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의 샘] 진실에 대한 환상

2007-12-19     관리자

시인이 자신의 고유한 영토인 시만을 생각할 수 있는 시대가 있을 것이라고 믿는 것은 착각인 것 같다. 시대의 특수성에 대한 구애 없이 진실을 노래해야 하는 것이 시인의 기본적인 책임이라고 볼 때 시인은 그 진실 (     ) 워진 허위의 휘장을 벗기기 위해 싸우지 않으면 안된다. 허위의 휘장은 넓게는 역사적인 것일 수 도 있고 좁게는 정치적 경제적 문화적인 것일 수도 있다.

흔히 문화에서 강조되는 문학적인 개성 (          ) 허위에 대한 폭로를 찾는 중요한 무기가 될 수도 있다. 개성에 대한 존중은 어느 면으로 인간성 혹은 인간적인 것의 존중일 수 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 사람의 개성이 역사적인 허위와 정치적 경제적 문화적인 허위에 도전하기에는 너무 비논리적이고 일의적(日意的)이다. 그것은 잘 정돈된 사회과학적인 반항으로 인해 함몰되기 쉬운 약점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시인은 개성적인 자기 무기 이상의 것을 가지지 않으면 자기가 찾고 있거나 아니면 이미 찾았을지도 모를 진실을 허위의 공격으로부터 지킬 수 없을 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우리는 가장 풍부한 인간적인 개성위에 자기 현실에 대한 역사적인 인식과 (       ) 문화적인 허위에 대한 인식에 외면해서는 안된다. 왜냐하면 시인이 진실을 지키기 위한 개성으로서의 싸움이 한 개인의 존엄성을 위한 것이라면 역사적인 허위의 도전은 자기가 속한 공동체 전체의 싸움과 연대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시인이 자기 자신은 물론 자기 이웃과 조국과 함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시인의 진실에 대한 싸움은 시인 개인의 싸움이 아니라 전체 인간의 싸움으로 승화될 수 있는 것이다.

  만약 한 사람의 시인이 이런 도정을 회피하고 있다면 그것은 곧 진실에 대한 노래가 아니라 허위에 대한 노래를 부르고 있는 것이다. 이 <시대적인 허위> 앞에 스스로 굴복하기를 원하는 시인은 이미 <시대적인 진실>을 포기한 셈이다. 여기서 <시대적>이란 언어가 하나의 시간적 또는 역사적 특수성에 국한될 수는 있다. 그러나 어떤 특수성을 인해 인간의 보편적인 진실이 말살되는 것은 아니다. 흔히 시인은 이와 같은 시간적 역사적 특수성에서 자신의 시야를 초월해 있어야 한다고 역설한다.

말하자면 시인을 초역사적 존재로 인식하는 태도이다. 이 초역사적 존재는 상당한 설득력을 가지고 많은 문학이론에 원용되어 왔으며 그런 문학이론에 심취한 문학인에게 비판의 눈을 마비시키는 마취제 역할을 하고 있다. 고등학교는 물론 대학 교과서에서도 이와 같은 초역사적 존재로서의 시인은 신비할 정도로 그럴듯한 이론으로 미화되어 있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그것은 현상 이상으로 분칠되어 있는 허위성의 꼭두각시에 불과하다. 대한민국의 무수한 교실에서 시론시간에 강의되고 있는 그런 환상적인 시인상은 사실상 이 지구상에서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나의 느낌이다. 만약 있다면 정신분석의 임상실험실에 있는 매우 신경이 약하고 참을성이 없고 비논리적인 환자들에 대한 묘사 이상의 것이 아니다. 만약 그런 것이 시인이라면 시인이란 이름은 허위의 대명사일 수 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