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화실 일기

지혜의 샘

2007-12-16     관리자

   1976년 2월 3일

   젊은 자명스님, 시와 편지 잘 받았읍니다.  우리는 얻은 것이 무엇이며 잃은 것이 무엇인가가 문제입니다.  서양의 현대문명은 신을 회의한 데서 시작하였다고 들었읍니다.  우리는. 그들이 잃은 댓가로 이루어놓은 발전과 반성을 떠맡게 되었읍니다.  그러나 개인은 그렇게 단순히 규정지어지지는 않습니다.  어떤 사람은 머리에 흰 털이 늘면서부터 종교를 거듭 생각하기에 이릅니다.  종교보다 더한 것이 있다면, 즉 불교는 자명스님이 더 잘 알아야 할 일입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아픈 만큼 새로이 찾아야겠다는 믿음을 얻나 봅니다.  물론 이해관계나 목적의식과는 다릅니다.  그런 것은 어느 시대나 누구나 인간이면 실컷 겪는 일입니다.  내가 말하는 믿음이란 모르기 때문에 알아야겠다는 신념입니다.  부처님의 말슴을, 오늘날까지 들어 왔지만, 신앙은 멀기만 하였읍니다.  그러나 믿음 없이는 나를 유지할 수가 없었읍니다.  시인이라면 다소나마 종교적 기질이 있나봅니다.  고어에는 시성이란 말도 있듯이 동양에서는 시를 말씀의 절로서 표현한 것도, 우연한 일이 아닙니다.  석가모니불께서는 한량없는 부처님을 설하셨읍니다. 

한량없는 게송이란 무엇일까요.  사람의 한량없는 잘못과 괴로움을 염려할 필요는 없읍니다.  인간을 버리고 부처님이 될 수는 없읍니다.  四苦가 연화좌이기에 대자대비는 방광하며 늘 六種震動합니다.  그렇다면 시와 과학도 별개의 것은 아닐 것입니다.  불교와 창조예술도 불이법문이라면 망발일까요.  이런 점은 시를 쓰는 젊은 자명스님이 잘 연구해서, 나를 깨우쳐 줘야합니다.  부처님 명호를 한번만 불러도 언젠가는 반드시 성불한다는 이와 같음을 나는 경전에서 들었읍니다.  그러므로 시인 자명스님을 기대하기에 앞서 믿습니다.  부처님과 시가 하나인 경지를 慈明하기 바랍니다.  아솔암에도 비가 내리는지요.  五獨중에서 이만 주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