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으려고만 했던 어리석음

특집 / 비운 만큼 커지는 행복

2007-12-28     관리자

오늘도 다겁생에 지어온 잘못을 참회하고, 모든 사람들이 행복해질 수 있도록 기도하면서 하루를 시작한다. 이 세상에 태어나 50년을 넘게 살아오면서 마음 편한 날이 별로 없었던 것을 보면 정말 우리네 인생이 고해라는 것을 실감한다.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나 남부러울 것 없이 살았던 어린 시절을 제외하고는 역경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이런 것이 불법을 만나게 된 기회를 가져다주었으니 내게는 역경이 고마울 뿐이다. 역경은 나를 정신적으로 성장시켜 주는 자양분이었으며, 어떤 거친 환경 속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는 인내심을 길러 주었다.

채우는 공부
아들이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에 취미로 시작한 바둑이 내 삶의 방향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정식으로 바둑공부를 하기 위하여 아내와 아들은 서울로 가게 되었고, 딸은 내가 데리고 있는 어정쩡한 이산가족이 되고 말았다. 이런 환경 속에서 내 지난 삶을 되돌아보게 되었고, 아들의 프로 입단 발원을 위해 불법에 귀의하였다.
처음 시작한 것은 관음기도였다. 초발심이었던 나는 많은 밤을 지새우며 입이 터지도록 기도하였다. 기도를 하면서 내면에 잠재되어 있었던 수많은 삶의 편린들이 솟아오르기도 하고, 스러지면서 저절로 눈물이 흘러내리기도 하며, 가슴이 환해지는 경험도 하였다. 급기야 관음기도를 시작하면, 나의 입에서는 관음보살이 아닌 알 수 없는 방언이 나오기도 하고 법문이 나오는 등 신비스런 일들이 벌어지는 것이었다.
평소 보지도 못하던 경전이 저절로 해석이 되고 다른 사람의 얼굴을 보면 무엇인가 말하고 싶은 충동이 일어났다. 이런 것이 수행과정에서 오는 마장에 불과하다는 것을 미처 알지 못했던 난 이것에 만족하고 빠져버리고 말았다. 얼마 동안 이런 자기 세계 속에 있다가 어느 날 스님의 죽비를 맞고 난 후 모든 것이 일순간에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뒤에 능엄경을 읽으면서 별 것도 아닌 것을 가지고 살림을 차리려고 했던 나의 어리석음을 확연하게 알게 되었다.
서울에 있는 도선사에서 아내와 함께 처음 3천배를 할 때의 일이다. 아침 일찍 나가 석불 앞에서 간간히 비가 뿌리는 가운데 3천배를 마쳤을 때는 어둠이 내리기 시작할 무렵이었다. 도선사 계단을 엉금엉금 기어 내려오면서 정말 말로만 듣던 3천배를 했다는 기쁨과 환희보다는 힘이 들어 죽을 것만 같았다. 더구나 ‘내 자식의 영달을 위해 욕심을 가득 채우고 3천배를 하였으니 얼마나 몸이 무거웠을까’ 생각하니 지금도 웃음이 나온다.
관음기도와 도선사에서의 3천배는 나의 공부를 다시 점검해 보는 기회를 주었다. 알지 못하면 자기 자신에게 속는 줄도 모르기 때문에 체계적인 공부의 필요성과 날 이끌어 줄 수 있는 스승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절감할 수 있었다. 그래서 여러 경전을 뒤적이게 되었고 좀 더 체계적인 공부를 하기 위하여 부산에 있는 금강불교대학교에 등록하여 2년간 다니고 졸업을 하였다. 그리고 이름만 대면 알 수 있는 많은 선지식을 찾아다니면서 목마름을 채울 수 있었다. 이 과정에서 참선도 하게 되고 많은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비우는 공부
그러던 중 아들의 집중력을 기르게 하기 위하여 우연한 기회에 법왕정사와 인연을 맺게 되었다. 청견 스님을 친견한 후 태안사에서 아들과 함께 3천배를 하게 되었다. 일찍 태안사에 도착하여 절하는 법을 배운 후 스님의 죽비소리에 맞추어 3천배를 하게 되었다. 많은 도반들과 더불어 3백배씩 나누어 절을 하니 그리 힘이 들지 않았다. 처음 3천배를 하는 아들의 얼굴은 땀과 후회의 빛이 역력했지만 아버지가 열심히 하니 어쩔 수 없이 따라 하는 것이었다.
일 배 일 배 법계에 회향하면서 모든 것을 내려놓고 스님이 가르쳐 주신 대로 열심히 절을 하였다. 아무 것도 구하지 않았고 그저 담담하게 생각의 조각들을 살펴보면서 세상의 덧없음을 뼈저리게 실감할 수 있었다. 외부를 향해 추구했던 그 모든 것들이 한낱 허망한 꿈에 불과하다는 것과 단순한 앎이 아닌 실천을 통해서만이 부처와 하나가 될 수 있음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부처님 은혜 감사합니다”라고 크게 외치면서 한 마지막 3백배에서는 환희심이 솟아났고, 이 3천배의 공덕이 있다면, ‘모든 중생들을 편안하고 행복하게 해 주십시오’라고 기도하였다.
담으려고만 했던 어리석은 마음과 내 자식 내 가족만을 위해 기도하는 것이 얼마나 자기 자신을 작게 만드는가도 알게 되었다. 허망한 세계 속에 자기를 가두고 그 속에 무엇인가를 채우려고만 했던 어리석음에서 벗어나, 모든 것을 비우고 절을 하니 그렇게 마음이 편할 수가 없었다.
요즘은 염불과 참선을 병행해서 수행하고 있다. ‘참다운 진여불성의 자리가 바로 내 자성’이라는 것을 기억하며 모든 것을 내려놓고, 어떤 것이라도 순간순간 최선을 다해 공부를 하고 있다. “모두가 부처님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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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민 _ 불법공부를 위해 금강불교대학교를 졸업한 후 많은 선지식을 찾아다니며 공부하였다. 현재 경남 진주에 있는 대아고등학교 한문 교사로 재직하며, 선우선방에서 수행 정진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