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의 고전] 소가 山을 나설 때

禪의 古典

2007-12-14     석주 스님

               깨달음으로써 최후 목표로 삼고 결코 다른 생각은 놓아버려야 한다.

   1. 住持의 要

 오조연(五祖演)선사가 불감(佛鑑)에게 말하였다.

「한 산중의 주인인 주지로서 요긴한 점은 대중을 대하여 풍성하고 자기 몸을 처신 하는데는 간소한 데 있다. 그밖의 잔일은 모두 마음에 두지 마라. 사람을 쓸 때에는 깊은 정성으로 써 그 사람을 세우라. 말을 하고자 할때는 힘써 신중하게 하라. 말이 존중될때는 주인되는 사람이 스스로 높아지며 사람을 정성으로 세울 때는 사람들이 스스로 감복한다. 사람에게 존중되면 엄하지 않더라도 대중이 귀복한다. 감복하였을 때는  영을 내리지 않아도 스스로 일이 이루어진다 . 어진 자나 어리석은 자나 각각 자기 뜻을 펴고 크고 작은 모든 사람들이 그 힘을 떨치게 된다. 세력을 가져 몰아세우고 호령 함으로써 부득이 그를 따르는 자와 어찌 다만 만배(萬倍)로써 비교하랴.」

   2. 불법 흥쇠의 이치

 오조연선사가 곽공보(郭功輔)에게 말하였다.

「사람의 성질이라 하는 것은 진실로 굳어져 있는 것이 아니다. 배우고 교화 받음을 따라 나날이 바뀐다.」 옛부터 불법이 훌륭하기도 쇠퇴하기도 하는 그사이에 운세가 있다고 하지만 대개 흥하고 쇠퇴하는 이치가 교화를 떨침으로써 되지 않는 것은 없는 것이다. 옛날 강서(江西) 마조도일(馬祖道一) 선사나 남악회양(南嶽懷讓)의 제조사가 세상을 교화할 때 맑은 기풍으로 부채질 하고 청정으로써 몸을 절제하며 도덕으로써 사람을 입히고 예절로써  가르치며 도를 배우는 자로 하여금 보는 거와 듣는 것을 거둬들이게 하여 삿된 습관을 막고 욕심을 끊어 이욕을 잊게 하였다. 그렇게 하므로써 나날이 선(善)으로 옮겨가 허물을 멀리하고 도를 이루며 덕을 갖추어가는 것을 스스로도 알지 못했다.

「지금의 사람들은 옛사람에 비교하면 사뭇 멀다. 만약 반드시 이 도를 밝혀내려고 한다면 뜻을 굳게 하여 바꾸지 말아야 한다. 반드시 깨달음으로써 최후 목표를 삼고 결코 다른 생각은 놓아 버려야한다. 어떤 고난이 있느니 공덕이 있느니 또는 잃고 얻는 것에 대하여는 이를  모두 되는대로 자연에 맡겨둬라. 조급하게 얻고 잃은 것을 생각하여 미리 서두를 것 없다. 하물며 어찌 미리 그 일을 이루지 못할것을 생각하고 그 일을 하지 아니하랴. 만약 터럭끝 만큼이라도 가슴 속에 그런 생각이 싹튼다면 이일은 한낱 금생에 마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천겁 만생에 이르도록 힘쓴다 하여도 아무 것도 이루지 못할 것이다.

 註 : 곽공보는 제형(提刑)벼슬을 하였는데 이름은 상정(祥正)이다. 오조연선사와 같이 백운수단(白雲守端)선사의 법을 이었다. 호는 정공(淨空)거사다.

   3. 소가 산에서 나갈 때

 곽공보가 당도(當塗)에서 강을 건너 해회(海會)로 백운단선사를 찾아갔다. 백운선사가 말하였다.「그대의 소가 순박한가?」공이 대답하였다.「순박합니다」화상이 크게 꾸짖었다. 공이 어쩔 줄 몰라 일어섰다. 그때 화상이 말하였다.「순박하냐 순박하냐 남전(南泉)도 대위(大潙)도 이와 다를 바가 없다.」하고 게송을 지어 주었다.

「소가 산중에 이르니 물도 넉넉하고 풀도 넉넉하다. 소가 산을 나서니 동(東)을 치고서 서(西)를 차더라.」

 또 말씀하였다.「옛날 대인은 三천명을 교화하였으니 가히 예절을 알아야 하느니라.」

 註 : 옛날 대인 운운한 것은 이런 말에서 따온 것이다.「옛날 대인(큰성인)이신 공자는 문도 三천명을 교화 하였고, 그 중에 학문에 달한 지는 七십명이나 된다. 그대는 아이들 八九명이나 모아 놓고 잘난 채하니 가히 부끄러운 줄을 알아야 한다.」

   4. 어리석은 선

 백운선사가 공보에서 말하였다.「옛날에 취암(翠巖) 진점흉(眞點胸)이라는 자가 있었는데 선을 깊이 닦아서 재미를 보았다. 그는 변재가 좋아서 제방 선지식을 거침없이 꾸짖기를 즐겨 하였지만 아무도 그의 공부를 인정하는 자가 없었다. 대법을 밝게 요달하지 못하였던 것이다. 하루는 금란(金鑾)의 선시자(禪侍者)가 그를 보고 웃으며 말하였다.『사형은 참선을   많이 하였다고 하나 아직 묘오(妙悟)하지 못하였으니 가히 어리석은 선(癡禪)이라 할 것이오』하였다.」

   5. 법을 전하라

 백운선사가 말씀하였다.「도가 융성하거나 쇠퇴하는것이 어찌 정해 있으랴. 다만 사람이 넓히는데 있을 뿐이다. 그러기에 이르기를『잡을 때는 있고 놓아버리면 없어진다』하였던 것이다.

 그렇다면 도가 사람을 버린 것이 아니라 사람이 도를 떠난 것이다. 옛사람은 숲속에 살거나 시정에 숨어서 명리에 끄달리지 않았으며 보고 듣는데는 현혹되지 않았다. 그리하여 마침내 능히 그 청정함이 한 시대에 떨치고 그의 아름다움이 만세에 전해간 것이다. 어찌 옛날에는 할 수 있었고 오늘날에는 할 수 없다고 하랴. 오늘날 되지 않는 것은 아직 교화가 지극하지 못하고 그 행을 힘써 행하지 않는데 있는 것이다. 혹자는 말하기를『옛날 사람들은 그 마음이 순박하였기 때문에 교화할 수 있었으나 오늘날 사람들은 가볍고 천박하여 교화할 수 없다』한다면 이 말은 참으로 잘못된 말이다. 족히 생각할 것이 못되는 것이다.」

   6. 천지를 움직이는 行

백운선사가 무위자(無爲子)에게 말하였다.

「말로 하고 행하지 못할 바엔 말하지 않음만 같지 못하고 행하되 말할 수 없다면 행하지 않음만 못하다. 말을 하면 반드시 그 마칠 바를 생각하고 행할 때는 반드시 그 영향을 생각하여야 한다. 그러므로 옛성인들은  말을 삼가하고 행을 가려 하였다. 말할 때에는 한낱 그 이치를 나타낼 뿐만 아니라 배우는 자로 하여금 깨닫도록 하였으며 행을 세울 때는 한낱 그몸을 바르게 할 뿐만 아니라 배우는 자로 하여금 이루지 못할 것을 이루도록 가르쳤다. 그러므로 말할 때에는 법이 있었고 행할 때에는 예절을 갖추었다. 그리하여 마침내 말하는 것에 허물이 없게 되고 행하는 것에 부끄러움을 부르지 않았다. 말하는 것이 곧 경이 되고 행하는 것이 곧 법이 되었다.

 그러기에 이르기를『언행은 군자의 핵심이며 몸을 다스리는 대본이다』하는 것이다. 그러니 바른 행이 어찌 천지를 움직이고 귀신을 감동시키며 사람이 공경하지 아니할 수 있으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