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도절 특집] 부처님 성도(成道), 중생의 성도

성도절 특집 : 오늘 이렇게 성도하시다

2007-12-20     정운문

     [1] 성도는 노력의 결실

     진로미탈사비상(塵勞未脫事非常)
     긴파승두주일장(緊把繩頭做一場)
     불시일번한철골(不是一番寒徹骨)
     쟁득매화박비향(爭得梅花撲鼻香)

   겨울의 눈이 채 녹기도 전에 그 눈 속에서 은은한 향기를 발산하며 피어나는 꽃이 있다. 그 고결함으로 인하여 예부터 많은 사람들로부터 칭송받고 있는 매화는 봄에 꽃을 피우기까지 동지섣달의 한파를 이겨내는 고통을 겪어 내야 한다. 앞에 든 옛 조사의 게송(偈頌)처럼 한겨울의 추위가 뼈에 사무치지 않았다면 어찌 그 향기를 얻었겠는가.
   성도(成道)는 부처님 노력의 결실로서 우주 마법을 깨달은 것을 의미한다. 부처님께서는 도를 깨닫기 위해서 6년이란 긴 세월을 피나는 노력 끝에 12월8일 동녘에서 떠오르는 새벽별[啓明星]을 보고 깨달으셨다.
   부처님의 성도의 길은 부처님께서 우리 중생 세계에 나투어 보여주신 이생에서의 노력뿐만이 아니라 그 몇 겁 전생으로부터 도를 이루기 위한 정진의 발길을 멈추지 않았던 것이다. 부처님 본생경(本生經)에 보이는 여러 설화들이 그것을 말해준다. 육도(六道)를 윤회하시면서도 오직 성불(成佛)에의 노력은 끊임없이 계속하였던 것이다.
   우리가 아무리 진로(塵勞: 번뇌 망상이 들끓는 중생세계) 속을 헤매며 살더라도 한 가지 성불에의 마음만 꽉 붙잡고 노력한다면 우리도 기어코 성불하게 되는 것이다.

     [2] 부처님 성도의 의의

   그러면 부처님이 6년 고행 끝에 성도하셔서 두루 세상에 보이신 법은 무엇일까? 그것은 미약하고 온갖 번뇌 망상 속을 헤매며 육도 속을 윤회하는 우리 중생들도 성불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신 것이다.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 여래수량품(如來壽量品)에서 말씀하듯이 부처님은 이미 몇 억 겁 전에 성불하셨었던 것이다. 생사 고뇌가 없는 해탈의 안온을 이미 찾으셨던 것이다. 그런데 인도 가비라국에 고귀한 왕자님으로 몸을 나투시고 온갖 향락을 누리심을 보여주시고, 모든 중생이 추구하는 명예며, 부귀며, 부(富)등이 모두 고(苦)임을 몸소 보이시며 그것들을 버리고 출가하신다. 그리고 고행도 하시고, 외도들의 극에 치우친 가르침대로 수행해 보이셔서 그것이 아무 소용없음 또한 보여주신다. 그리하여 이쪽 끝도 저쪽 끝도 아닌 중도의 길을 택함으로써 성불이 가능함을 말씀해 주시며 그렇게 성불하신다.
   부처님의 성도, 그것은 우리 일체 중생의 성불인 것이다. 부처님께서 성도의 길을 보여 주심으로써 우리 일체 중생도 성불할 수 있다는 확신을 심어주신 것이다.
   일체 중생 모두가 불성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다만 그것을 내어 쓰지 못하기 때문에 중생이고, 불성 발현을 최대한으로 할 수 있기에 부처인 것이다. 하지 않아서 못하지 할 능력은 이미 갖추어져 있는 것이다.

     [3] 성도절을 맞는 우리의 다짐

   우리가 부처님 성도절을 맞아 그 의의를 새김에 있어 다른 말은 필요 없다. 부처님께서 보여주신 그 길을 따라 성도에의 노력을 하는 것이다. 겨울 한파 속의 고통을 꿋꿋이 이겨내어 이른 봄 짙은 향내를 내는 매화처럼 우리도 성도에의 정진을 해야 할 것이다. 때로 어려움도 앞서고 회의도 일 것이다. 그러나 진실로 누구나 성불할 수 있음을 몸소 보여주신 부처님의 자비의 손길이 이끄는 대로 힘찬 정진을 해야 할 것이다.
   어떤 사람은 그 어려운 길을 내가 어떻게 걸을 수 있겠느냐고 미리 포기하고 만다. 그러나 성도의 길은 그렇게 어려운 것이 아니다. 일상의 생활, 일상의 도에 성도의 길이 있는 것이다.
   성도란 인격 완성이다. 일상 속에서 인격 완성을 도모하며 노력하면 되는 것이다.
   불도는 눈과 입으로만 배워서는 안된다. 아무리 이론에 밝더라도 실천이 없다면 아무 소용없다. 한 가지 배우면 그걸 실천하기 위해 열 배 힘든 용맹정진을 하여야 한다.
   어떤 사람은 세상사 밥 먹고 살기에 급급하다보니 참선이고 뭐고 할 새가 없다고 한탄한다. 내가 여기에 적절한 실화를 들어 이야기 하겠다.
   내가 아는 한 여신도는 학교 시절부터 법회에 열심히 참석하고 참선도 열심히 하는 신심이 굳은 사람이다. 그런데 혼기가 되어 결혼하고 보니 그 집 식구들은 모두 불교 신자가 아니었다. 그래도 그는 결혼하기 전부터 해오던 참선시간만큼은 꼭 참선을 하였다. 평소에는 무슨 일이든 고분고분 해내고 나서서 일을 척척 해내었지만 참선시간에는 누가 뭐라 해도 꿈쩍 않고 참선만 하였다. 그러자 시댁에서는 말도 많고 탓도 많이 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름에 따라 시댁식구들은 차차 평소 성실한 며느리에 관심을 갖고 참선에 관심을 갖고, 드디어는 다 같이 불교신도가 되어 함께 참선하기에 이르렀다.
   또 어떤 사람은 이런 말을 한다. 참선을 해 보았지만 도무지 얻어지는 게 없어 재미가 없다, 나는 해보았자 근기가 낮아서 안되는가 보다고 한다.
   나도 한때 이런 생각을 가진 적이 있었다. 도무지 공부에 진척이 없고 재미가 없어 우리 스님[인곡 스님]께 여쭈었더니 스님께서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해 주셨다.
   한때 한암 스님 회상에 젊은 스님 하나가 스님께 여쭈었다.
  『참선을 하여도 통 소식이 없고 힘만 들고 세월만 지나가니 차라리 환속하여 신도가 되어서 불법호지에 힘 보태는 것이 낫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이에 한암 스님은 게송으로 답해주셨다.
  『이유자미 위자미즉 (以有滋味 爲滋味則) 기자미 유진(基滋味 有盡)
     이무자미 위자미즉(以無滋味 爲滋味則) 기자미 무진(基滋味 無盡)』
   재미있는 것으로써 재미를 삼으면 그 재미가 다할 때가 있지만 재미없는 것으로 재미를 삼으면 그 재미가 끝이 없다는 것이다.
   나는 그때 이 말씀에 백배 용기를 얻고 다시 용맹정진할 수 있었다. 이 말씀대로이다. 이를 명심하고 참선에 몰두하다 보면 언젠가 밝은 광명이 비치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불법(佛法)은 어두운 이 세상을 밝혀 주는 빛이다. 내가 노력하여 이 빛을 찾았다면 그 빛을 다시 어둠 속에서 헤매는 중생 앞에 높이 들고 비추어 길을 가리켜 주어야 한다. 나만의 성도가 아닌 모든 중생과 함께 가는 길, 이것이 보살행인 것이다.
   이제 부처님 성도절을 맞이하여 우리에게 나투시고 성도의 길을 보여 주신 그 깊으신 자비에 감사드리며 성도의 길에 매진할 것을 다짐하여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