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연燦然 , 구원久遠의 불일佛日을 보자

권두언

2007-12-26     광덕스님

         현대인은 개성의 상실을 슬퍼한다.  괸료,  기계화한 사회의 종속물이고 산업조직속의 부곡이게 됨을  개탄한다.  대중이라는 이름 밑에 독자적 의식도 의지도 이성도 판단도 없다. 주어진 여건에서  시속 따라 적응하여 살아가면 고작이다. 정치적 형성을 이루어 주는 요건인가하면 산업 공급에 종속하고 문화적으로 관객이면 그것으로 됐다.   진리이고 정의이고  이상이고 靑銅시대 이야기.  고작의 소망이다.  무기력, 이기, , 퇴폐..... .이것을 서러워한다.

   왜 서러워하는가. 속이 차지 않기때문이다. 내면에서 끊임 없이,  이유 없이 땅속에 스미듯이 밀려오는 울음이 그것으로 달래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火酒를 들이키고 발가벗고 뛰고 발광한 듯 몸을 뒤틀며 흔들고 노래하듯 흐느끼고 동물성을 성화하고 방황, 부랑,  폭발로 가슴속을 호소한다.

   그렇다고 울음이 가라앉는 것이 아니다. 우수 깃든 표정이 그의 가슴을  착색한다.  그래서 우는지 웃는지 무표정의 슬픔이 사람의 마음을 위로한다.   그렇다고 아무것도 해결난 것은 없다.  먹고 자고 나면 해는 다시 동산에 뜬다.  다시.....   .

   언제까지 이럴 작정인가. 생명의 원상을 덮어 둔 채 그 위에 도금하는  치장으로는 영원히 [ 인간 억압]의 고뇌는 풀릴 날이 없는 것이다.   거짓 가지고는 속고 싶어도 속아지지 않는 것을 어찌하겠는가?

   마땅히 현대는 허위의 둥치에서 과감히 뛰쳐나와야 한다.   자신의 진실 면목을 향하여 순수하고 실답게 생명을 펴나아가야 한다.

   생명은 주체적 창조력이며,  인간은 만유의 주체자다. 객체가 될 수 없다.  결코 속성화 할 수 없다.  현상, 불질,  환경,  조건은 그것이 元性이 아닌 屬性(속성))이며  주체가 아닌 객체다. 그러므로 우리가 물질에서 가치를 찾고 감각에서 자아를 인식하거나 육체에서 충족을 얻으려 할 때 거기에 메꾸어지지 않는 공간은 더욱 깊어지고 뼛속에 스며드는 처참한 공허를 채울 길이 없는 것이다. 주체에서 객체에로의 전략,  창조자에서 피조물로의 타락이 있다.  생명의 왕국에서 쫓겨난  자아 —   현대인 괴뇌의 핵심은 바로 이곳에 있는 것이다.

   부처님은 말씀하셨다.  [중생은 각성이다.]  [현상은 거짓이니 현상에 현혹도지 않을때 여래를 본다.]고.

     현상은 거짓이며 실이 아닌데 어찌하여 우리는 여기에 현혹되어 그에 빠져들어 무량공덕장인 본성을 잃고 영원한 오뇌의 방향을 자조하는가. 그런 탐착,  비소,  겁약에나 돌려 두자.

   오는 20일은 세존 출가일,  (음 2월 8일),  27일은 세존께서 열반을 시현하신 날이다.  (음 2월 15일)    진묵겁전에 일찌기 성불이시건만 우리를 위하여 범부상을 지으시고 범부성에서의 용감한 탈출을 친히 보이시고  다시 열반 불멸의 거룩한 빛을 우리 가슴속에 가득히 부어 주신 거룩한 날이다. 

   다같이 눈을 크게 뜨자.  그리고 우리의 푸른 하늘 청정본성에 찬연(燦然)히 빛나는 佛日을 바로 보자.  그래서 불자의 신성과 권위를 누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