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불교용어해설] 반야

불교용어 해설

2007-12-17     관리자

   불교에서 온갖 수행을 통하여 추구하는 마지막 귀결점은 무엇일까? 그것은  일체 존재의 참된 모습, 즉 실상을 알고 체득하는 것이다. 이것을 법성이라고도 한다. 이 법성을 인식하는 것은 지혜인데 범어로 프라쥬녀(파리어로는 판야)인데 이것을  한자로 적어서 반야라고 한다. 반야를 지혜라고 않고 그대로 반야라고 하는 것은 이 지혜는 우리가 일상사에 대상을 보거나 아는 경험적 인식과는 본질적으로 다르므로 지혜라는 말로는 그 뜻이 충분히 표현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불교는 최고의 지혜와 자비를 실현할 것을 목표로 삼는 보살의 실천을 설명하는 것이 수행의 골격이다.

   그런데, 이러한 구도자의 실천의 중심이 되는 것은 여섯 가지의 바라밀이다. 한자로는 바라밀 또는 바라밀다라고 한다. 그 뜻은 완성, 또는 최고라 하는 것인데,  우리 불교에 전통적으로 전해 오기는  [저 언덕에 이른다]의 뜻으로 알려지고 있다.

   저 언덕이란, 깨달음이라고 하는 이상적 세계, 즉 부처님 세계를 뜻한다. 그래서 바라밀다는 이상적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는 실천수행에서 최고의 것을 말하는 것이 된다. 그것은 보시 계율을 가지는 율행. 인내. 노력. 선정. 지혜의 여섯 가지이다.

   대승경전을 대표하는 반야경은 그 이름과 같이 이 반야바라밀을 중심으로 하고 있다. 반야바라밀을 배우고 실천하고 완성하므로써 일체를 아는 지혜를 얻는 것으로 되어 있다.  대승의 도를 닦는 보살이란 바로 반야바라밀의 완성을 지향하는 구도자인 것이다. 그러면 반야바라밀 이외에 5가지 바라밀다와는 어떤 관계에 있는 것일까..... 대개 보시 등 5가지  덕목이 바라밀이 되는 것은 반야바라밀을 근거로 하고 그것을 앞세웠기 때문이다. 반야바라밀은 보시 지계 인욕 등 실천을 떠난 것이 아니고 오히려 그를 실천하므로써 지혜가 깊어 가는 것이다.

  반야는 앞서 말한 바와 같이 경험적 인식관은 다른 것으로 온갖 존재의 진상인 법성을 직관하는 예지이고 따라서 주관과 객관의 대립을 초월한 것이다. 본질적으로 반야는 법성 자체의 광명이며 지성이며 인식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것이다. 법성이 일체를 초월하고 일체에 걸림없고 일체를 넘어선 하나라고 생각할 때에 이러한 법성을 성립시킨 근원적 힘이 반야인 것이다. 반야에 의해서 현상적 일체 존재, 즉 오온이라든가 18계라든가 삼계라든가 중생이라든가 하는 일체 존재의 자성이 공인 것이 드러난다.  범부는 반야를 알지 못하므로 스스로는 사대오온으로 보는 것이며 세계를 차별하고 대립하고 또는 집착하는 결과를 가져 오지만, 반야 광명으로 비추어 볼 때그런 범부적 인식은 모두가 허위이며 범부가 본 세계 또한 허환 몽환임이 드러나는 것이다. 반야를 공이라고 하고 공지라고도 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반야를 얻는 방법은 무엇일까? 그것은 일체 집착을 놓는 것이며 일체 아집을 놓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인간 본성이 본래로 법성인 까닭에 아집과 망견이 없을 때 저절로 자성광명 즉 반야광명이 솟아 나오게 된다.

   또 한 가지 반야를 언는방법이 있으니, 그것은 보시이다. 보시의 실천을 통하여, 특히 구하는 바 없고 머무는 바 없는 보시를 통하여 반야를 얻는 것이다. 보시는 아집 망견을 깨트려 없앨 뿐만 아니라 법성 생명을 훤출히 드러내는 실천행이 되는 것이다.그것은 바로 아집을 초월한 순수한 깨달음의 실천이다. 반야경이 보시를 제일바라밀이라고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