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어떻게 소망은 이루어지나

특집1/ 소망은 이루어진다

2007-12-21     정태혁

(1) 인간의 소망은 하나
모든 사람은 생각도 다르고 신앙도 다르니 소망도 다르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근본 바탕에 있는 큰 소망은 하나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인류의 소망은 다르면서도 하나로 귀일된다고 할 것이다.
우리가 느끼는 것이 다르고 행동도 통일되지 못하는 것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따라서 문학에 있어서도 개성이 있고, 한 민족문학은 그 나름대로 특수성이 있게 되며, 또한 같은 종교라고 하더라도 그 믿는 깊이에 있어서나 그 폭에 있어서도 서로 다른 것이 사실이다.
이와 같이 신앙에서나 개인의 생각이나 행동이 각각 다르다는 것을 어떻게 생각할 것인가? 그러나 인간이 이와 같이 특수성을 가지면서도 또한 어떤 통일된 무엇을 요구하는 면이 있다. 신앙을 같이 하는 사람끼리 모이기를 바라고, 문학작품에 동감을 받으면 희열을 같이 느낀다. 이와 같이 인간이 서로 다 같이 통하는 점을 중시하여 그것을 이루어 보려고 하는 것은, 인간의 특수성을 중요시 하는 것과 못지 않게 중요한 일이다. 이 점을 들어서 인류는 서로 다르면서 같다고 하고 인류가 하나로 뭉치자는 운동도 있게 되고 세계를 하나의 기구 속에 묶어보려는 운동도 있게 된다.
인류가 하나가 되고 하는 생각은 종교적으로 말하면 어떤 절대자에게 귀의하는 것으로 나타나기도 하고 또한 그것은 인류의 구원한 서원(誓願)으로서 인류의 비원(悲願)이기도 한 것이다.
인간이 가지고 있는 구원한 소원으로 보면 인류는 하나가 되지 않으면 안 된다. 어디까지나 한 마음, 한 뜻으로 손을 잡고 걸어가야 한다고 생각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제에 있어서는 그렇지 못하다. 부모와 자식이 하나가 되지 못하고, 남편과 아내가 한 마음이 되지 못하고, 나라와 민족도 그러하다. 곧 모든 사람은 제 나름의 길을 걷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인간은 특수성과 보편성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확실히 인식하는 일은 매우 중요한 알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이율배반적인 것 같으면서도, 그렇지 않은 것이 인간의 참모습이다. 특수성 만을 긍정하거나 보편성만을 긍정하는 데는 무리가 온다. 이들을 부정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특수성과 보편성은 둘이면서 하나다. 이들 둘이 조화되어서 대우주의 조화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붉은 꽃, 횐 꽃, 작은 꽃,큰 꽃…… 모두 어울려서 되어 있기 때문에 아름다운 동산이 된다. 아름다움이란 서로 다른 것이 조화된 세계요, 거룩함이란 선악, 미추(美醜)가 서로 둘이면서 둘이 아닌 세계에서 조화된 것이다. 부처님의 본원(本願)도 잡다한 중생의 소원이다. 중생들의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소원이 하나의 근본 소망 속에 들어가서 섭수된다. 그러므로 인류의 소원은 크게는 하나요, 작게 나누면 모두가 다르니, 여기에 멋진 인간생활이 있게 되는 것이 아닐까?

2) 부처님은 나의 거울
나는 인간이다. 그러면서 인간이란 어떤 것이냐를 모르기 때문에, 나 자신을 또한 모른다. 나를 알기 위해서는 인간을 알아야 한다. 인간이란 무엇인가 하는 문제는 자고로 큰 수수께끼에 속해왔다. 모든 옛 신화(神話)도 결국은 이 문제를 해결하려는 것이요, 문학 종교가 모드 그러하니 바이블이나 어떤 경전들도 모두가 인간을 추구해 놓은 것이다.
그런데 인간은 다른 동물과 달라서 무엇을 탐구하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외계(外界)의 탐구와 내계(內界)의 탐구의 두 길로 나누어지는데, 외계의 탐구가 인간의 지식을 형성하여 과학이 되고 있다.
이러한 인간의 지식은 인간생활을 외적으로 향상시키기는 했으나, 또한 그 반면에 인간을 불행하게 만들고 있다. 현대의 고뇌가 그것이다. 그러므로 현대는 내적인 생명을 탐구하는 지혜의 눈이 어두워진 시대라고 하는 것이니 인간의 행복을 가져와야 할 과학이 인간의 불행을 초래하고 있는 것은, 곧 과학을 선용(善用)하는 지혜를 잃었기 때문이다.
지혜라는 것은 내적세계(內的世界)를 똑바로 보고 인간생명을 살리는 눈이다. 곧 내적세계를 본다는 것은 인간을 아는 눈이다. 그러나 나라는 것을 아는 것은 쉽고도 어려운 문제이다.
자기가 자기를 알려고 할 때에 거울을 비춰보면 내 얼굴을 알 수 있듯이 부처님이라는 거울에 비춰보면 나를 알 수 있다. 인간은 부처님이라는 거울에 비춰볼 때에 자신의 참모습을 알 수 있다.
인간이란 번뇌에 싸여 있는 존재라는 것, 또한 인류는 인류로서의 구원(久遠)한 비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3) 불서원(佛誓原)은 성취된다 부처님은 인류를 구제하시려는 비원을 가지고 계신다. 그 비원은 무한하다. 그러므로 우리도 올바른 서원을 일으켜서 부처님의 거울에 비춰질 때에 그 서원은 이루어진다. 중생의 서원이 이루어진 것이 곧 불보살의 서원의 성취요, 불보살의 서원의 성취가 곧 중생의 서원 성취다.
그러므로 우리의 서원은 부처님의 서원 그대로라야 한다. 거울에 우리가 마주 대하지 않으면 내 얼굴을 보지 못하듯이 부처님과 대면하지 않고는 서원이 성취되지 않는다.
부처님과 더불어 서원을 세우고 부처님의 부르심을 따르는 것이 염불이요 다라니이다. 부처님은 대비대원(大悲大願)이시다. 부처님이 저 언덕에서 부르시는 대로 일심으로 달려가는 나그네가 가는 그 길이 백도(白道)요, 그 길은 불보살의 길이다.
번뇌와 애욕이 유혹하는 두 강물에 현혹되지 말고, 오직 한가닥 길로 달리면 반드시 저 언덕에 이른다. 그렇게 돼있는 것이 인간이다. 인간의 본연의 서원으로 돌아가면 대립이나 장벽이 없다.
이 때에 비로소 부처님의 빛이 비치어 인간이 부처님의 품에 안긴다. 인류의 공통된 소망은 진.선.미의 실현이다. 부처님의 소망도 이것이다. 그러므로 인간이 올바른 서원을 세우고 불보살에 의지하는데 어찌 소망이 이루어지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