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자기발견의 기쁨

특집Ⅰ · 주는 기쁨 받는 기쁨

2007-12-25     이선숙

진정한 기쁨은「주체」(Subjekt)의 자기를 발견하는 것이다. 이것은 논리적 추상적세계가 아닌 우리자신의 생존양식을 통과하는 동안「체험과 경험」으로 부터 얻어진 주체적 자기생을 뜻한다. 선적실천수행(禪的實踐修行)으로서 자기의 가능성을 발견한다.

 선의 수행은 인간의 정신적, 육체적자기투쟁의 발단을 갖게되고, 거기에서 인간의 참모습을 들어 낸다. 선(禪)은 인간에 있어서 그대로 들어나지 않고 개인의 실천적 수행능력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수행자마음의 자세에 의하여 힘을 얻는 것만은 사실이다. 이때에 얻은 힘은 기쁨중에 기쁨이라 하겠다.

 야스퍼스(K. Jaspers)는 불교의 행위는 실존의「내재(內在)의 접촉」이라고 했다. 마치 스스로 기쁨을 일으키는, 샘에서 물을 길어내는 것과 같은 것이다.

 중세철학자 아우구스티니우스(Augustinus)은「인간의 즐거움은 영혼의 물을 길러내는 것이다」고 했다.

 내재의 접촉은 창조의 원동력으로 능력및 소질을 발달케 한다. 그것은 현실사회에 적응케한, 즉 실용의 가치로서 주어지고, 주체적 생을 의식 시킨다. 뿐만아니라 개인은 타(他)를 의식할 수 있고 정신적 공간을 설정케하고, 그것은 끝없이 타인과의「교통(Kommunikation)」을 감행케한다. 개인이 사회와 상호교통을 감행함으로써 자신을 유지하게 됨도 의식한다.

사회에 있어서 불교정신은「포괄성(包括性)」을 가지고 자비, 박애, 사랑등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그것은 사회적추구의 목표로서 존재하지 않고, 늘 자신의 내재에 접촉으로서 개인의 체험과 경험의 충실된 주체적 삶을 요구하면서「지양(止埸), Auaheben」으로 있다.

 우리가 우리자신의 발견을, 가족, 애인, 친한벗 등을 통하여 발견하지만, 그것에 앞서, 우리자신의 삶은 추체적 체험으로 통하고 있다.

 그러나 오늘의 우리는 이러한 주체적 삶을 잃어가면서 오직 생존경쟁에 동분서주하고 있다.

 참모습을 잃은 상황에서 주고받는 기쁨은 내재적 접촉은 마치 옛이야기가 되어가듯, 암담해지면서, 형식으로 일관되고 있을 뿐이다. 웃음을 잃은 생명의 형태는 활기를 잃어갔다. 마치 꽃은 향내로, 열매는 씨앗을, 인간은 선적인 마음을 잃어갔다.

 칼 · 야스퍼어스는 우리의「기쁨은 현실의 강제로부터 해방된 생명력의 소박한 환희이며, 그 기쁨은 내실을 얻는 것」이다고 했다.

 기술과학 및 물질문명의 발달의 한계는 인간 정신의 퇴락성을 가져왔다. 마음은 불안과 공포등으로 가득 차 있고, 지구의 온갖 공해는 생명을 침해가고 있다.

 니체(Neetzsche)는 현대문명을 예언적비판을 가하여 인간은 스스로 생명을 도박하여 비누거품같이 삭재한다고 했다. 그리고 그는 본래의 생을 되찾기 위해서 희랍적 생(生)으로 환원할 것을 주장했다.

 己未年의 새해는 현실에 있어서도 중요한 새로운 시기이지만, 역사적으로는 민족의 거화(炬火)를 안고 있는, 혹은 시련과 온갖 수난을 겪은 해이기도 했었다. 금반 이러한 새해를 맞아 가장 가까운 자기내실의 발단의 선적실천의 수행을 시도하여 생명을 생명으로 환원하고, 개인은 자신으로 환원될 수 있도록  선적상황을 마련할 것을 다짐한다.

 진정한 기쁨은 마음을 편히할 수 있는 자기자신에 귀를 기우릴 때만이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