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수기 황량했던 가슴에 푸른 싹이

신앙수기

2007-12-27     김성호

     [1] 방탕했던 지난 날

   갈급한 마음으로 보내기 쉬운 생활, 구금된 생활을 하고 있는 저는 소년 교도소의 수용자입니다. 2년6개월이라는 형을 받고서 하루하루를 채워가고 있는 저는 이곳에 들어와서야 비로소 참 불교를 깨달아 가고 있습니다.
   부처님에 의해 재생되기 전의 저의 과거는 너무도 비참했습니다.
   3형제 중 장남으로 태어난 저는 홀어머니 밑에서 물질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방황하고 쫓기는 생활을 해왔습니다.
   가난을 뼈저리게 증오하면서 저는 오직 물질에만 눈이 어두운 나머지 선량한 사람들에게 주먹질과 공갈, 협박 등을 일삼으며 돈을 갈취해 냈습니다. 이러다 보니 더욱 악의 물이 들고 저는 완전히 타락한 방탕아가 되어 버렸습니다. 주위의 평소 친하던 친구들, 제게 바른 길을 일러 주시던 동네 웃어른조차도 저에게 손가락질하며 따돌렸습니다.
   이렇게 따돌림을 받고 보니 저의 성격은 점점 더 거칠어지고 나쁜 습성은 더 깊어 갔습니다. 그래도 단 한분, 저의 어머님만은 따뜻한 정으로써 감싸주시며 저를 좋은 길로 이끌어 주시려 눈물로 호소했습니다. 그렇지만 저의 마음은 황량하기 그지없어 어머니의 눈물 따윈 아랑곳 하지 않았습니다.

     [2] 법의 심판을 받다

   이렇듯 내 세상이라 날뛰며 주위 사람을 괴롭히던 제가 법의 명령대로 형을 선고 받게 되었습니다. 저는 그 순간 깊은 절망 속에 빠져들어 갔습니다.
   교도소라는, 인간의 기본 행동마저 제약된 곳에서 생활을 하며 저는 우리에 갇힌 맹수처럼 몸부림치며 절규했습니다. 모든 것을 원망하고 저를 이토록 까지 되게 한 제 환경을 저주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어머니께서 면회 오셨습니다.
   목이 메어 서로가 말을 못하고 눈물만 가득 고인 채 있다가 저는 그 자리에 쓰러져 통곡하였습니다. 
   어머니께서는 우는 저에게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씀하셨습니다.
  『너무 현실을 어렵게 생각하여 포기하려고만 하지 말고 하나하나 이겨나가도록 해라. 너 혼자 힘으로 헤쳐 나가기 어려운 때는 마음속에 부처님을 모시고 의지하여라.』
   그러나 절망의 늪에 깊이 빠져있던 저에게는 어머니의 말씀이 아무런 도움이 못되었습니다. 그 말이 제게는 너무도 멀게만 느껴졌습니다.
   이렇게 정리되지 않은 마음을 갖고 나날을 보내다가 어느 날 이곳 인천 교도소에 이송되어 왔습니다.
   새로운 환경에 접하게 된 저는 절망감에서 벗어나 약간의 해방감을 느꼈습니다. 바쁘게 시간을 보내며 며칠이 지났습니다.

     [3] 부처님께 향한 걸음

   그러던 어느 날 새벽, 잠에서 깨어나 이리 뒤척 저리 뒤척이며 잠을 잇지 못할 때, 적막을 깨뜨리고 담장 너머 사찰에서 은은히 들려오는 목탁소리가 있었습니다. 그 소리는 제 마음처럼 처량하고 외롭게 들려 왔습니다. 어머니가 생각났습니다. 어린 두 동생의 모습도 떠올랐습니다.
   어느 사이엔가 제 두 눈엔 눈물이 맺혀있었습니다. 저는 이불을 머리끝까지 올리고 숨죽여 울었습니다.
   그 뒤 저는 새벽이 되면 버릇처럼 그 목탁소리를 기다리게 되었습니다.
   똑똑똑똑 또르륵……
   그 소리와 더불어 저는 어머니께 달려갔습니다. 어린 두 동생도 만나고, 저의 잘못을 나무라며 올바른 길을 걷기를 권하시던 동네 어른들을 뵙고 용서를 빌었습니다. 제 지나온 과거를 생각하며 죄스럽고 한스러워 고개를 들기가 부끄러워 엎드려 울기도 하였습니다.
   이렇게 제 마음 속엔 새벽의 목탁소리로 전과 달리 고운 심성이 생겨나고 있었습니다. 그 목탁 소리와 더불어 삶을 이어가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소년원 내에 있는 법회에 가자는 동료의 권유가 있어 생전 처음 법회에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법회 장소에 들어서는 순간 저를 감싸는 향내음이 정겹게만 느껴졌습니다. 스님의 설법은 한 말씀 한 말씀이 저의 폐부를 찌르는 듯하였습니다. 그리고 또「스님」이란 분들을 우리와는 절대 다른 성스러운 분이어서 근접하지 못할 분이라 생각했던 거와는 달리 아주 인자하고, 우리와 같은 고통도 느끼며 사는 분이란 것이 느껴져 저는 그 말씀을 더욱 가슴 깊이 새겨 둘 수 있었습니다.
   그 뒤부터 저는 법회날만 오면 모든 일을 제쳐 놓고 법회에만 참석하였습니다. 스님의 말씀은 한마디도 빼트리지 않고 듣고 기억하여 그를 실천하여 노력하였습니다.
   이렇게 하여 제 신앙심은 조금씩 커 갔습니다.
   그러다가 교도소 내의 불교 담당 선생님을 찾아가 저의 이러한 마음을 말씀드리고 불교 공부를 더 할 수 있느냐고 상의하였더니 저를 뜨겁게 격려해 주시며 불교 방으로 인도해 주셨습니다.
   제가 들어간 방은 원효 방이었습니다. 그곳엔 책도 많고 앉아 참선도 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이때부터 더욱 신앙심이 굳어지고 많은 책들을 읽으며 제가 할 일을 깨달았습니다.

     [4] 동료들에게도 불법을

   그것은 제가 알아 저를 이리 변모할 수 있도록 해준 이 귀중한 부처님 말씀과 지혜를 제 동료들에게 전해주는 일이었습니다.
   저는 처음에는 부처님을 믿으라고 외치며 다녔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반응은 냉소뿐이었습니다.
  『내 주먹 하나면 되었지 뭘 믿으라는 거야.』
   그들은 저를 광신자 취급하며 제가 외치고 다니기 전보다 더 불교를 무시하는 것 같았습니다.
   저는 곰곰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리고 방법을 바꾸기로 하였습니다.
   먼저 그들이 꺼려하는 화장실 청소부터 맡았습니다. 그리고 궂은 일이 있으면 언제나 앞장섰습니다. 그렇지만 제 마음 속에는 갖가지 생각이 꼬리를 물었습니다.
  「내가 왜 이럴까, 이렇게 한다고 무슨 성과가 있을 것인가…」
   그러나 저는 마음이 약해질수록 더욱 채찍질하며 꾸준히 일을 계속하였습니다.
   이러한 생활이 계속되다 보니 그들은 조금씩 제 마음을 이해해주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그러한 그들에게 제가 알고 있는 불교의 뜻을 그들에게 들려주며 법회로 인도하였습니다. 차츰 법회 식구가 늘어 갔습니다.
   이러한 저에게 모든 동료들과 선생님은 이곳 불교회장이 되어 일을 맡아 달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불교회장직을 맡아 일을 하고 있습니다.
   부처님께 보답할 수 있는 길도 오직 과거의 저와 같이 어둠의 길에서 헤매는 불쌍한 동료들에게 부처님의 말씀을 전하는 일뿐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곳에서는 물론이고 장차 제가 사회에 출소하여서도 부처님을 섬기는 충실한 불자의 길을 걸을 것을 굳게 다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