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경/참된 예경은 인간공경이다

2007-12-16     관리자

(1) 예경하는 마음

짙은 녹음은 파아란 바람을 몰고 오고, 도량은 사뭇 정결한 느낌을  더하게 한다. 단청 채색은 찬란하고 웅장한 법당과 부처님 존상은 한없이 다정하다.

부처님앞의 향로에는 끊임없이 향이 꽂허지니 향연은 온 도량에 넘쳐 흐른다. 혹은 합장을 하고, 혹은 염주를 잡고서 부처님 앞에 머리 조아리는 사람들-혹은 태산이라도 넘어지듯 온 몸을 부처님 앞에 던지는 사람 혹은 나비처럼 사뿐히 엎드렸다가는 일어서는 사람, 혹은 이마를 법당 바닥에 붙이고 떨어지지 않는 듯 엎드려 있는 사람, 혹은 고성염불을 하며 쉼새없이 예배를 반복하고 있는 사람. 이마에서는 땀방울이 흘러내리는 것도 보인다. 모두가 한결같이 너무나 진지하다. 합장하고 서있을 때나, 머리숙이고 몸을 던져 예배할 때나, 모두의 얼굴. 눈매.거동이 일념과 한 호흡속에서 녹아 있는듯 엄숙하기만 하다. 

이런 예경하는 풍경은 우리들이 쉽게 볼 수 있는 정경이다. 실지 우리 모두가 그런 정경을 만들고 있고 그 속에 함께 하고 오늘에 왔다. 부처님께 예경한다는 것에 대하여는 여러 말이 필요없다. 실지 부처님 앞에 합장하고 스스로의 생각을 멈추고 공경과, 갈앙과, 귀의하는 일념으로 자기자신이 되어 버렸을때 우리들은 부처님 앞에 예배를 드리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예경을 깊이 체험한 사람에게 비로서 예경이 무엇이다 하는말이 나올 수 있는 것이다. 예경에서 우리의 마음은 비어 있다. 맑은 것만 가득한 것이다. 부처님을 향한 공경과 귀의 일념이 그속에 착색되어 우리들은 쉬지않고 부처님 앞에 몸을 굽히고 이마를 조아리는 것이다. 만약 마음 속이 비어 있지 아니하고 가지가지 생각이 잡다하게 엉크러져 있다면 거기에서 참된 예경이 될 수는 없는 것이다. 일심으로 부처님을 생각하여 잡다한 마음을 비워야 하는 것이다. 이런데서 우리는 맑고 청정한 마음과, 부처님의 자비하시고, 광명하시고, 다사로우신 은혜에 젖는 것이며 우리들의 참된 공경례도 있게 되는 것이다.

6조대사 법보단경에는 다음과 같은 대문이 보인다. 법달스님이 처음 6조대사를 찾아 갔을 때, 조사에서 예배를 하였으나 이마를 당에 대지 않았다. 말하자면 뻣뻣한 절을 한 모양이다. 이대 조사께서 꾸짖기를[절을 하더라도 머리를 땅에 대지 않으니 절을 하지 않는거와 무엇이 다르랴. 네 마음 속에 반드시 한물건이 있구나. 너는 지금가지 무엇을 익혀 왔느냐?] 하셨는데 [법화경을 삼천번 읽었습니다]대답하니 조사께서 말씀하시기를 [네가 만번을 읽어서 경의 뜻을 알았더라도 그것으로 자랑을 삼지 않으면 좋겠거니와, 네가 이제 그일을 자부해서 도무지 허물되는 줄을 모르는구나.] 하시며 법달스님의 마음을 열어주신 것이다.

여기 법달스님의 경우처럼 설사 경을 읽거나 그 밖에 착한 일을 많이 하였더라도 그것으로 자랑을 삼는 생각이 있다는 이것은 참된 절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2) 예경은 相을 여의어서

예경은 이와같이 마음을 비운 공경례라고 하겠거니와, 예경은 어떤 때 누구에게 하는 것일까를 다시 생각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존장어른이나 성인을 향해서 예경할 수는 있다 특히 부처님 존상을 우러러 생각하며 절을 많이 한다. 그런데 금강경에는 부처님께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                            

[삼십이상이 여래가 아니다] 말 하자면 부처님의 거룩하게 빛나는 덕스러운 본상이 부처님이 아니라는 것이다. 또 말씀하시기를 [만약 나를 형상으로 보거나 음성으로 찾으려하면 이사람은 삿된 도를 행 하는 것이니 부처님은 보지 못한다.]하신다. 역시 부처님의 몸매나 목소리 같은 형상을 부처님으로 아는 것은 큰 잘못이라는 말씀인 것이다. 또 말슴하시기를 [모든 형상있는 것은 다 이것이 허망한 것이다]하셨다. 그렇다면 필경 예경을 어떻게 하여야 하는 것일까가 문제가 된다. 과연 형상 있는 것은 허물어지는 것이고 그것이 추한 것이든, 성스러운 것이든, 허물어지기는 마찬가지다. 형상 있는 부처님은 역시 허물어지는 것이다.  

부처님께서는 형상이 부처님이 아니라고 가르쳐 주심으로서 부처님은 허물어지지 않는 것임을 알려 주셨으며 동시에 형상을 보고, 생각을 내고, 평가하는 우리의 마음을 깨우쳐 주신 것이다.

부처님의 뜻을 짐작한 바로는, 모든 형상 있는 것은 허망한 것이어서 우리가 아는 바 현상 그것은 아닌 것이다. 실로는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바 [모든 상을 여의어서 부처님께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으셨다]하심과 같이, 현상은 없는 것이고 상이 아닌 위 없는 진리 만이 있는 것이다.

이와같이 생각해보건대 우리들은 예경하는데 있어 모름지기 형상에 걸리지 말아야 할 것이다.삼십이상에 걸리지 않고 예배하며, 추악한 중생의 모양에 걸리지 않고 모든 사람을 공경하며, 어리석은 중생의 행실에 걸리지 않고 저들을 공경하여야 하는 것이다.

(3) 만인을 공경하자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시기를 [모든 중생을 공경하고 섬겨라. 저들을 공양하고 환희심에 나게 하라. 그러면 모든 부처님을 공양함이 되고 모든 부처님을 환희하시게 함이 된다]하셨다. 이로 볼지라도 삼십이상을 여의고 공경하여야 하며, 중생상을 여의고 공경하여야 하겠다.

바꾸어 말하면 모든 부처님께 공경하고 모든 중생에게 공경하되 진실한 마음으로 차별없이 공경하고 섬겨야 하겠다. 오늘날 세계는 형상만을 보고 말한다. 인물이 번드레 하거나, 형상이 누추하거나, 또는 재산이 있거나 없거나, 또는 권세 있는 사람인가 아닌가에 따라 평가를 달리한다. 인간을 차별하고, 사회적으로 차등 대우를 하며, 인간이 타고난 풍부한 자성공덕을 매몰하기 쉬운 것이다. 우리는 부처님 가르침을 따라 모든 사람을 공경하고 예배할 것을 배워야하겠다. 형상적차별에 매이지 말고 사람마다 가지고 있는 자성공덕을 공경하며 서로 존중해주고 그 가치와 능력을 충분히 발휘하도록 도와주어야 하겠다.

이것이 부처님의 예경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것이 될 것이다. 그렇다면 이세상이 얼마나 아름다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