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여행을 떠나는 준비

살아있는 명법문

2007-12-18     관리자

지홍 스님 _ 월간 「불광」 발행인, 불광사 회주. 1970년 범어사에서 광덕 스님을 은사로 출가하였다. 1971년 사미계와 1974년 비구계를 수지하였으며, 1991년 광명 금강정사를 창건하였다. 1994년 조계종 개혁회의 의원 겸 포교부장, 1999~2004년 조계사 주지, 파라미타 청소년협회 회장, 제111213대 중앙종회의원을 역임하였다. 현재 제14대 중앙종회의원, 환경정의 공동대표, 인드라망생명공동체 공동대표로 활동을 펼치며 불교를 널리 알리는 데 앞장서고 있다.

인생의 여행을 떠날 때,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가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부처님께서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 계실 때, 어느 날 새벽 한 천자가 찾아와 부처님께 예를 올리며 여쭈었습니다.
“누구든 먼 길을 여행하노라면 노자[資]와 양식[糧]이 필요합니다. 어떻게 해야 여행 중에 강탈당하지 않으며, 설사 도적을 만나더라도 지킬 수 있습니까? 또 어떻게 해야 도적에게 탈취당하더라도 뒤에 크게 낙담하지 않으며, 무엇을 가까이 해야 지혜로운 사람의 기쁨이 될 수 있습니까?”
부처님께서는 대답을 게송으로 읊으셨습니다.
믿음은 먼 여행길의 노자와 양식이며(信爲遠資糧)
자신이 쌓은 복덕은 도적도 탈취하지 못하네(福聚非賊劫).
도적이 탈취해도 계율로 살생을 막으면(賊劫戒遮殺)
사문은 재물을 빼앗겨도 상심하지 않네(沙門劫生喜).
그러므로 늘 사문을 가까이 모시면(數親近沙門)
슬기로운 이에게 기쁨이 일어나네(智者生欣悅).
-『잡아함경』 48권

여기서 여행이란 한 인생을 살아가는 삶의 과정을 말합니다. 경전에서는 인생을 여러 가지로 표현합니다. 화엄경에서는 ‘생사광야(生死曠野)’ 즉 생사를 거듭하는 넓은 들판으로 표현했고, 또 다른 경전에서는 ‘고해(苦海)’ 즉 고통스런 바다라고 했습니다. 인생의 넓은 들판 또는 고해를 건너가는 여행자며, 그 여행길에는 필요한 준비물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노자와 양식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인생의 여행자에게 노자와 양식은 믿음이라고 하였습니다. 믿음이 확실하면 미래가 보이고, 길이 열리며, 지혜가 밝아집니다.

인생의 여행을 어디로 떠날 것인가
그렇다면 무엇을 믿어야 하는가가 명확하게 규명되어야 합니다. 먼저 삶의 목적지를 명확하게 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가 삶을 통해서 최종적으로 도달하고 이룩하고자 하는 세계가 어떤 세계이며, 가고자 하는 곳이 어디인지 분명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즉 믿음이 분명해지면 삶의 방향과 방식이 정해지고, 그 방법에 있어 지혜가 뚜렷하게 떠오르게 됩니다.
우리 인생에서 최종적으로 도달해야 하는 목적지는 해탈의 세계, 보살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보살로서의 삶을 사는 것이고, 보살의 삶을 통해서 부처님의 세계인 성불과 깨달음의 세계로 가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고민해 보아야 할 것은 부처님의 세계인 깨달음의 세계가 어떠한 세계인가 하는 것입니다. 부처님이 되어 성불하면 어떠한 삶을 살 수 있으며, 원하는 것이 이루어질 수 있는지, 현실적으로 우리들이 요구하는 내용이 있는지 궁금해 할 수 있습니다. 만약 그곳이 아름다움과 행복이 넘쳐나고, 영원한 건강과 안정이 있으며, 생로병사가 없는 깨달음의 세상이라면 절대적으로 가야 하는 세상입니다.
부처님과 여러 보살님들, 역대 조사님들이 가신 길을 믿어야 합니다. 반야바라밀의 세계가 우리가 가야 될 가장 절대적인 세계라는 것을 믿어야합니다. 선지식들께서는 우리들에게 이미 반야바라밀의 수행과 기도를 계속적으로 지도해 오셨습니다. 깨달음의 세계, 바라밀의 세계, 보살의 세계가 우리들이 추구하는 아름다움과 행복, 고통이 없는 해탈의 세계이며 대자유의 세계라고 하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이것을 믿고 갈 때만이 우리의 현실적인 고통을 벗어날 수 있습니다. 확실한 믿음은 무명을 밝히는 지혜를 낳습니다. 지장보살의 대서원, 관세음보살의 자비행, 문수보살의 지혜, 보현보살의 실천행, 바로 이것이 바라밀행입니다.
이 중에서 중생을 다 건지고 번뇌를 끊으며 마음 속에 있는 업장을 소멸하는 대서원이 사홍서원입니다. 자비심을 바탕으로 이 세계 모든 중생을 무량의 세계에서 전부 벗어나도록 다 건지겠다는 보살사상이 사홍서원입니다. 불도를 다 이루고, 법문을 다 배우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배우겠다는 것이 사홍서원입니다.

대자유를 얻는 길
이 사홍서원 사상만으로도 국가나 사회, 복지나 환경, 통일이나 화합 등 모든 일들을 해결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이 세계의 모든 개인에게 평화와 안정을 줄 수 있고, 영원한 행복과 안정, 대자유를 얻을 수 있게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크게 세 가지가 필요합니다.
첫째, 깨달음의 세계, 보살의 세계, 반야바라밀의 세계, 바라밀 행자의 세계가 곧 우리가 도달해야 하는 곳이라고 믿는, 그 믿음이 필요합니다. 그 믿음은 우리가 가고자 하는 목적지를 명확하게 하는 것도 되지만, ‘나는 갈 수 있다’는 자신감도 그 믿음 속에서 나옵니다. ‘내가 갈 수 있을까’를 의심하거나 갈등하지 않는 믿음이 제일 중요합니다. 사막을 여행하는데, 갈 수 없다고 생각하면 절대 갈 수 없습니다. 그 여행은 가다가도 죽습니다. 난 갈 수 있다고 믿고, 끝까지 자기를 믿고 가면 반드시 갈 수 있습니다. 믿음에는 절대적인 큰 힘이 있습니다. 다만 믿음도 명확한 정법에 근거한 것이라야지 맹목적인 믿음 갖고는 안 됩니다.
둘째, 믿음을 가지고 복과 덕을 쌓아야 합니다. 복덕을 쌓지 않으면 아무리 사상적으로 확실하다 해도 힘이 나오지 않습니다. 주변 사람들에게 동의와 협력을 받아야 합니다. 복덕이 있어야 주변의 모든 조건들이 잘 갖추어집니다. 논리적이고 이론적으로는 완벽하지만 박복해서 안 되는 일이 허다합니다.
아직 저는 박복한 사람이라고 생각해보지 않았습니다. 제가 부족한 것을 다른 사람들이 채워주고 보완해주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어려운 과정이 있더라도 어떤 일을 성취하고 이뤄나갈 수 있었습니다. 이 복덕은 도둑도 탈취해 가지 못합니다. 일제시대 당시 일본이 우리의 몸을 구속하고 압박했지만 우리 민족의 정신은 절대 빼앗을 수 없었던 것처럼, 우리가 쌓은 복덕과 지혜는 누구도 빼앗아 갈 수 없습니다. 빼앗아 가봐야 자기 복과 덕이 아니기 때문에 쓸 수 없습니다. 무용지물입니다. 오직 자기의 힘과 덕, 지혜는 자신밖에 쓸 수 없습니다. 따라서 빼앗으려야 빼앗을 수 없고, 뺏기려야 뺏길 수 없는 덕을 쌓아야 합니다.
셋째, 무엇보다도 우리는 스승이 필요합니다. 훌륭한 스승을 가까이 하고 모셔야 합니다. 훌륭한 스승을 모시고, 어려운 일이 있을 때나 인생의 고비고비에서 의논을 하고 지도를 받으면 얼마나 좋은 일입니까? 좀더 넓혀보면 법을 모셔야 하고, 부처님을 모셔야 합니다. 자기 가정이나 자기 삶에 부처님을 모셔야 합니다. 이것은 자기 마음속에 부처님을 모시고, 가르침을 생각하고, 늘 삶 속에서 실천하려는 것을 말합니다. 이렇게 될 때 슬기로운 이에게는 기쁨이 일어나게 됩니다. 자기의 삶에 불법이 있어야 하며 부처님을 모셔야 합니다.

이제 인생의 여행을 떠나보자
수행과 기도를 하고 복과 덕을 쌓으며 지혜를 닦는다면, 생사고해나 생사광야를 믿음의 힘과 스승의 지도에 의해서 건너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것들 없이 자기 욕심으로 건너가려면 안 됩니다. 자기 지혜라는 것은 일천하기 그지없기 때문입니다. 이 어두운 광야에서 어느 쪽으로 가야 하는지 어떻게 알 수 있겠습니까?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르지 않으면 우리가 가야 될 그 방향이나 목적지를 갈 수 없습니다. 다행히 우리는 지금 부처님과 인연이 되어 반야바라밀 수행법을 만났고, 이 방향과 길을 통해서 우리의 목적지인 아름답고 행복하고 평화로운 해탈과 대자유, 깨달음의 세계로 갈 수 있습니다. 즉 보살이 될 수 있고, 부처님이 될 수 있는 세계를 향해 계속 가고 있습니다.
이 생에 못 가면 내생에 갈 수 있고 내생에 못 가면 그 다음 생에 갈 수 있으니, 가는 것이 중요하지 도착했느냐 여부는 그 다음 문제입니다.
이제 인생 여행을 떠날 준비가 되셨습니까. 부처님을 믿고 여행 배낭을 잘 꾸려서 떠나가 보세요. 가 보시면 세계가 보이고, 인생이 보이고,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이 보이게 됩니다. 그 후에는 그렇게 살면 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