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의 은혜

은 혜

2007-12-16     관리자

   나의 머리에는 대웅전 부처님의 모습이 불현듯 떠올랐다.  크나큰 위덕으로 나를 어루만지시는 자비하신 모습에서 나는 형언할 수 없는 법열에 휩싸였다.  얼마가 지났을까, 먼동이 트고 물소리가 내 귀에 들릴 때 나는 몸을 일으켜 먼곳을 향해 절을 하고 부처님의 은혜에 한없이 감사하였다.

   일반적으로 말하는 부처님의 은혜는 이미 경전 속에서 말하고 논장속에서 말하고 2500년래로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극구 칭송하고 찬탄하고 감사하였기 때문에 나와같은 사람이 왈가왈부할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내가 느끼는 부처님의 은혜에 대해서만 여기에 적어보려고 하는 바이다.  은혜는 느끼는 것이고 느끼는 바는 사람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에 역시 실감나는 일은 자기가 직접 느낀 일이다., 

그래서 일반론을 피하고 스스로 느낀바를 적어보려고 하는 것이다.  나는 어려서 머리를 땋고 서당에서 한문공부를 하였다.  지금도 생각나는 것은 천자문 가운데 - 생각을 이기면 성인이 될 수 있다 는 말 뜻을 몰라 어린 가슴을 조이던 일이다.  그 답답하던 생각- 그러한 생각이 차차 자라나매 부처님을 알게 된 것이다.  사람의 운명은 정말 알 수 없는 것이다.  20대에 가서 나는 가정과 인간에 많은 풍상을 겪게 되었다.  그래서 처음으로 봉두난발하고 절간을 찾았다. 

그러나 딴 꿈을 가지고 간 것이다.   기이한 인연이었다.  절간에 신세를 끼치면서 내 불평을 불교에 부쳐서 그것도 말로 한 것이 아니고 일제때의 <불교>란 잡지에 투고하여 싣게 되었다.  물론 절에서 쫓겨나야 하였다.  그러나 국민학교 은사의 알선으로 쫓겨나는 화를 면하였으나 -네가 불교를 비방하려거든 불교를 알고 말하라-하신 그분의 말씀이 오늘도 내 귓전에 맴돌고 있다.  그때부터 나는 불경공부를 하였다.  초발심 자경에서 4집, 4교로 그때 불교강원에서 공부하던 과정을 좆아 읽었다. 

그 때 나에게 가장 깊은 감명을 준 것은 원효대사의 발심문이었다.   조금씩 불교를 알게되고 제법 부처님 앞에 머리숙여 기원할 줄 알게 됨에 따라 젊은 시절의 고민과 갈등과 현실의 불만등을 불전에 나아가 예배와 기원과 타좌로 해소시켜 보려고도 하였다.   다시 풍파가 있어 동경으로 건너가 학업을 닦게 되었으나 이것이 기연이 되어 불교학교인 대정대학예과로 진학하게 되었다.   솔직한 말로 불교에 몸을 바칠 생각이라기보다 절에서 학비를 얻어 쓴다는 것이 첫 목적이었다. 

부처님께 미안한 생각을 하면서 어쩔 수 없었다.  그러나 뜻대로 되지 않고 그렁저렁 예과를 마쳤을 때 대학은 코-스를 달리 하려 하였다.  다시 절에서 학비를 얻어 쓸 교섭을 하면서 여러 사람의 권유로 대경대학에 진학하였다.  그러나 대학 3년간도 절돈을 타 쓸 인연은 잘 맺어지지 않았다.  어쩌면 지난날 스님네들을 비방한 데 대한 순현보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삼보의 맑은 재물을 나와 같이 속된 사람이 쓸 수 없게한 것을 새삼 부처님께 감사드린다.   이 때까지 의식적으로 부처님의 은혜를 감사해 본 적이 별로 없었다.  다만 불교를 조금씩 깊이 알아감에 따라 부처님의 위대하심과 거룩하심을 알게될 따름이었다.  학교를 마치고 불교강원에서 외국어와 역사를 맡아 일하게 되었다. 

2년간 봉사하였다.  예불드리고 참선하고 하는 일이 일상과업으로 그저 평범하게 치루어졌다.  그러나 이 평범한 생활 속에서 내 마음 속 깊이 부처님의 은혜를 심어간 것을 나 자신도 몰랐다.  일제 말기 어려운 고비에 나는 가정과 세속을 떠나 팔도강산이나 유람하려고 길을 떠난 적이 있었다,  무전여행이었다.  어느 산골쩌가애소 갈울 앓고 헤매다가 쓰러진 일이 있었다.  그것도 모든 것을 단념하고 수도할 생각으로 선방에 갔다가 실해한 나머지 떠난 길이었다.  처음에는 산짐승이 두려웠다.  몇대로 독자인 내 집에 장자인 나마저 이렇게 된다면 하는 걱정이었다.  부모의 모습이 눈에 선하였다. 

다음에 나타나는 환상, 그것은 사랑하던 사람의 모습이었다.  인연이 닿지않아 맺어지지 못한 여인의 환상이 깊은 괴놔와 같이 송리 사이로 비치는 달빛에 환상으로 떠올랐던 것이다.   다음에 나의 머리에는 불현듯 대웅전 부처님의 원만하신 모습이 훌쩍 떠올랐다.  순간 크나큰 위덕으로 나를 어루만지시는 자비하신 모습에서 나는 형언할 수 없는 법열에 감싸였다.  얼마가 지났을까!  이윽고 먼동이 트고 물소리가 내 귀에 들릴 때 비로소 나는 몸을 일으켜 먼곳을 향하여 절하고 부처님의 은혜를 한없이 감사하였다.  나에게는 샘처럼 새힘이 솟구쳐 나왔던 것이다. 

해방이 되어 다시 교단생활을 계속하였다.  이제 즐거울 때나 괴롭고 어려울 때나 부처님은 항상 나와 함께하심을 나는 알고 또 믿고있다.  세속생활의 애환 속에서 계율을 지켜본 적이 없다.  계를 스승으로 하라는 부처님 말씀은 한번도 지키지 못하였고 또 지킬수도 없었다.  다만 계의 정신은 항상 마음속에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을 따름이다.  앓아 누었을 때 부처님을 찾고 어려운 고비에 부처님을 찾고 괴로울 때 부처님을 찾고 답답할 때 부처님을 찾는 것이 술에 취해서도 찾는 경우가 있다.  부처님은 꾸중하실것이다. 

그러나 내가 부처님의 은혜를 감사하는 것은 그 위대하신 가르침 보다도 대자대비하신 중생제도의 서원때문이다.  당신이 만약 성불하시고 말았다면 이처럼 그 은혜를 깊이 느끼지 않을 것이다.  무변중생을 맹세코 계도하시겠다는 크나큰 당신의 서원때문에 나와같은 중생과도 인연이 닿을 수 있게 됨이라 생각할 때 진실로 한없는 고마움을 느끼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