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겁외가] 구족다문 俱足多聞

劫 外 歌

2007-12-21     경봉 스님

 말과 글을 떠난 법문

  (법좌에 올라 이르되)

 오늘 단비가 부슬부슬 내리니 모든 일이 마땅하여 만물이 풍성하게 자리니 아난이 합장하고 가섭이 눈섭을 날리는 시절이라 곧 영산회상이로다.

  다시 일반 기특한 일이 있다. (하고 묵연히 선상을 한번 치다.)

 말과 글로써 법문을 듣는 것을 다문이라 하고 말과 글을 떠나서 법문을 듣는 것을 구족다문이라 한다. 부처님이 영산회상에서 삼처전심을 하셧는데 그 가운데서 꽃 한 송이를 들어 보이신 것 하나만 알면 이것이 곧 구족다문인 것이다. 이법은 입을 열어 말과 글로 하는 것이 아니라 종사가 법상에 오르기 전에 법이 다 되었고 청중이 자리에 앉기 전에 법이 다 되었다. 이것이 곧 구족다문이다. 여기서 살펴보아야 선가의 진지한 묘미를 맛볼 수 있는 것이다.

 부처님의 진리법문은 참으로 만나기 어렵고 듣기가 어려운 것인데 한번 들으면 마치 천년만년이나 어두운 방에 등불을 밝힌 것과 같고 천년 만년이나 더럽혀진 못에 수청주를 담근 것과 같다. 수청주란 구슬은 아무리 더러운 못에라도 넣으면 물이 맑아지는 보배구슬이다. 그래서 금생에 오만가지 망상 번민과 모든 죄업이 이 법문만 들으면 다 없어진다. 이 대승법문을 모르고 듣더라도 한번 들어서 여러분들의 여래장에 다 넣어 놓으면, 여러분들이 나중에 이승을 떠나서 나쁜 갈래를 헤매더라도 이 진리법문이 여러분을 밝은 길로 인도한다. 곧 이 진리법문이 영혼의 길잡이인 것이다.

 몸을 사뤄 빛을 낸다.

 일상생활에 애로와 난관이 있으면 용기를 내어야 한다. 물도 흘러가다가 바위에 부딪치거나 돌에 부딪치면 소리를 내고 허공에 치솟으며 흘러가고 또 깊은 구덩을 만나면 많이 모여서 내려간다. 물도 흘러가다가 애로가 있으면 그렇게 용기를 내는데, 하물며 사람이 앞으로 나아가는 진로에 애로가 있고 난관이 있을 떄 그것을 타개할 용기가 없어서야 되겠는가? 용기를 내야 한다. 사람이 할 수있는 일이면 무엇이든지 다 할 수 있다 하는 용기를..... .

 이 부처님 법문은 짐승이나 허공을 나는 새나 미물들이 들어도 속이 시원해 지고 해탈을 얻게 되는데 왜 그런가 하면 중생들의 말은 망상 속에서 나와 모두 때와 더러운 염착이 있지만 부처님은 탐진치의 삼독과 팔만사천진로가 다 벗어진, 거기서 나오는 말이기 때문에 짐승이나 새가 듣고는 무슨 소리인지 몰라도 듣기만 들으면 속이 시원해 지는 것이다.

 이 자리는 본래 고요한 자리건마는 자기 스스로 잘못해서 구정물 일으키듯 흔들어 놓은 것이다. 본래 고요한 자리를..... .

 지극히 고요하면 편안하고 아늑한 경지가 들어 오는데 몸과 마음이 함께 맑아져서 그 마음이 맑아지면 밝아지고, 밝아지면 통한다. 진거리를 통하는 것이다. 볍씨를 모판에 뿌리면 거기서 움이 트는데 볍씨의 귀에서 터진다. 나락이 안 썩으면 움이 안 터진다. 움이 터져서 벼가 자라서 가을에 나락을 거둘 때에는 한줄기에 적어도 二五O낱이나 붙는다. 한 알의 나락이 썩어서..... .

 촛불도 제 몸이 타지 않으면 광명이 나지 않는다. 향도 제 몸을 사루어야 향기가 난다. 자기가 가정을 위하고 사회를 위하고 국가를 위하고 세계 인류를 위하자면 자기의 몸이 나락 썩듯이 헌신적인 정신으로 수고를 아끼지 말아야 화평의 미덕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나락이 썩고 향이나 초가 제 몸을 태우며 빛을 내듯이... ... .

봄이 돌아와서 봄을 찾으러 아무리 다녀도

헛탕만 치고,

공연히 짚신 신고 이산 저산으로 헤매었네.

지벵 돌아와 웃으며 후원 매화가지를 휘어

잡아 향기를 맡으니,

가지마다 봄은 이미 무르녹았네.

 봄을 찾으려고 자꾸 다녀도 봄을 못 보았는 데 꽃 향기를 맡아보니 봄이 거기에 꽉어려 있다는 말인데 이 자리 소소영영하여 무어라 말할 수 없는 이 자리는 멀리 있는 것이 아니다. 자기를 조금도 여의지않고 곧 자기에게 있건마는 천리 만리나 멀어지고 어두어졌다.

 기바동자 이야기

 예전에 기바동자가 의학을 십년 간이나 배웠다. 십년을 배운 뒤에는 얼마나 더 배워야 의사가 되곘는??하는 의문이 떠올랐다. 그래서 자기 스승에게 " 제가 십년 동안이나 의학을 배웠는데 얼마나 더 배워야 의사가 되겠읍니까? " 선생의 말이 " 그래, 그럼 네가 어디든지 가서 약초가 아닌 풀을 뜯어 오너라. "

 기바동자가 산으로 들로 헤매며 약초 아닌 풀을 찾아 다녔으나 약초 아닌 풀이 없이 모두 다 약초였다. 이 풀은 어느 병에 해당되고 저 풀은 어떤 병에 잘 듣겠다는 것이 마치 거울 속에 자기 모습 보듯이 환히 알겠다. 이 산 저 산으로 다녀봐야 도저히 약초 아닌 풀을 구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다시 돌아와 스승에게, " 제가 사흘 동안이나 온 산천을 다 헤매며 찾아 보았지만 약초 아닌 풀은 발견할 수가 없었읍니다."

 " 그래 그만하면 훌륭한 의사 노릇 할 자격이 있구나. 자 이제 가거라."

 여러분들이 이 도리를 자꾸 참구한다. 공부하는데 금방 거기 있던 것이 어디로 갔는지 문을 닫아 놓았는데도 산으로 들로 다녀오고 그렇지 않으면 지나간 일, 현재 일, 미래 일이 죽 끓듯이 끓고 도라고 하는 것은 무엇인지도 모르고 이렇지마는 이 자리를 바로 알면 온갖 것이 도 아님이 없다. 우리의 일상생활 밥먹고, 옷입고 하는 온갖 것에 도 아님이 없다. 정신을 한 곳으로 모아서 무사무념 그 무아의 경지에 들어가야 한다.

 조가 여인 법문

  소산 광인선사라는 분이 있었는데 누가 불법을 물으면 나무로 깎은 뱀을 들어 보이고는 " 이것이 조가의 여인이다" 한다. 누가 언제 어디서 불법을 어떻게 물어도 늘 나무뱀을 들어 보이곤 하였는데 이것이 곧 법문인 것이다.

 조씨라는 사람이 배를 타고 바다를 항해하다가 어떻게 잘못하여 그곳 바닷물에 빠져 죽었다. 동행하여 가던 사람이 조씨의 부인에게 가서, 당신 남편이 물에 빠져 죽었노라고 슬픈 소식을 전하여 주니 그 부인이 애통해 하며 자기 남편이 빠진 곳에 까지 데려다 달라고 한다. 그래서 함께 배를 타고 남편이 빠진 곳에 오니 그 여인이 바다에 뛰어들어 이내 흔적이 없이 가라 앉았다.

 사흘이 지난 뒤 바닷가에 조가의 연인이 죽은 자기 남편을 껴안고 파도에 떠밀렸다. 그 망망대대에 어디까지 안아가지고 껴안고 나왔는지 참으로 불가사의한 노릇이다.

 소찬스님이 공연히 나무뱀을 들고 " 이것이 조가의 여인이다" 한 것이 아니라, 조가의 아낙이 바다에 뛰어들어 자기 남편의 송장을 껴안고 바닷가에 떠 밀린 그것을 말한 것이다. 송장이 가서 송장을 찾아 안고 떠밀린..... . 뜻은 거기에 있는것이다.

 소산스님이 그렇게 늘 설법을 하였는데 그 뒤에 자수선사라는 분이 여기에 착어를 달기를,

 별면부여화유소하고, 리정난사죽무심이로다. 헤어지는 모습은 꽃이 웃는 것만 같지못하고, 이별의 정은 무심한 대나무와 같을 수 없어라.

사람들에게 공연히 조가의 여인을 말해서, 서로 생각하여 병만 점점 깊게 하는구나.

 그러니 소산스님이 나무뱀 이야기에 대하여 한방망이 준 것인데 어디가 방망이를 준 곳 인가? 그것을 살필 줄 알아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