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원(願)․소망

특집1/ 소망은 이루어진다

2007-12-23     이복숙

어느 누군들 스스로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난 사람은 없다. 그와 마찬가지로 어린이가 어른 되고 어른이 늙은이 되는 것 역시 아무도 거역하지 못하는 자연의 섭리일 뿐이다. 될 수만 있다면 늙지도 죽지도 않으면 좋겠지만 언젠가는 수명이 다하여 본래의 흙으로 되돌아 갈 수 밖에 없는 것이 우리들 인생이다. 과학이 아무리 위대해도 이 엄숙한 자연의 섭리를 막을 수는 없다.

그래서 우리는 위대한 과학보다도 실로 위대한 자연의 섭리에 의해 무상의 길을 동행하고 있을 뿐이다. 흔히 인생을 잠시 일었다 스러지는 물거품이라고들 하지만 그야말로 엄격한 기한부로 주어진 우리들의 삶이다. 이토록 소중한 삶이기에 우리는 살아있다는 존엄한 현실자체에 감사드릴 일이다. 누구든 사람이면 제가끔 다 가지는 괴로움 같은 것의 처리(處理)를 다룬 나의 졸시(拙詩)를 잠시 인용하면,

가슴이 아리거든
파아란 멍이 들어
가슴이 아리거든

초록빛 아래 위
꽃잎 같은 옷을 입고

새파란
하늘 밑에서
쉬어 가자 잠시만,

치마폭 사이로
새어 나는 아픔일랑

바시시 웃음 짓는
옥잠화로 피워서

홍댕기
봉채머리에
꽃비녀로 꼽자고,

꽃잎 새로 울음 소리
번져 나거든

낙엽이 마구 쏟는
들가에 앉아서

아직도
살아 있구나
두손 모아 감사하자

하등동물이나 미개 원시인이라면 괴로움을 괴롭다 아우성 쳐버리겠지만, 우리들 체모를 갖춘 현대인의 경우는 졸시에서 보는 바와 같이 그럴 수도 없다. 이 시에서는 가령 괴로움의 씨를 멍으로 가정해 보았다. 첫 연에서 보는 바와 같이 그 괴로움을 우리는 짐짓 감추고 웃으며 스스로를 반성해 볼 일이다.
그래도 없어지지 않는 괴로움은 둘째 연에서와 같이 차라리 꽃으로 피워보는 아량이 있어야 할 것이다. 그렇게 까지 해도 없어지지 않는 심한 괴로움이 있어 자꾸만 날 괴롭히면 마지막 연에서와 같이 넓은 들에 나가 낙엽이 져가는 것을 보면 나는 그래도 아직도 살아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우리는 괴로워 하기는 커녕 이 살아있다는 사실에 감사드릴 일이다.

아무리 큰 괴로움도 이 살아 있다는 큰 고마움 앞에 놓고 보면 살아 가는 과정에 흔히 있을 수 있는 조그만 불만족일 뿐이다. 만일 살아 있지 않다면 그것마저 없을 것이 아닌가. 조그만 불만족을 크게 앓을수록 소중한 삶이 조금이라도 더 낭비될 뿐이다. 우리는 기한부의 짧은 삶을 낭비까지 할 여유는 없다.
우리는 살아 있는 동안 남과 나를 위해 나의 힘이 미치는 최대한의 경지까지 열과 성을 다하여 힘껏 살다 갈 일이다. 기쁨도 슬픔도 살아 있는 사람만이 누리는 특권이 아닌가. 그래서 나에게 부딪치는 것은 기쁨이든 슬픔이든 모두 소중한 것이다. 기쁨을 받아 들이는 일도 좋지만 슬픔을 기쁨으로 바꾸려 애쓰는 수양의 과정은 더욱 좋은 것이다.

남에게 해가 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라면 내가 하고 싶은 일, 즉 소망하는 일에 소신껏 열과 성을 다할 일이다. 좋은 결과도 좋은 것이지만 내가 할 바를 다 한다는 그 과정이 더 존귀한 것이디. 점이 이어져 선이 되는 것과 같이 살아있다는 거룩한 현실 속에 담긴 그때그때의 작은 소원들이야말로 제가끔 거룩하고 진지한 것이다.

간절한 소원에는 반드시 그만한 노력이 따르게 마련이어서 우리가 소망한다는 것은 그만치 그것을 위하여 노력한다는 뜻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유성이 흐르는 짧은 시간에 마음 속의 원을 빌면 소원성취한다는 말은 그 얼마나 현실성이 있는 말인가. 그토록 갑자기 깜박하는 짧은 시각에도 확실하게 지적하여 빌 수 있도록 절실히 간직된 소원이라면 그 본인은 적어도 그것을 앉으나 서나 평소 노력하고 있을 것이 아닌가.

솟아 오르는 보름달을 향하여 절을 하는 여인의 소원도, 시주함에 동전을 던지며 비는 소원도…… 모두 모두 그렇다. 돌아가신 부모님이 되돌아 오셔서 나에게 효도의 기회를 달라는 것이나 나만은 영원히 늙지도 죽지도 않기를 바라는 것은 모두 노력으로 되는 일이 아니기 때문에 소망해도 하는 수 없지만. 과학이나 인력으로 어쩔 수 없는 불가항력의 것을 제외하고라면 우리는 마음껏 소망하며 노력할 일이다.

다만 작은 소망이 살아 있다는 큰 고마움을 낭비하거나 해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 말이다. 자식이 잘 되는 일, 사랑하는 이가 잘 되는 일, 내가 향상하는 일, 마음 편한 일…… 등등 앞으로도 살아 있는 한 그때 마다 그때에 알맞는 조그만 원이나 그것을 위한 노력은 늘 계속 되겠지만 나의 소망의 큰 흐름은 기쁨이든 슬픔이든 나에게 주어진 나의 삶을 언제나 소중히 감사하며 사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