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현대의 호국불교이론

특집/불교의 구세호국사상

2007-12-17     이항녕

           (1) 우리나라 불교의 구원의 대상   

  호국불교의 이론을 전개하기 전에 불교자체가 가지고 있는 구원의 대상을 얘기해야 될 것이다. 불교의 목적은 두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상구보리(上求菩提)요 다른 하나는 하화중생(下化衆生)인데 상구보리란 자기 자신이 완성되어 스스로 부처되는 경지를 말하고 하화중생이란 일종의 이상사회를 실현시키는 것으로 현재 살고 있는 사회를 불국토로 만드는 것을 일컫는다. 그런데 자아가 완성되려면은 우선 사회가 건전해야 되는 것이지 사회가 불건전해서는 자아완성이 어려운 것이고 또 이상사회가 실현되려면은 모두가 자아완성된 사람들이 모여야만 이상사회가 되는 것이지 아무리 이상사회를 건설하려 해도 자아가 완성되는 사람이 없으면 이상사회가 안되기 때문에 자아 완성과 이상사회 실현이란 것은 두가지가 서로 보완되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불교에는 대승불교와 소승불교로 나뉘어져 소승불교는 자기만의 성불에 주력하며 대승불교는 자기 혼자만의 성불에 매진하는 것만이 아니라 모든 대중이 함께 성불하는데 주력하는 것이다. 그런 고로 우리나라 불교는 철저한 대승사상이다. 자기 자신과 중생 모두의 성불에 그 목적을 두고 있다.

   본디 타종교의 침투는 백성이 역경에 처했을 때 그 역경을 이기기 위해 백성들로부터 받아 들여지는 것이 상례이나 우리나라 불교는 나라를 발전시키고 보호하는 즉 호국적인 종교로 왕실과 위정자 등 권력층이 솔선해서 먼저 받아 들여졌다. 이것은 우리나라 불교의 호국적 의미를 역사적으로 증명한 것으로서 이를테면 소승불교의 자아 완성보다 대승적인 이상사회건설을 앞세워서 받아들여 특히 삼국시대 신라의 경우에는 불교가 어느 정도 국가사회에 이익이 되느냐 하는 것이 논란의 촛점이 되기도 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것도 불교의 호국적 성격이 지대한 영향을 미쳤고 그 후에도 많은 절이 세워졌는데 이것도 결국 모든 국민으로 하여금 국가나 이상사회건설에 자극제가 되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나라 불교의 구원의 대상은 모든 중생이었고 이는 곧 이상사회라는 불국토(佛國土) 건설에 있었다.      

          (2) 불교에서 본 국가의 의미

  오늘날에 있어서 종교의 고유한 성격과 호국불교의 관계는 어떠한가? 흔히 생각하기를 종교의 성격은 현세적인 사회나 국가와 별도로 해서 개인의 영적 추구와 사후(死後)의 이상극락(理想極樂)을 염하여 현실적이거나 국가와 직접 연결을 맺지 않는 것으로 생각한다. 국가라는 것은 정신적인 면을 경시하고 물질, 권력 등의 세속적인 것만이 존재하기 때문에 종교의 영적인 안목으로 볼 때 그것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견해인 것이다. 그래서 종교는 현실 자체보다는 현실을 초월해서 비현실적인 것을 갈구하는 쪽으로 지향하고 있다. 그러나 불교는 그렇지 않다. 불교는 비현실적인 것이 아닌 현실자체 속에서 영적, 정신적인 요소를 불어 넣어 현실로 하여금 이상사회를 실현케 한다. 예를 들어 기독교에서는 천당을 현실세계를 떠난 곳에서 구하는데 반해 불교에서는 현실 속에서 극락도 구하고 지옥도 구한다. 그러므로 불교에서는 극락과 지옥이 현실을 떠나 따로 존재하지 않고 현실의 마음가짐에 달려 있다. 따라서 현실을 떠난 피안의 세계가 멀리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현실의 세속적인 것을 정화하는 곳에 불국토가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불교에서는 국가 자체에 막대한 비중을 둔다. 그렇다면 왜 우리나라의 불교는 인류의 불행이나 인류사회의 평등을 위주로 하지 않고 인류사회보다 단계가 낮다고 할 수 있는 국가 사회에 중점을 두는 것인가?

   불교의 근본이상은 인류사회의 평화이다. 그 뿐만이 아니라 생물 전체에 나아가서는 우주전체까지도 평등을 추구하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나라 불교의 궁극적 목적은 특정한 국가나 민족에게 있지 않고 모든 세계평화와 인류사회의 불국토 건설에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인류전체의 불국토 건설에 비약하기 위해서는 국가나 민족이 한 단위가 되어 그 토대를 마련해야 한다. 우선 국가의 기반을 공고히 해서 국가가 이상국가가 되고 개인도 그 국가속에서 정화되어 성불하고 잘 조화되어 이상적인 인간과 이상적인 사회를 이룰 때 불국토가 실현되는 것이다. 만약 국가를 점유하지 않고 인류구제에 도달하려 하면 마치 사닥다리 없이 지붕에 올라가려는 거와 같다. 목적이야 지붕에 오르는 것에 있지만 지붕에 오르려면 우선 사닥다리가 있어야 하고 또 튼튼해야 하는데 그 역할을 국가가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국가는 인류전체의 불국토를 실현하기 위한 사닥다리인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나라의 불교가 호국불교라고 일컬어지는 것은 개인의 구제와 세계인류평화를 무시한 것이 아니라 각 개인의 구제를 위한 기반으로 국가에 중점을 둔 것이고 국가 속에 있는 개인 국가를 통한 전 인류가 구원 받을 수 있도록 한 방편으로서의 호국불교를 지칭하는 것이다. 그러나 개인의 완성과 인류평화가 궁극적 목표이지 호국불교란 일시적 방편이기 때문에 국가를 사닥다리로 삼아 인류 전체가 평화롭고, 자비를 베풀고, 지혜롭게 살게 되는 것이 이상인 것이다. 결국 불교에는 호국적인 의미도 있고 또 일단 국가를 떠난 개인적인 요소도 있지마는 서로 보완되어야 할 것이다. 그렇게 하여 건전한 사회·건전한 국가가 이룩되어야만 개인과 인류가 다 구제될 수 있는 것이다.

          (3) 현대의 호국불교

  그렇다면 오늘날의 호국불교는 중생을 위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광의의 의미로 호국불교란 현실참여이다. 현실참여라 함은 사회에 봉사하고 사회에 이익을 주는 것이다. 그러므로 호국불교는 국가와 민족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해야 한다. 그런데 도움이라하면 정신이나 물질 중 한쪽만의 일변도가 되어서는 아니된다. 현재 세계 사회가 너무 물질 중심으로 흐르고 있다. 한편 우리나라 불교는 너무 정신적인 것만 역설하고 있다. 현실사회에 봉사하는 비중이 충분하지 못하다. 때문에 우리나라 불교는 한시 바삐 정신적 측면 뿐만이 아닌 물질적 봉사에도 진력해야 할 것이다. 특히 교화운동으로서의 교육사업, 사회운동으로서의 언론·의료·방송사업, 그리고 모든 사람에게 기쁨을 줄 수 있는 예술사업 등 사회의 모든 분야에 봉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