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 심

지혜의 샘

2007-12-16     관리자

   재직하고 있던 어느 날이었다.   퇴근이 늦어져서 야간 학원에 다니는 사환 아이를 먼저 보내고나니 큰 방이 더욱 휑하여 보인다.   나는 창가에 다가서서 멀리 저물어가는 시가를 바라보다가 창에 비친 내 모습을 발견하였다.   하얗게 센 머리, 주름진 얼굴이 유난히 초췌함에 놀랐다.  

그러니까 그때는 내가 정년퇴직을 한달 앞두고 있던 때였다.   나는 회갑을 치른 다음 해에도 학생들에게 큰소리를 치면서 체력대결도 불사하였다.   그러면서도 연령에서 오는 압박감을 무시하려고 노력을 하였건만 나이는 속일 수 없는 것인지 주위에서는 이미 할아버지로 대접하는 데는 도리가 없었다.   처음에는 할아버지란 말이 귀에 섬찍하고 불쾌감마저 일으키던 것이 지금은 당연하게 여겨질 뿐만 아니라 노인 대접을 소홀히 하든가 무시할 때는 도리어 역겨움마저 일어나는 걸 보면 先何心後何心인지 알 수가 없다.  

지난 날 나의 단련된 신체 근육을 자랑하던 육체미의 모습은 찾을 길이 없으며 청춘의 정열과 불퇴의 패기도 어디론가 사라져 버리고, 타협과 양보로 무사안일을 꾀하게 되었으니 세상사 무상함을 새삼 절감하게 된다.   인생은 고해라고 하며, 또는 형극의 길이라고도 한다. 그런데 어이하여 삶에 대한 애착이 이다지 강한지 알 수가 없다.  

불치의 병을 지니 자 형태나 동작에 크게 결손이 있는 자, 전신이 기형적 불구인 자 악성 유전병 질환자등등 아무런 인생의 즐거움도 꿈도 소망도 맛 볼 수 없는 인간임에도 생명에 대한 애착은 더 하다고들 한다.   인생이란 빈손으로 왔다 빈손으로 가는 것이니 혀욕을 갖지말라고는 하나, 그렇지만 우리들이 눈을 감고 죽기 전까지는 그래도 무슨 업적을 남겨 놓아야만 할 것이 아니겠는가?   적어도 남을 위하고 이웃을 위하고, 지역사회의 복지를 위하여 작은 공덕이나마 쌓아야 하지 않겠는가.  

불가에서는 이것이 적극 주창되었고, 또 교육에서도 인간성 육성의 목표가 되어 왔다.   그렇다면 나는 누구에게 어떤 도움을 주었으며, 인간사회에 공덕을 쌓았다고 자신할 수 있을 것인가 하고 생각할 때 초라한 내 모습이 더욱 스산스럽기만 했다.   그때 방문을 잠그고 체육관을 나설 때 찬 기운이 몸을 엄습했음을 기억한다.   불현듯 저물어 가는 교정의 부처님을 대하고 싶은 생각이났다.   층계를 하나 하나 올랐다.   가빠오는 숨결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어두어진 교정을 걷고 있자니 옥중에서의 기도하던 모습이 떠올랐다.   내가 1946년 3. 1절에 평양에서 소련 헌병에게 붙잡혀 옥살이를 할 때, 아침 저녁으로 취식 전에 먼저 음식을 일단 높은 곳에 올려놓고 <아미타불> <관세음보살><화엄성중>을 지성껏 부르면서 구제를 호소하던 기억이 떠올라 마음이 숙연하여졌다.   지성이면 감천이라던가 옥중기도 40일이 되던 날 꿈에 부처님께서 개구멍을 가리키며 저리로 빠져 나가라고 지시하심을 받고 깨었는데 그뒤 몇일 후에 석방이 된 일이 있었다.   그로부터 나는 스스로 불교신도를 자처하며 누가 종교를  묻든가, 신상카드의 종교난에 종교를 기입할 때는 서슴치 않고 불교라고 하였다.   번뇌가 있거나 곤경에 부딪칠 때에는 아미타불 관세음보살 화엄성중을 입속으로 외워왔다.  

그러면 자신도 모르게 마음이 차분하여지면서 안정을 가지게된다.   이 후에도 나는 한 두번 꿈에 현인의 지시를 받은 일이 있음을 기억하고 있다.   그러나 근자에 와서는 나의 신심이 부족한 탓인지 아니면 나 자신에 몰입했기 때문인지 일체 현몽이 없다.   불심은 도처에 있으며 인간의 착한 마음이 곧 불심인지 이 불심에 따라 행한 행위가 공덕이라고 들었기 때문일까.   어느듯 시계탑의 광장에 이르니 땅거미가 완연히 지고 있었다.  

부처님 앞으로 다가가니 언제나 조용한 미소로 나의 마음을 감싸준다.   근 이십년동안이나 나를 돌봐 주고 성장시킨 이 정든 캠퍼스를 떠나야 한다는 사실에 나는 그때 가슴이 뭉클하고 눈시울이 뜨거워짐을 느꼈던 기억이 생생하다.   회자는 정리요.   생자는 필멸을 어이 하리.   십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하였는 데 하물며 한정된 생명을 타고난 인간을 말해 무엇하랴!  

슬픔은 누구에게나 있는 것 다만, 슬픔에 집착하지 말고 자기 자신을 등불로 삼고 의지하라는 불타의 말씀이 뇌리를 스친다.  이어서 진리를 등불로 삼고 진리에 의지하여 진리에 살지니라.   그때 나는 교정의 불상앞에서 조용히 합장하며 머리숙여 다짐하였다.   이제부터 불법에 귀의하여 나의 불심을 키워 나가리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