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전강의실] 반야심경 강의 9

성전강의실(9)

2007-12-27     관리자

(7) 바라밀다와 十二因緣法

<경문>

무명도 없으며 또한 무명이 다함도 없으며 내지 노사도 없고 또한 노사가 없다함도 없으며 (無無明 赤無無明盡 乃至 無老死 赤無老死盡.....)

1.  十二因緣(십이연기)

凡夫가  유정으로서의 생존을 구성하는 십이요소다. 십이라 함은 무, 명, 행, 식, 명색, 육처, 촉수, 수, 취, 유, 생, 노사다.   이들이 서로<이것이 있을 때 저것이 있고, 저것이 생할 때 이것이 생하며 이것이 없을 때 저것도 없고, 이것이 滅할 때 저것도 滅한다.> 하는 상의상대적 관계에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대개 두 면을 관찰할 수 있다.   즉 모든 것은 因과 緣으로 하여 성립된 相依的인 것이므로 이들은 無常이며 苦며 無我라는 面과, 또 다른 한 면은 범부의 고된  生存은 어떻게 하여 성립하는가.   그리고 그것은 어떻게 하여 除去시키고 解說을 얻는 것인가 하여 有情의 生存價値와 의의를 문제삼는 것이다.   經에 의하면 이 緣起의 법은 佛 出世 與否에 관계없이 영원히 변치않는 진리로서 부처님도 이 법을 觀하여 깨달음을 이루었고, 또한 중생에게도 이 법을 열어보인다는 것이다.  생가하면 대개 인간생존은 정신의 주체인 識의 활동에서 비롯되지만 그 識의 활동이란 이것이 생활경험이 되어 도리어 그 활동의 축적이 識을  내용짓는다.   이 생활경험이 行이다.   그리고 이 識의 활동이란 것을 생각해 보면 識이 감각기관인 육처를 통하여 인식대상인 온갖 심적작용이나 물적존재와 접촉하고 이것을 주관에서 감수하는 것이라 하겠다.   범부들의 식은 자성진리의 무자각 상태인 무명을 內相으로 하고 渴愛를 外相으로 하고 있다.   대개 법부들이 끝없이 밖으로 치달으며 작용하는 근본적 힘의 근원은 이 渴愛라 보아야 할것이다.   이것이 발전하여 모두를 내것으로 삼으려는 집착이 된다.   이런고로 이러한 오염된 식의 활동에 의하여 내용지어진 식은 그에 상승하는 人間苦,無常苦를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이에 반하여 聖者는 무명과 갈애가 변하여 없으므로 따라서 인간고가 없다.   여기서 解說이란 말이 있게 된다.

2. 十二緣起의 胎生學的 解釋  

십이연기에 대하여 종래 태생학적 해석이 성행하고 있다.   우리 교계에 아직도 유행하고 있는 해석이므로 이에 간략히 소개한다.   (1) 무명  : 과거세에 끝없이 계속하여 온 迷의 근본인 無知.   (2) 행 : 과거세에 무명이 지은 행업.   (3) 식 : 과거세의 業의 결과로 얻은 現世受胎의 一念   (4) 名色 : 태중에 있는 心과 體.  (5) 六入 : 태내에서 형성되는 六根.  (6) 觸 : 出胎直後 한동안의 觸覺만의 작용. (7) 受 : 苦樂好惡를 感受하는 감각 (8) 愛 : 苦를 피하고 樂을 추구하는 작용.  (9) 取 : 자기가 하고자 하는 것을 집착하는 작용. (10) 有 : 愛取에 依해서 種種業을 짓고 거래 결과를 불러 이르키는 작용. (11) 生  (12) 老死 이상과 같이 十二연기는 과거의 因과 현제의 果와 현제의 因과 미래의 果의 二種의 因果를 보인 것으로 해석하여 이를 三世兩種의 因果라고 한다.

3. 십이연기의 의의

십이연기는 三味앞에 드러난 중생의 생존과 존속의 실상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따라서 衆生苦의 원인과 결과를 명료하게 보여준다.   여기서 중생고의 근원이 규명되는 것이다. 이것은 십이연기의 근본의의다.   우리는 십이연기를 통하여 볼때 중생고의 근본원인은 무명이고 결과는 老死 憂悲苦惱다.  그러므로 노사 우비 고뇌를 없이 하려면 무명을 없이 함만 같지 못함을 알수 있다.   그러면 무명은 어떤 방법으로 없앨것인가?   경에는 <무명도 없으며 무명이 다함 또한 없다.  > 하였다.   방법은 이것이다.   무명이 없다는 것을 아는 것이 없이하는 것이다.   무명이 없다는 것을 어떻게 알것인가 ?   이것은 바랄밀 本地인 淸淨實相을 알아야 한다.   바라밀 淸淨地에서 볼때 무명이란 본래 없는 것이어서 없이 할것조차 없는 것이며 <다 없앴다. > 할것도 또한 없게된다.   바라밀 본지를 모르는데서 무명적인 착각행은 거듭되고 식은 더욱 妄識을 더해가고 인생은 우비고뇌와 노사의 바다에 빠져들게 된다.  이러한 사정을 圓覺經에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고 있다. <삼세여래는 청정각상을 원희하여 무명을 영치하고 불도를 이루느니라.   무엇이 무명일까 ! 일체중생이 無始以來로 가지가지로 전도 할것이 마치 길을 迷한 사람이 사방을 바꿔 앎 같이 四大로 그릇 자신을 삼고 六塵緣影을 자기 마음으로 삼느니라.   비유하면 病目이 공중에 幻華나 제2월을 보는 것 같으니라...... 中略 ---이 무명이라 하는 것은 실로는 있는 것이 아니니 저 꿈꾸는 사람이 꿈속에서는 없지않지만 깨고 나면 없는것과 같으니....>여기 원각경 말씀에 淸淨覺相이라 함은 실상인 바라밀지를 말함이다.   이 청정각상을 뚜렷이 비추어 봄으로서 무명을 永永끊는다 하였으니 이는 청정각에는 무명의 그림자도 아주 없음을 말함이요 동시에 무명을 끊는다는 것은 무명을 없이하는 것이 아니라 청정각을 비추어 봄으로서 무명이 이름조차 없음을 확인하는 것임을 아는 것이다.   그래서 무명이 없은 즉 行이 없고 행이 없는 즉 識이 없고 따라서 名色, 六入, 觸, 受, 愛, 取, 有, 生, 老死도 없게된다.  이와같이 苦의 근원을 照破하여 인간고를 소탕하는 방법이 십이연기의 敎義가 된다.

(8) 바라밀다와 四聖諦

<경문>

苦集減道도 없으며......(無苦集減道)

1. 四聖諦(사체)

諦라 함은 범어의 Sotya진리의 뜻.   사종의 진리를 의미한다.   이는 십이연기에서 드러난 인간고 생성의 과정과 그를 멸하는 방법을 기초로 하여 조직된 敎法으로서 부처님께서 녹야원에서 說하신 최초설법이 이 교법이었다.   四諦의 第 一은 <米인 이 세계는 모두가 苦다.>  라는 苦諦요, 第 二는 , <苦의 원인은 끝없는 愛執이다. >라는 集諦요, (애욕 집착 - 번뇌) 第 三은 <이 愛執의 완전한 絶滅이 고가 멸한 궁극의 理想境이다.>라는 滅諦요, 第 四는 <苦가 멸한 이 경지에 이르러면 八正道를 수행하여야 한다>는 道聖諦다. (팔정도는 정견, 정사, 정어, 정업, 정명, 정정진, 정념, 정정) 사체중 고체와 집체는 미망세계의 결과와 원인을 보인것이고,滅諦와 道諦는 진리를 증오한 경계의 결과와 원인을 보이고 있는것이다.    또는 이 사체의 법문에서 우리는 세가지 가르침에 착안하여야 한다. 첫째< 이것이 고체 내지 도체니라.> 하신 시전이니 이는 우리에게 진리인 교법을 내어 보이심이요, 둘째<이 고체 내지 도체는 두루 알아야 하느니라. > 하신 권전이니 이니 우리에게 이법을 배우고 닦고 證하라고 권하심이요,  세째는 < 이 고체 내지 도체는 편지되었느니라. > 하신 등전의 宣示이다. 이는 부처님이 이미 이 最勝眞理를 증득하신 大覺者이며 解說者임을 보이심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