들은 이 몸이 항상 견고하여 영원한 것처럼 생각하여 언제 어느 때 갈 줄 모르는 상태에서도 자꾸만 내일로 미루면서 살아가는데 대해 우리들은 언제나 정진하며 보시바라밀을 행하여 보살도를 성취해야 되겠다.

  [2] 가난한 사람이 원앙새 울음을 흉내내는 비유

  엣날 외국법에 명절 경사날은 부녀들이  모두 우트팔라꽃으로 머리를 장식하게 되어 있었다. 어떤 가난한 사람의 아내가 남편에게 말하였다.

  [당신이 만일 우트팔라꽃을 얻어 내게 주면 나는 당신의 아내가 되겠지만 얻어 오지 못하면 나는 당신을 버리고 가겠습니다.]

  그 남편은 이전부터 항상 원앙새 우는 소리를 잘 흉내내었다. 그래서 곧 왕의 못에 들어가 원앙새 우는소리를 내면서 우트팔라꽃을 훔치고 있었다. 그때 못지기가 물었다.

  [못 가운데 그 누구냐?]

  그는 그만 실수하여 말을 잘못 대답하였다.

  [나는 원앙새입니다.]

  못지기는 그를 붙잡아 데리고 왕에게로 갔다. 도중에 그는 다시 부드러운 소리로 원앙새 우는 소리를 내었다.

  못지기는 말하였다.

  [너는 아까 소리를 내지 않고 지금 내어 무엇하느냐.]

  세상의 어리석은 사람도 이와 같다. 생명이 끝나도록 살생하면서 온갖 악업을 짓고 마음과 행{行}을 잘 다루어 선{善}을 익히지 않다가 임종 때에야 비로소 말한다.

  [나도 지금부터 선업을 닦고 싶다.]

  그러나 옥졸이 그를 데리고 가서 염라왕에게 넘기면 아무리 선업을 닦고자 하나 그럴 수가 없다. 그것은 마치 저 어리석은 사람이 왕에게 가서 원앙새 우는 소리를 내려고 하는 것과 같다.

  옛말에 아무리 악한 사람이라도 임종 때에는 착하게 살려고 원하듯이 사람은 누구나 일을 저지른 뒤에 후회를 많이 한다. 그러나 그때는 이미 늦은 것이다. 오욕락에 휩싸여 삶을 즐기다가 임종시에 갈팡질팡 끌려가는 모양이 되기 전에 조그마한 선업이라도 자꾸 쌓아야만 한다.

  [3] 부인을 위해 코를 바꾼비유

  옛날 어떤 사람이 있었다. 그 부인은 매우 아름다왔는데 오직 코가 추하였다. 그는 밖에 나가 남의 부인의 얼굴이 아름답고 코가 아주 좋은 것을 보고 생각하였다. [지금 저 코를 베어다 내 아내의 얼굴에 붙이면 좋지 않겠는가]고. 그리하여 그는 곧 남의 부인의 코를 베어 가지고 집으로 돌아와 급히 그 부인을 불렀다.

  [당신, 빨리 나오시오. 당신한테 좋은 코를 주리라.] 그부인이 나오자 그는 곧 코를 베고 이내 남의 코를 그 자리에 붙였다. 그러나 그것이 붙지 않으므로 코만 잃어버리고 큰 고통만 당하게 하였다.

  세상의 어리석은 사람들도 그와 같다. 늙은 바라문이나, 슈라마나가 큰 이름과 덕이 있어서, 세상 사람의 공경과 큰 이양을 받는 것을 보고 말하기를,

[나도 저희들과 다르지 않다.]고 스스로 거짓으로 일컫는다. 그러나 그 거짓말은 죄가 있어서 그 이익도 잃고 다시 그 행을 해치는 것이다. 그것은 마치 남의 코를 베어 스스로 해치는 것과 같다.

  세상의 어리석은 사람도 이와 같다. 이것은 세상 사람이 허영에 빠져서 분수를 지키지 못하고 다른 사람의 모습을 보고 허영에 날뛰다가 제가 가졌던 조그만 재산까지 탕진하는데 비유한 유모어라고 하겠다.

  불교의 경전에는 심오한 교훈이 많으나 그러나 해학{諧謔} 문학의 풍자적{諷刺的} 유모어도 적지 아니하다. 여기서 말한 백유경도 수많은 비유를 들어서 어리석은 일을 조소하고 해학한 유모어의 경전이라 하겠다.

  우리 주위에 소문만복래{笑門萬福來}라는 말이 있듯이 웃음이나 유모어는 인생의 온갖 부조리{不條理}를 애정으로써 보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어리석은 이를 풍자한 비유설법을 한갖 우스운 이야기로 넘길 것이 아니라 우리들은 웃음과 유모어를 통해서 생활의 여유를 가지며 그 가운데에도 항상 남을 도울 수 있는 자비 정신을 실천하는 방향으로 교훈을 삼아야한다.

  (스님, 서울 보현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