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회의 실증] 남자가 여자로 환생하다 (1)

윤회의 실증

2007-12-21     이안 스티븐슨

     [1] 1954년 4월 그날

   인도 남방에 있는 섬나라 스리랑카의 중부 지방인 헤두나웨와(Hedunawewa)라는 곳에 1959년 2월 14일 한 여아가 탄생하였는데 그가 바로 이번 보고의 주인공인 그나나틸레카 바데위타나(Gnanatilleka Baddewithana)이다.
  『지금 생각해 보니까 아주 어렸을 적부터 이애는 전생 이야기를 하고 있었어요. 두 돌이 지나서부터는 명백히 전생의 사실을 말하곤 하였으니까요.』
   1961년, 이 소녀의「전생기억」을 확인할 목적으로 찾아간 나를 맞이하면서 이 소녀의 아버지 D.A 바데위타나씨가 한 첫 말이다.
  『어느 곳엔가 어머니와 아버지가 따로 있다는 거예요. 게다가 오빠도 둘이나 있고 여자 언니들은 아주 많다는 겁니다.』
  『그, 부모가 따로 있다는 지명(地名) 같은 것은 말하지 않던가요?』
  『네, 처음에는 그런 것을 말하지는 않았었는데 후일에는 지명을 말하기도 하였답니다.』
  『그러면 대체로 어떤 일들을 말하고 있었던가요?』
   이러한 대화에서 밝혀진 내용이 다음과 같은 것이었다.
   이 소녀가 다섯 살이 될까 말까 할 때에 하루는 백묵으로 땅 위에다 해튼(Hatton)이라는 거리의 모습을 설명하고 있었다.
  『여기에는 다리가 하나 있어요. 그리고 여기하고 여기에는 길이 나 있는데 오른쪽 길은 해튼역과 학교 사이에 있는 길이고, 그 길에는 가로수가 늘어서 있어서 아주 조용한 곳이었는데, 시내나 역 근방에는 건물도 서 있었어요.』
   다섯 살짜리 소녀의 지리 설명을 듣고 있는 사람들은 파다 대학(Sri Pada College)의 교수들 세 사람이었는데 이 사람들은 해튼으로부터 40마일이나 떨어져 있는 헤두나웨와로 그나나틸레카양을 보기 위해 찾아온 것이다.
   3인의 교수들의 표정에는 말할 수 없는 놀라움이 가득하였다. 더구나 스미타팔라(D.V. Sumithapala)씨로서는 유달리 느껴지는 바가 있어서 팔짱을 낀 채 이 소녀를 내려다보면서 한숨을 짓기까지 하는 것이었다.
   이 세 사람이 놀란 것은 결코 무리가 아니다. 그들은 각각 마음속으로 다음과 같이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도대체 이럴 수가 있단 말인가? 이 아이가 한 번도 해튼에 가본 일이 없다고 하니……』
   헤두나웨와는 중부 스리랑카의 벽촌이고 이 소녀는 최근에 어떤 일이 있어서 부모를 따라 탈라와겔레(Talawakele)라는 곳에 다녀오기 전까지는 이 마을 밖에 나가 본 일조차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탈라와겔레라는 곳도 해튼으로터 12마일이나 떨어져 있는 곳인 것이다.
   그런데도 아주 정확하게 그리고 상세하게 해튼의 그 복잡한 거리 모양을 그림으로 그리면서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스미타팔라 교수의 뇌리에는 7년 전에 있었던 어떤 광경이 떠올랐다.
   그것은 1954년 4월 15일의 일이다. 이해 4월은 이 나라 전체가 축제 분위기로 크게 들떠 있었는데 이날은 특히 해튼의 거리가 그 절정에 이르고 있었던 것이다. 특히 정거장에는 수많은 스리랑카 국민들과 함께 영국 사람들까지 모여들어서 특별 열차를 기다리고 있었다.
   마침내 저 멀리서 열차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하고 곧 이어서 구내에 들어섰다.
   그러자 군중들로 부터는 환호소리가 울려 퍼지고 스리랑카와 영국 두 나라 국기가 펄럭거리면서 축제 분위기를 한층 북돋웠다.
   열차는 이 나라에서는 흔히 볼 수 없는 광채 나는 최고급 특별 열차였다. 머지않아 품격 높은 모자를 쓴 위엄 있는 한 여성이 얼굴에 인자한 웃음을 띄우면서 군중에게 손을 흔들어 답례하는 모습이 보였다. 군중들은 다시 환호하였다. 이분이 다름 아닌 영국여왕 엘리자베스 2세였던 것이다.
   엘리자베스 여왕이 옛 영국 영토인 인도와 스리랑카를 방문한 것은 이때가 처음인데, 바로 얼마 전인 1948년에 독립한 스리랑카로서는 여왕의 방문을 큰 경사로운 행사로 삼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열차의 통과역인 해튼 역시 굉장히 들떠 있었던 것이다.
   스미타팔라 교수는 7년 전 영국여왕 방문 때의 광경, 특히 바로 눈앞에 본 여왕각하의 얼굴을 생각에 떠올리면서 마음속으로 혼자 속삭였다.
  「그렇지. 그때에 그 틸레케라트네(Tillekeratne)도 차창을 통해서 여왕을 보았었겠구나. 틸레케라트네는 그때 나이가 열 셋이었을 거야, 1941년생이었으니까. 그렇다면 여기 있는 이 헤드나웨와의 소녀는?……」
   틸레게라트네라는 소년은 그 당시에 탈라와켈레로부터 해튼까지 원거리 통학을 하고 있던 학생이었는데 이날[즉, 3인의 교수들이 그나나틸리카를 찾아간 1961년] 현재로는 이미 망인(亡人)이었다. 이 소년은 여왕 방문이 있는 해 11월 9일에 세상을 떠났다.
   가본 일도 없는 해튼거리의 모양을 정확히 그려 보인 유년기의 소녀 그나나틸리카, 그리고 해튼의 학교에 다니고 있었던 고(故) 틸레케라트네 소년, 이 두 남녀의 사이는 아무런 관계도 없는 것 같지만 사실은 굉장히 밀접한 관계가 있다. 그것은 무엇일까? 차츰 밝혀 가기로 하자.

     [2] 전생의 가족을 이야기 하다

   이 소녀는 늘상 자기 전생의 가족에 관해서 다음과 같은 내용의 이야기를 그 주변 사람들에게 해주곤 하였다.
   -아버지는 우편 배달부였었다. 어머니는 꽤 뚱뚱한 편이었다. 형은 개에 물린 일이 있다. 형 중의 한 사람의 이름은 다르마다사(Dharmadasa)였다. 어머니는 가끔 장작을 사오곤 하였었다. 나는 누이 한 사람과 함께 학교에 다녔다.-
   하루는 이 소녀네 집에 마을 사람이 다니러 왔다. 이집은 헤두나웨와 마을 중앙으로부터는 좀 떨어진 숲속 넓은 공터에 자리 잡고 있었다. 그래서 꽤 중요한 용무가 아니고는 마을 사람들이 이 집까지 찾아오는 일이라곤 별로 없고 손님이 아주 드문 집이었다. 이 손님은 약 한 달가량을 16마일 떨어진 곳인 탈라와켈레에 가있다 왔기 때문에 그곳 이야기를 할 겸 해서 찾아온 것이었다.
  『탈라와켈레에는 산도 있고 기후도 이곳과는 다르더군. 생활하는 것도 이곳과는 좀 다른 것도 있고.』
  『그래? 어떻게 다르던가?』
   소녀의 아버지가 물었다.
  『예를 들면 우리 고장에서는 장작 같은 것은 숲에 가서 마음대로 해오면 되는 것이지만 탈라와켈레에서는 모두 돈 주고 사서 때더군. 이런 것은 불편하지만 도회지가 되니까 번화하고 아주 재미나는 일도 많아.』
   이때에 소녀의 아버지의 마음속에는 무엇인가「아, 그렇군」하고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