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마에세이] 직업과멋

테마에세이/우리들의 멋

2007-12-17     정을병

  직업이라는 것은 사람이 먹고 살아가는 데 필요하기 때문에 있는 것이지만 가급적이면 그것이 자기 소질이나 취미에 부합되기를 바라고 있다. 자기 소질과 취미에 맞으면서도 그게 밥벌이도 되는 일이라면 가장 멋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런 합리적인 경우라는 것은 그리 흔하지 않은 것이 또한인간 사회이다. 어떤 사람의조사에 의하면 자기 직업에 만족하고 있는 사람의 수는 겨우 50%  안팎에 지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먹고 살기 위해서 하기 싫은 직업이지만 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일까?

 물론  처음에는 자기 소질과 취미에 그 직업이 맞겠다 싶어서 택했지만 직업을 향하여 가는도중 그만 싫증이 나버린 경우도 있겠고 애초부터 취미에는 맞지 않지만 경제적인 이유 때문에 택했던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는 가급적이면 빨리 그리고 기술적으로 직업을 옮겨야 하지만 여건에 맞지 않아서 그게 영영 불가능할 경우도 있다.

 이럴 때는 어떻게 할 것인가? 사막에서 자동차가 고장이 나서 옴싹달싹도 못하는 비극감에 빠져 있어야 하는가?  아니다. 이럴 때 우리는 싫은 자기 직업과 좋은 자기 취미의 사이에 멋의 꽃을 피우는 정원사와 같은 지혜로움이 필요하다.

멋은 생활의 꽃이다.

 그 꽃은 일정한 형태나 이름이 있는 것이 아닌 자유스러움을 지니고 있다. 그래서 이용하고자 하기만 하면 어떤 형태로도 자기에게 알맞도록 만들어 볼 수가 있다.

 직업이란 그것이 직업이기 때문에 삭막하고 치열하고 굴욕적인 일면을 필수적으로 지니고 있다.

 반면에 직업이 또 지니고 있는 숭고함이 있다. 그것을 발견하기 위해서는 소위 멋을 아는 마음의 자세가 필요하다. 직업과 취미를 가급적이면 일치시켜 보아야 하며, 그게 불가능하면 양립이라도 시키려고 해보아야 한다. 이게 바로 직업인 샐러리맨의 멋이라는 것이다. 스포츠를 즐긴다든가 그림이나 원예를 즐기는 것으로 직업에 대한 염증응 줄이고 건강을 유지해 나가는 방법도 있으며 눈에 보이지 않는 형이상학적인 명제를 마치 취미처럼 즐길 수도 있는데 이는 전자보다 훨씬 차원이 높고 근원적인 멋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것들 보다도 한 단계 더 높은 멋이있다면 종교를 터득하고 그걸 자기 생활의 멋으로 받아 들이는 일이다. 종교의 경전은 수 천년동안의 경험으로서 인간의 약점이나 외로움 번뇌 등을 잘 천착하고 있으며 그걸 이겨나가는 방법도 극명하게 기술해 놓고 있다.

 우리가 만일 그런 종교의 영원성을 생활에다 받아들인다고 하면 그야말로 인간은 더할 나위없는 멋을 지니게 될 것이다.

 직업에서 오는 억압된 기분을 종교적 체념과 달관으로 씻을 수 있다는 것은 인간이 누릴 수 있는 멋을 최대로 누리고 있는 생활이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