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도절 특집] 부처님은 어떻게 깨치셨는가

성도절 특집 : 오늘 이렇게 성도하시다.

2007-12-20     이희익

     [1] 성도에의 길

   부처님은 인도「가비라」성의 태자로 태어났다. 그래서 부귀와 영화를 한 몸에 지니고 있었다. 그런데 그가 모두 성격에 맞지 않았다. 부처님은 선천적으로 보통 사람과 다르게 태어났던 것 같다. 사람의 성격은 천차만별이어서 주색을 즐기는 사람, 돈을 탐내는 사람, 명예나 권세를 추구하는 사람 등 가지각색이다. 부처님은 위와 같은 욕망은 전혀 없었고 다만 「생(生) ·  노(老) · 병(病) · 사(死)」에 대하여 깊은 의문을 품고 늘 사색에 잠겨 있었다.
   이 우주간의 어떤 물체를 막론하고「고정불변」이란 찾아 볼 길이 없다. 태양도 시시각각으로 변화하고 있으니 우리 인간의 변화는 눈에 띌 정도로 훤히 보인다. 즉, 태어나 외기에 접촉되어 앙 하고 울음을 터뜨릴 때부터「(고)苦」가 시작된다. 다음 늙어 병들어 죽는다. 이 사이를 보통 70으로 보고 있었다. 그래서「생자필멸(生者必滅)」이라고 못박았다. 옛날 중국의 진시황은 6국을 통일하고, 만리장성을 쌓고 아방궁에 삼천 궁녀를 거느리고 있었으나 52세에 객사했다. 그때 진시황의 권세쯤 하면 백 세 이백 세 살고도 남았을 것이 아닌가. 그러나 죽음이란 늘 도사리고 있다. 어떠한 힘으로도 이를 면할 수는 없다. 이 이치를 부처님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영화를 헌 신짝처럼 버리고 수행 길에 나섰다.
   그 당시에 수정주의(修定主義)자들은 주로「고행(苦行)」에 주력하여 생 · 노 · 병 · 사를 탈피하려 했으므로 부처님도 처음에는 고행에 주력했다. 단식도 해보고 가시밭을 걷기도 하고 한쪽 다리를 들고 온종일 서 보기도 하였으나 이러한 방법으로는 도저히 성취할 수 없다고 단념하고 보리 나무 아래에 풀로 금강좌를 만들고 가부좌 틀고 앉으면서 성도하지 않으면 이 자리에서 뜨지 않겠다고 맹세하였다.
   깨침에는 맹세가 중요하다. 즉 대결심이 필요하다. 모든 일이 다 그러하지만 특히 깨침에는 분발심 없이는 성취 못한다.
   그래서 부처님은 일시도 게으름이 없이 정진하셨다. 여기서 문제되는 것은 우두커니 앉기만 하면 되는 일이 아니다. 기해단전(배꼽 세치 아래)에 숨을 담뿍 들이 마셨다가 이 힘을 끄지 말고 가늘게 길게 내뽑아야 한다. 후에 이 호흡 방법을「수식관(數息觀)」이라고 일컬었다. 그러니까 부처님은 수식관으로 6년간 일관하셨다. 그 결과 12월 8일 새벽에 목성을 보시고 깨치셨다.

     [2] 깨달으신 이치

   그러면 무엇을 어떻게 깨치셨느냐 하는 것이 일대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즉 진리를 파악했다는 것이다. 우주가 개벽한 이래 진리를 처음 발견하신 분은 오직 부처님 한 분이었다.
   그래서 불교는 깨침의 교라고 한다. 이 깨침의 자리는 말로 이치를 캘 수도 없고 글로 표현 할 수도 없고 그림으로 그릴 수도 없다. 다만 부처님처럼 실천실수에서만 얻을 수 있는 특유한 교다. 따라서 부처님을 세계에서 제일인자라고 하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깨친다는 것은 마음이 하나로 뭉쳐 하나라는 것도 없는 경지에 이른 때를 말한다. 다시 말하면 사상(事象)을 일단 부정하게 된다. 즉 고하장단 부귀빈천을 비롯하여 전 우주를 가히 찾아 볼 것이 없게 된다. 거기서 부처님은 목성을 보셨다. 이를 기연(機緣)에 다다랐다고 한다. 기연이란 목성에서만 한하는 것이 아니고 정신을 집중하면 어떠한 작략(作略)에도 다다르게 된다. 즉, 중국의 동산 스님은 개울을 건널 때 자기 그림자가 물에 비친 것을 보고 깨쳤다. 또 운문 스님은 점심 공양하라는 북소리를 듣고 깨쳤다. 또 의현 스님은 곁방 사람들의 말소리를 듣고 깨쳤다. 향엄 스님은 쓰레기를 대밭에 버릴 때 자갈이 대에 부딪치는 소리를 듣고 깨쳤다. 그러니까 어떤 작략에도 깨칠 수 있다는 이야기다. 기해단전에 힘을 담뿍 주어 머리에 티끌 하나 없는 때라면 주부가 반찬을 만들 때에도 깨칠 수가 있고, 가정주부가 걸레질 할 때에도 깨칠 수가 있다는 것을 의심하지 않는다. 다만 머릿속에 털끝만큼이라도 잡념이 있으면 기연은 오지 않는다. 이 기연을 붙잡기 위하여 단전에 힘을 기른다. 단전의 힘이 아닌 어떠한 격식이나 지식으로는 불가능하다.
   여기서 하나 또 주의할 것은 위에서 사상을 부정한다고 했다. 그런데 부정에만 그쳐서는 아니 된다.「일단」이라는데 주목하지 않으면 아니 된다. 그러니까 일단 부정했지만 마침내 긍정으로 돌아와야 한다. 이 관계를 차별이면서 평등이라고 한다.
   우주간의 어떠한 것을 막론하고 형(形)에 있어서나 질(質)에 있어서 똑같은 것이라고는 하나도 없다. 더욱 고정 불변이라고 단정할 만한 것이 없다. 다시 말하면 모든 사상(事象)은 쉴 새 없이 변화하고 있다. 만약 변화하지 않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차별계도 아니고 현상계도 아니다. 현상에는 변화와 차별이 예상되고 있다. 그래서 현상이 생긴 도리가 차별이다. 이를 「색(色)」혹은「유(有)」라고 한다.
   그러면 현상은 어떤 기구(機構)에 의하여 생겼을까? 부처님은 그의 요소를 인연으로 보았다. 즉 인(因)에 연(緣)이라는 이차적 매조(媒助)가 깃들어서 특유의 결과가 생긴다고 했다.
   가령 우리가 지금 불행한 처지에서 허덕이고 있는 것은 전세의 인연으로 된 것이라고 했다. 그러므로 전세(前世)의 연이라 하든지 새로운 연의 힘이 없는 한, 불행한 처지는 언제든지 떠나지 않고 우리들 주위를 늘 감돌고 있다. 그래서 연의 추가가 있어서 끊임없이 변이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렇게 인연에 과(果)가 생하는 것과 같이 세상사는 모두 변이적 방면으로 본 도리가 차별이므로 차별은 인연소생법(因緣所生法)이고, 인과율(律)이며 인과의 이법(理法)이라고 부처님은 갈파하셨다.
   위에서 본 바와 같이 인연소생법의 차별은 모두 상대이다. 이때 과가 인에 따르므로 변화한다. 물론 쉴 새 없이 변화하므로 실재(實在)하지 않는다. 그래서 모두가 공(空)한 상태였다는 것이다.
   삼라만상이 모두 개별을 유지하고 있지만 그 본성인즉 필경 공이라고 본 것이 부처님의 탁월한 견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평등이란, 모든 것은 구체적 자세로 불생불멸이고 부증불감이란 말이다. 즉 일여(一如)의 사상을 말한다. 비근한 예를 들면 백천이 바다에 흘러 들어가 나는 한강 물이고 너는 낙동강 물이라고 서로 다투는 일이 없이 해화평행(偕和平行) 하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평등이라고 함은 일면으로 볼 때 범부도 없고 부처도 없고 사바도 없으려니와 극락도 없다.
더욱 번뇌도 없고 보리도 없다. 이러한 일여적 견해를 평등, 혹은 공, 또는 무(無)라고 일컬었다.
   사람들은 부처님의 깨침이란 어떤 기적이나 있는 듯이 알고 있지만 사실은 그런 것이 아니고 위에서 본바와 같이 본성에 사무쳐서 차별이면서 평등이고, 평등이면서 차별의 도리를 파악 했던 것이다. 그래서 부처님은 근원 진리를 밝혀내고 모든 속박과 한계에서 초월하여 대지혜 대자비, 일체 자재를 성취하셨던 것이다. 참으로 위대하시다 하지 않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