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불교가 의미하는 것

불교를 다시 생각해 봅니다.

2007-12-19     관리자

  ◆일곱가지 불멸의 법

  부처님께서 마가다(國)의 영취산에 계실 때입니다. 당시의 국왕 아자타샤투르(아사세왕)는 아버지를 죽이고, 왕위를 빼앗은 난폭한 인물로서, 이웃의 작은 나라 밧지국(國)을 정복할 계획을 꾸몄습니다.

  그러나 밧지국의 사정을 잘 몰라서 바라문인 대신 우샤를 영취산에 파견하여, 부처님께 그 사정을 들어 오도록 명령하였습니다.

  우샤를 맞이한 부처님께서는 제자 아난다(阿難尊者)에게 이렇게 물으셨습니다.

  『아난다야, 너는 밧지국의 백성들이 때때로 모여 정의에 관하여 서로 토론하고 합의하여 나라를 다스린다고 들었느냐?』

  『네, 부처님, 그와 같이 한다는 것을 들었습니다.』

  『아난다야, 너는 또 밧지국의 백성들이 일치 협력하여 모이고, 일치 협력하여 일어서며, 일치 협력하여 일을 추진한다고 들었느냐?』

  『네, 부처님, 그와 같이 한다는 것을 들었습니다.』

  『아난다야, 너는 또 밧지국 사람들이 정해져 있는 국법을 존중하고 이 법에 따라 바르게 행동한다고 들었느냐?』

  『네, 부처님, 그와 같이 한다는 것을 들었습니다.』

  『아난다야, 너는 또 밧지국 사람들이 경험이 풍부한 노인들은 존경하고 그들의 말에 항상 귀를 기울인다고 들었느냐?』

  『네, 부처님, 그와 같이 한다는 것을 들었습니다.』

  『아난다야, 너는 또 밧지국 사람들이 부인과 어린이들에게 대하여 폭력을 쓰지 않고 그들을 손쉽게 생각하는 버릇을 갖지 않았다고 들었느냐?』

  『네, 부처님, 그와 같이 한다는 것을 들었습니다.』

  『아난다야, 너는 또 밧지국 사람들이 종족 고래로부터 내려오는 종교의 사원을 존중하고 유지하며 전통적인 바른 제사와 공양을 끊이지 않게 한다고 들었느냐?』

  『네, 부처님, 그와 같이 한다고 들었습니다.』

  『아난다야, 너는 또 밧지국 사람들이 훌륭한 종교가에 대해서는 경의와 보호를 가하며 외부로부터 훌륭한 종교가를 초빙하여 그들로 하여금 영토 내에 안주토록 한다고 들었느냐?』

  『네, 부처님, 저는 그와 같이 한다고 들었습니다.』

  『아난다야, 만약 밧지국 사람들이 그와 같이 행한다면, 그 나라 백성들은 늙은이나 젊은이나 잘 화합하면 나라는 번영하고 편안할 것이며 그 나라는 결코 다른 나라의 침략을 받아서 멸하는 일이 없으리라.』

  우샤로부터 이 소식을 전해 들은 아쟈타샤투르왕도 크게 깨닫고 침략의 욕심을 버리게 되었습니다.

  ◆ 왜곡된 호국 불교의 이념

  천육백년 한국 불교가 언제부터인가 자칭 타칭으로 내세우는 표방이 있습니다. 그것은 곧 한국 불교는 호국 불교라는 것입니다. 호국 불교는 이제 어쩔 수 없는 이 나라 불교의 얼굴이 되고 깃발이 되고 말았습니다.

  호국(護國) 불교, 참 거룩하고 좋은 명명(命名)이지요. 그러나 호국 불교가 정작 무엇을 어떻게 하자는 것인가 하는 문제에 부닥치면 대답은 그리 단순해지지가 않습니다. 우리들은 호국 불교를 말할 때, 언필칭 고려의 팔만 대장경이라거나, 임진란의 서산(西山), 사명당(泗溟堂), 처영(處英), 영규(靈圭)대사 등의 의병을 내세우곤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호국불교하면 스님들이 총칼을 들고 궐기한다거나 나아가서는 군왕이나 그편의 주장을 무조건 지지, 추종하고 나서는 식의 감격적 애국(愛國)주의를 영상하게끔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여기서 호국의 진정한 이념을 맹렬히 반성하고 점검해 볼 필요를 느낍니다. 우리에게 있어 호국의 전통이 중요한 만큼 호국 불교의 이념 정립은 오늘 이 나라 불교의 명운(命運)을 좌우할 결정적 요인의 하나가 되겠기 때문입니다.

  대자대비(大慈大悲)를 제일의(第一義)로 삼는 불교인들이 국가와 백성의 고통과 불행을 함께 아파하고, 이를 제도하려는 행원(行願)을 세우고 수고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본분이고, 도리입니다.

  『일체 중생이 앓고 있기에 나도 앓고 있다. 만약 일체 중생이 병이 낫는다면, 내 병도 없어지리라. 왜냐하면, 보살은 중생을 건지기 위하여 생사속에 뛰어드는 것인 바, 생사가 있으면 병이 있게 마련이요, 중생이 병에서 떠날 때 보살도 병에서 떠날 것이기 때문이다.』(유마경-문질품-5)

  바로 이와 같은 유마힐의 심정이 곧 나와 당신의 심정, 그것이기 때문에, 우리 불자들이 국가와 민족운명의 제일차적 담당자로써 자각하고 행동하려는 것은 우리들에게 주어진 거룩한 부처님의 부촉(당부)이기도 한 것입니다.

  호국이 이토록 귀중한 소임이기 때문에 국가가 전란 중에 있을 때 스님들이 총 칼을 들고 살륙을 감행하여도 역사는 그것을 범계(犯戒)로서 단죄하지 않고 거룩한 호국행(護國行)으로 찬양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바로 여기 문제가 있습니다. 스님들의 전투적 행위 내지 정치적 추종이 국가 비상시 대승적 견지에서 용인된다고 할지라도 그것은 필경 불자 본연의 도리가 될 수 없는 것이고, 불교호국의 진면목으로 긍정될 수도 없는 것입니다. 서산, 사명께서 칼을 잡고 일어선 것은 불자 본연의 호국행이라기 보다는 나라 백성된 자로서의 애국행을 다한 것이라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나라가 도적의 침입을 받아 위태로울 때, 목숨을 걸고 싸우는 것은 무지한 필부필녀라도 마땅히 하는 일이 아닙니까? 이것을 일러서 호국 불교의 상징인양 내세우는 것은 불법의 참 뜻을 저버린 것이 아닌가 저으기 염려됩니다. 우리는 이런 면에서 확실히 본말을 전도한 오류를 범하고 있는 것입니다.

  ◆ 호국은 호민(護民)이라야.

  불교 호국의 참 모습은 어디 있는가? 불자는 무엇을 어떻게 함으로써 참으로 나라를 지킬 수 있는가?

  침략자 아자타샤투르의 사자 우샤를 앞에 놓고 아난다를 향하여 설하신 일곱 가지 불멸의 법은 부처님께서 행으로써 보여 주신 진정 영원한 호국의 법인 것입니다. 이제 저 일곱가지 호국의 법을 요약해 보렵니다.

  1. 언론의 자유와 정의에 대한 민족적 합의 과정

  2. 일치 협력하는 동참 동행의 길

  3. 국법의 존중

  4. 경노(敬老)와 효(孝)의 정신

  5. 여성과 어린이들에 대한 사랑과 보호

  6. 전통 문화의 존중

  7. 종교와 양심의 자유와 진리에 대한 존중

  부처님께서는 이 일곱가지 불멸의 법을 설하시고 이렇게 선포하셨습니다.

  『이 일곱가지 법 가운데 하나의 법만이라도 제대로 행하여 진다면 그 나라 백성들은 늙은이나 젊은이나 잘 화합하여 나라는 번영하고, 편안할 것이며, 그 나라는 결코 다른 나라의 침략을 받아서 멸하는 일이 없을 터인데 일곱가지 법이 다 행하여지는 나라라면 가히 무엇을 두려워 할 것인가.』

  이 말씀을 들으면서 우리는 참으로 부처님의 무한한 지혜와 불법의 영원한 진실 앞에 다시 한 번 놀라움을 금할 수가 없습니다.

  이 불멸의 법은 오늘 여기 우리들에게 주신 너무도 절실한 교훈이 아닙니까.

  부처님 호국의 법은 철두철미 민중에 대한 사랑과 정의에 대한 용기의 정신으로 일관하고 있습니다. 「민중으로써 나라를 삼느니라.(以民爲國)」 <대살차니건자 소설경-제3>하신 추상같은 말씀을 생각할 때 호국은 곧 호민(護民)이요, 호민은 곧 호법(護法), 정의의 수호라는 불법의 큰 뜻을 우리는 넉넉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정의를 위하여 헌신할 때 민중은 살아나고 민중이 살아날 때라야 진정 나라가 살아난다는 이 삼엄한 진실을 누가 있어 부정하겠습니까.

  호국 불교의 진면목이 진정 이와 같음을 깨닫을 때 그 동안 우리가 얼마나 스스로를 속이고 역사를 속이고, 부처님을 속여 왔는가를 절감하면서, 이제부터 우리 불자들이 이 땅의 호국을 위하여 시급히 해야 할 일들이 얼마나 많은가를 조용히 생각해 봅니다.

``````````````````````````````````````````````````````````````````````````````````````````````````````````````````````````````````````````````````````````````````````

  ☆ 번영의 비결은 남에게 편의와 행복을 주는 것이다.

  ☆ 성공이란 돈도 명예도 아니다. 생명의 진보다.

<佛光銘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