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의 불교신앙] 우리의 신앙과 공만심{公慢心}

직장인의 불교신앙

2007-12-19     김경만

  [1] 다만 한 사람이라도

  [또 혹은 백천 만억 중생이 금, 은 ,유리, 자거, 마노 ,산호, 호박, 진주 등 보배를 구하고자 큰 바다에 들어 갔을 때 폭풍이 불어 그들이 탄 배가 나찰들의 나라로 표착했더라도 그 중에 단 한 사람이라도 관세음보살의 명호를 일컬으는 자가 있으면 이 사람들은 모두 나찰의 난으로부터 벗어나게 되나니 이런 인연으로 그의 이름을 관세음이라 하느니라.]

  관음경에 부처님께서 주신 가르침이다. 무진의 보살이 석가모니 부처님께 여쭙기를

  [관세음보살은 어떠한 인연으로 이름을 관세음이라 하나이까?]

라고 했을 때 부처님께서 이렇게 대답하신 것이다. 관세음보살을 염하면 모든 고뇌에서 해탈케 하고, 불 속에 들어가도 불에 태워지지 않으며 , 큰 물에 떠내려가게 되어도 얕은 곳을 얻는다고 말씀하신 뒤에 이 법문을 주신 것이다.

  [2] 신앙이 개인 차원에 머물러서 좋은가 ?

  신앙을 개인 차원에 머무르게 하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 물론 훌륭한 일임에는 틀림이 없다. 가령 물에 빠지거나, 불에 타게 되는 경우, 또는 무거운 병에 시달리는 경우 등의 그 위험과 괴로움으로부터 벗어나며, 더 나아가서는 생사, 윤회{生死,輪廻}의 근본 괴로움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마음에서 믿음을 갖는 것은 결코 나무랄 수 없는 일인 것은 결코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개인이 완전한 의미의 고립된 존재로 있을수 있을까, 어느 누가 나라외 겨레와 사회를 떠나서 그 삶을 유지할 수 있으며 그 삶을 이어갈 수 있다할 것인가.

  [3] 네 가지의 은혜{四重恩}

  부처님께서는 모든 사람은 네 가지의 은혜 속에 살고 있다고 말씀하셨다. 부모님의 은혜로 세상에 태어났으며, 나라의 은혜로 그 생활 터전을 마련하고, 삼보님의 은혜 내지는 스승의 은혜로 인생의 뜻을 알고, 해야 될 일과 해서는 안될 일, 전문지식과 기술 등을 습득하고, 모든 동포들의 은혜로 일상생활에 필요한 모든 조건들을 공급받는 것이다. 어느 누구도 이러한 은혜 밖에 사는 사람은 없다.

  우리 모두는 이렇게 크고 무거운 은혜 속에 살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이 은혜는 모두 저버리고 자기 개인의 행복만을 추구하는 차원에서 신앙을 가져도 좋다고 말하고 있다. 신앙의 세계에는 은혜 갚는 일과 같은 것은 아무 의미도 없다고 해도 옳은 것인지 의심스럽다.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대승본생심지관경{大乘本生心地觀經}에 다음과 같은 법문이 있다.

  [세간의 범부들은 지혜의 눈이 없이 은혜를 모르므로 묘한 과보 잃는구나. 오탁으로 악한 세상 여러 가지 중생들이 깊은 은덕 못 깨닫고 크신 은덕 배반하니 내 이제 사중은을 널리 열어 보이고서 바른 지견 듣게 하여 보리도를 닦게 하리.]

  다시 말하면 네가지의 큰 은혜를 갚는 일 외에 별도로 보리도를 닦는 길이 없다는 말씀이다. 우리의 신앙은 은혜 갚는 일을 떠나서는 생각할 수 없는 것이다.

  [4] 나라와 겨례와 직장과

  관세음보살을 염하면 중생들이 가지고 있는 고뇌는 무엇이 되었건 모두 해탈케 하신다는 것이 관음경의 법문이다. 그렇다면  그 고뇌는 게인적인 고뇌만을 뜻하는 것일 수 없고, 그보다 차원 높은 더 큰 고뇌까지도 함께 해결되어지는 것이라 보아야 할 것이다. 개인을 둘러싸고 있는 수 없이 많은 은혜로운 사람들, 특히 나라와, 겨례와, 자기가 소속되어 있는 직장까지를 포함해서 그 모든 은인들이 안고 있는 고뇌가 모두 해탈될 수 있다고 본다면 우리는 신앙의 차원을 그런 정도로까지 높여야 마땅할 것이다.

  [5] 안전 운항의 책임자

  법문에 의하면 여러 가지 보배를 구하기 위해 항해에 나선 배가 폭풍을 만나서 침몰하게 되는 위험 속에 있을 때 그 배를 타고 있는 사람 가운데 다만 한 사람만이라도 관세음보살을 염하게 되면 그 배는 침몰하지 않게 된다고  하였다. 다시 말하면 관세음보살의 위신력을 알고 있는 사람, 그리고 관세음보살의 명호를 염하는 사람은 바로 그 배의 안전 운항을 보장하는 책임자가 된다는 것이다. 그 사람이 그 배의 선장일 경우도 있을 수 있다. 모든 선원들을 지휘하고 항로를 결정할 권한을 가지고 있는 사람일 경우가있다.

  또, 그렇지 않고 아무 이름도 없는 직책이 말단의 보이지 않는 곳에서 하찮은 심부름이나 하고 있는 사람일 수도 있다. 그 배가 가지고 있는 조직상의 직책이야 무엇이 되었건, 그 사람이 관세음보살 신앙인이라면, 그 사람이 바로 그 배의 안전 운항의 책임자인 것이다. 그는 그 배의 안전을 책임지는 차원에서 염불을 하여야 한다. 그의 염불은 결코 개인 차원에 머무를 수 없는 것이다.

  [6] 나라와 직장의 안전을 위한 신앙

  배라는 것은 왜 하필 바다에 떠있는 것만 생각할 수 있을까? 우리 국민들은 대한민국이라는 배를 타고 민족의 번영과 국토통일을 향해 험한 항해를 하고 있다. 그 항로는 결코 순탄하지만은 않다. 무엇보다도 공산주의자들의 위협은 아주 심각한 것이다. 그 뿐만이 아니라 국제적 강대 세력들이 꼭 우리에게 유리하게만 행동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이러한 외부적 힘은 경우에 따라서는 우리 조국을 위태롭게 하는 폭퐁일 수 있다. 이 때에 이 대한민국을 안전하게 번영시킬 수 있도록 보장하는 책임은 관세음보살 신앙인 것이다. 국가 조직에서의 직책이 무엇이든 그것은 아무런 상관이 없다.

  그가 관세음보살을 일심으로 염하고 있을 때 대한 민국은 온갖 위험을 극복하고 영광스런 역사를 창조할 수 있는 것이다. 다시 또 직장의 경우를 생각해 보자. 험한 경제사회에서 만남을 헤쳐가며 경영하고 있는 기업들을 비롯한 모든 직장이 안전하게 그 목표한 바를 달성할 수 있게 할 책임을 관음행자가 지고 있다. 꼭 사장이라서가 아니다. 그 직책이 아무 이름 없는 것일지라도 상관 없다. 그가 일심으로 염불하는 한 그 기업은 모든 어려움을 극복하게 되고, 그 기업이 맡은 바 사회적 책무를 다할 수 있게 된다.

  더 큰 눈으로 볼 때에는 인류 차원으로 까지도 올라 갈 수 있다. 지구라고 하는 배를 타고 항해하고 있는 모든 인류들의 안전을 관세음행자인 그가 책임지는 것이다. 더 크게는 온 우주를 책임지기도 한다.

  [7] 대승보살의 공만심으로

  불자는 수행인으로서 교만한 마음을 가져서는 안 된다. 개인의 차원에서는 어느 때나 겸허하여야 한다.  더우기 그것이 대중을 위하는 일, 단체나 조직이나 나라를 위하는 일에 대하여는 결코 뒤로 물러서서는 안 된다.

  [나의 뜨거운 신앙심이 아니면 이 조직을 누가 책임질 것인가? 나의 열렬한 신심이 아니면 이 나라의 안전과 번영을 누가 책임질 것인가? 내가 일심으로 염불하는 한 이 회사는 꼭 성공하고야 말 것이다.]

라는 공적인 사명감으로 불타 있어야 한다. 그것이 사중은을 갚는 길이며, 부처님의 부촉을 수행하는 길이다.

  신앙을 결코 개인 차원에만 머물게 하여서는 안 된다. 시대적, 사회적, 사명을 다하는 대승보살의 차원까지 우리들의 신앙을 높이도록 하자.

  (불광법회 회장, 원각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