얽매이지 않으면 그대로 좋다

선가귀감 강설 - 마지막회

2007-12-28     관리자

제82장 위앙종
百丈傍傳, 曰펨山靈祐 曰仰山慧寂 曰香嚴智閑 曰南塔光湧 曰芭蕉慧淸 曰�山景通 曰無着文喜禪師 等.

위앙종은 백장 선사의 방계로 제37세 위산영우 선사 - 제38세 앙산혜적 선사 - 제39세 향엄지한 선사 - 제40세 남탑광용 선사 - 제41세 파초혜청 선사 - 제42세 곽산경통 선사 - 제43세 무착문희 선사 같은 이들이니라.

제83장 법안종(法眼宗)
雪峰傍傳, 曰玄沙師備 曰地藏桂琛 曰法眼文益 曰天台德韶 曰永明延壽 曰龍濟紹修 曰南臺守安禪師 等.

법안종은 설봉 선사의 방계로 제40세 현사사비 선사 - 제41세 지장계침 선사 - 제42세 법안문익 선사 - 제43세 천태덕소 선사 - 제44세 영명연수 선사 - 제45세 용제소수 선사 - 제46세 남대수안 선사 같은 이들이니라.

제84장 임제 할, 덕산 방
臨濟喝 德山棒, 皆徹證無生, 透頂透底. 大機大用, 自在無方, 全身出沒, 全身擔荷. 退守文殊普賢大人境界. 然, 據實而論, 此二師, 亦不免偸心鬼子.

임제 할, 덕산 방이 다 무생의 도리를 철저하게 증득하여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꿰뚫었느니라. 곧 대기대용에 있어서는 걸림이 없이 온몸으로 나타났다가 온몸으로 사라지고 온몸으로 그것을 그대로 짊어져서, 물러서서 말해 문수보살과 보현보살과 같은 성인의 경계를 지키고 있다고 하자. 그래도 사실 무위법에서 말한다면, 이 두 임제 선사와 덕산 선사 역시 황당한 도깨비임을 면치 못하리라.

취모리의 칼날을 다치지 말라.

물에 잠긴 구슬이 더 깨끗함이여!
구름이 가신 하늘에 흘러가는 밝은 달.


제85장 얽매이지 않으면 그대로 좋다
大丈夫, 見佛見祖, 如寃家. 若着佛求, 被佛縛, 若着祖求, 被祖縛. 有求皆苦, 不如無事.

대장부는 부처나 조사 보기를 원수같이 할지니라. 만약 부처에게 집착하여 구하면 부처에게 얽매일 것이고, 만약 조사에게 집착하여 구하면 조사에게 얽매일 것이니라. 구하는 것이 있으면 다 고통이 되나니, 일 없는 것만 같지 못하니라.

“부처와 조사를 원수와 같이 보라”는 말은, 제2장에서 밝힌, “바람도 없는데 파도를 일으킨다”는 말의 결론이니라. “구하는 것이 있으면 다 고통이다”라는 말은, 제4장에서 밝힌, “그대로가 다 옳다”는 말의 결론이니라. “일없는 것만 같지 못하다”라는 말은, 제4장에서 밝힌, “한 생각 일으키면 곧 그르친다”는 말의 결론이니라.
이 자리에 이르면, 가만히 앉아서 천하 사람의 혀끝을 끊어버리고 생사의 윤회바퀴를 멈추게 하느니라. 부처와 조사가 세상에 나오심은 위기의 나라를 붙들어 태평성대로 돌리고 난리를 진정시키는 것과 같기에, 마치 단하 선사가 목불을 불태워버린 일이나, 운문 선사가 개에게 주어 먹게 한다는 말, 노모가 부처를 보지 않은 일과 같이, 모두가 사악한 생각을 버리고 정법을 따르게 하려는 방편이니라. 그러나 필경 어떠한고?


생각나네, 강남의 춘삼월 절경!
자고새 우는 그곳에 아름다운 꽃향기.

강설

* 운문끽구자(雲門喫狗子) _ 비록 부처님이라도 허물이 있으면 할과 방을 맞는 법이다. 부처님은 태어나시자마자 일곱 걸음을 걸은 뒤 사방을 돌아보시고 오른손으로는 하늘을 가리키고 왼손으로는 땅을 가리키시며 탄생게를 말씀하신다. “천상천하 유아독존(天上天下 唯我獨尊).”
그 후 운문 선사가 말하였다. “만약 당시에 내가 보았더라면 한 방망이로 타살하여 개에게 주어 씹혀서 천하를 태평케 했을 것이니라.” 뒷사람은 운문 스님이야말로 불은(佛恩)에 가장 잘 보답한 효자라고 평한다.

* 노모 불견불(老母 不見佛) _ 부처님이 금강경을 설하신 사위성에 계실 때였다. 어느 날에 다들 부처님을 친견하려고 아우성인데 한 노모만은 문을 걸어 잠그고 두 손을 들어 눈을 가렸다. 이 때였다. 열 손가락 끝 하나하나에서 열 분의 부처가 나타나 보였다는 이야기이다. 곧 한 치도 떨어져 있지 않은 자기 마음 부처를 놔두고 공연히 밖으로 부처를 찾지 말라는 법문이다.


제86장 유명한 주련
神光不昧, 萬古徽猷. 入此門來, 莫存知解.

신령스런 광명은 밝고 밝아서 시방세계 만고에 빛나느니라. 이 무위문(無爲門) 안으로 들어오려면 알음알이 지식을 두지 말지니.

“신령스런 광명이 밝고 밝다”는 말은 제1장에서 밝힌, “소소영영(昭昭靈靈)”이란 말의 결론이니라. “사방세계 만고에 빛난다”는 말은 제1장에서 밝힌, “본래 불생불멸(不生不滅)”이란 말의 결론이니라. “알음알이를 두지 말라”는 말은 제4장에서 밝힌, “이름과 모양에 매여 알음알이를 내지 말라”는 말의 결론이니라.
문(門)은 범부와 성인이 함께 드나든다는 뜻이니, 마치 신회하택 선사가 이른바 ‘알 지(知: 앎)’ 한 자가 온갖 미묘한 이치의 문이라고 한 말과 같느니라.
아, 이름을 지으려야 지을 수 없고 모양으로 그리려야 그릴 수 없다는 말로써 시작하여, 알음알이를 두지 말라는 말로써 끝맺음하였으니, 이 책 한 권에 얽히고설킨 넝쿨을 이 한 마디 말로써 깨끗이 끊었음이여! 그리하여 알음알이 하나를 가지고 시작과 끝맺음을 삼고, 중간 중간에 온갖 만행을 들어 보이는 서술 방법은, 마치 중용(中庸)이 삼의(三義)를 갖추어서 시작과 끝맺음에서 하나의 이치를 들어 보이고 중간 중간에 온갖 이야기를 한 것과 같은 맥락이니라.
‘지해(知解: 알음알이, 지식)’ 두 글자는 불법의 큰 해독인 까닭에 특별히 드러내서 끝맺음을 한 것인데, 신회하택 선사가 조계 육조 혜능 선사의 적자가 되지 못한 것도 이 ‘지해’ 때문인 것이니라. 그리하여 송하되,

종지 밝힌 이런 글 보셨다 하면, 달마 스님 허허허 웃으셨겠지.
허나, 마침내 어떠한지, 한번 감상들을 일러 보시라!
할!

孤輪獨照 江山靜 둥근 달 홀로 밝아서 강산이 고요한데
自笑一聲 天地驚 하하하 웃음보 터져 경천동지 하누나.


강설

소살(笑殺)은 첫째는 허허 웃어넘기고 문제를 삼지 않는다는 뜻이고, 둘째는 큰 소리로 비웃는다는 뜻인데 여기서는 첫째의 뜻을 취하였다.
‘둥근 달 홀로 밝아서’ 하는 임제 스님의 법문으로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

밝고 맑은 마음 달 홀로 떴는데
선정 삼매 들어서 깨닫는 순간
박장대소 하다가 까무러쳤네.
하하하 소를 타고서 소를 찾은 나그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