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생을 기억하는 미모의 여교수 (2)

윤회의 실증

2007-12-13     관리자

  3) 전생의 집을 확인하다 (계속)

  미슈라씨의 기록 사항과 차이가 나는 것은 다음의 5개 항목인데 이러한 것들도 대체로는 맞는 것이라고 보아도 큰 잘못은 아닌 것 같다.

  (1) 아들 두 사람의 이름을 '크리슈나 닷다' 와 '시바 닷다' 라고 하였었는데 정확하게는 '무루리' 와 '나레쉬'였다. 그러나 무루리에게는 애명이 있었는데 그것이 크리슈나였고,  '크리슈나 닷다' 라는 이름릐 사나이는 무루리 탄생 1개월 전에 사망한 비아의 시아주버니 (남편의 형)이었고 비아의 시아버지의 이름은 '샹카라 닷다'인데 그에게는 '시바' 라는 별명이 있었던 것이다.

  (2) 파사쿠시 댁의 호주는 '하리 랄 파사쿠' 이고 전 호주 (즉, 비아의 아버지) 는 '치코리 랄 파사쿠'인데 비아의 사망 당시의 호주는 그 여자의 제일 윗 동생인  '하리 프라사느 파사쿠' 였으니까 스완라타가 말한 비아의 본댁의 호주 이름은 이 두 사람의 이름을 섞어서 부른 것이라 짐작된다.

  (3) 죽을 때의 병이 목병이라고 하였는데 프라사드의 말에 의지해 보면, 비아는 목병 때문에 수술을 받은 적이 있었지만 참 사인은 심장병이었다고 한다.

  (4) 파사쿠시 댁의 주소가 '즐쿠티아 모하란' 이었다고 하는데 '모하란' 이란 말은 시내라는 말에 해당하므로 별 뜻이 없고 실제의 주소는 '자라티쿠' 이었으니까 기억에 약간의 착오가 있었던 모양이다.

  (5) 목병을 수술한 의사의 이름이 나피 동네의 'S. G. 바브랏드'였다고 하였는데 비아의 아들인 무루리에 의하면 의사의 이름은 '바랏드' 라고 하니까 약간의 틀린 발음이었을 가능성이 있다.

  이상에서 본 것만도 전생의 기억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 20여종은 된다. 그리고 그 정확성은 아주 사소한 부분을 빼놓고는 거의 전부 정확한 것이라고 보여지는데,  이러한 불가사의한 일을 우리는 어떻게 해석하여야 할 것인지, 그리고 스완라타는 비아로서의 생애를 살았던 전생만이 아니라 그 이전에 벵갈 지방에서 또 다른 생애을 지낸 전생을 기억하고 있었으니 참으로 기이하다 할 것이다. 파사쿠 가를 방문하여 스완라타의 전생 기억이 정확하였다는 것을 확인한 버나지 씨도 그 정확성이나 기억의 상세성에 대하여 참으로 크게 놀랐으며 그 진실성을 더욱 실증하기 위하여 파사쿠 가의 협력을 얻기로 하였고, 그 조사를 세밀하게 진행시킬 수 있게 되었다.

  4) 양가의 접촉 여부

  그 조사 결과에 대한 보고를 기술하기에 앞서 독자 제위가 품고 계실 의문점이라는 것은 파사쿠씨 댁과 미슈라씨 댁의 양가가 사전에 무슨 접촉을 가졌을 가능성이 있지 아니 할까 하는 것, 또는 어린 스완라타에게 파사쿠가의 정보를 제공할 어떤 숨겨진 인물이 있지 아니 하였을까, 또는 악의적으로 보아서 양가가 서로 짜고 무슨 연극을 꾸민 것이나 아닐까 하는 것 등일 것이다.

  만약 이 중의 어느 하나라도 사실로 있었다면 스완라타의 소위 전생 기억이라는 것은 한 푼어치의 가치도 없는 것이 되고 만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말하면 그러한 가능성은 절대로 없다.

  먼저, 지리적 상황으로 보아서 미슈라씨네가 카토니시에서 가장 가까운 지방에 살고 있었던 곳은 판나시였었는데 그것은 스완라타가 생후 3년 반에서 5년까지 사이의 2년 간이었는데 그 외의 기간 동안은 카토니시로부터 판나보다는 먼거리 또는 판나시 주변에 살고 있었다. 판나로부터 카토니까지의 거리는 180Km, 그리고 파사쿠씨네가 살고 있었던 카토니, 자파루풀, 마이할, 시호라 등은 모두 카토니 주변이다. 자파루풀과 카토니는 주요한 철도 연변이지만 파나나 차타라풀은 그렇지 않다. 그러나 버스는 다니고 있어서 어느 곳으로나 통할 수는 있다.

  그러나 미슈라, 파사쿠 양가가 다 버나지씨의 실증 이전에는 서로 지면관계에 있지 않았다는 것은 관계자 모두가 확언하고 있는 것이고, 버나지씨가 파사쿠가를 찾아갔을 때에도 프라사드를 비롯한 파사쿠가의 가족들에게 있어서 스완라타라는 소녀가 있다는 사실도, 또는 그 소녀가 무슨 말을 하고 있었다는 것도 아무도 아는 이는 없었으며 위에서 본 바와 같이 프라사드가 최초로 버나지씨를 만났을 적에 크게 놀라움을 나타내고 있었던 것이다.

  지리적 상황 외에 이 양가를 공히 알고 있었던 인물이 두 사람 있기는 하였으나 그 분들의 관여의 여지는 전혀 생각할 수 없는 것이다. 그리고 연극일 수 있는 가능성 역시 완전히 부정된다. 왜냐하면 그러한 연극을 하여야할 동기가 전혀 발견되지 아니함은 물론, 그것이 폭로되었을 경우 그들이 입을 사회적 신망의 손실은 너무나 큰 것이므로 그러한 위험을 무릅쓰고 연극을 해야할 이유는 결코 있을 수 없는 것이다.

  5) 전생의 동생을 만나다.

  여하튼 이상과 같은 경위로 버나지씨가 차타라풀에서 조사를 마치고 파사쿠가를 방문한 다음부터 두 집안의 접촉이 시작되어 이 어린 아이의 전생 이야기를 확인하는 일이 시작되었다. 이 경우에도 어린 당사자에게는 아무 말도 해 두지 아니한 것은 말할 것도 없다.

  버나지씨가 파사쿠가를 찾아가서 프라사드를 만나 같은 해 여름에, 프라사드는 사전에 아무런 연락도 없이 차타풀로 미슈라가를 찾아 나섰다. 스완라타 소녀는 아버지인 미슈라씨와 함께 이 낯선 손님을 맞게 되었는데 프라사드는 이 때에 미슈라씨의 부인에게조차  자기가 누구라는 것을 밝히지 않은 채였고 어디까지나 초대면의 인물로서 서로 만난 것이다. 이 손님을 보기가 무섭게 이 소녀는,

  " 하리 랄 파사쿠 "

라고 소리치면서 깜짝 놀란다. 이것은 비아의 아버지 이름을 프라사드의 이름과 혼동한 것이다. 프라사드가 이렇게 불리우고서도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으니까,

  " 아아, 바브구나. ''

라고 스완라타가 고쳐 불렀다. 이 바브라는 말은 파사쿠가에서 프라사드를 부르는 애칭이었던 것이다. 생시에는 비아 역시 프라사드를 그렇게 불렀다. 인도사회의 풍습은, 어른과 어린이는 엄격히 예의를 지켜야 하며 함부로 친숙한 것 같은 태도도 보이지 못하게 되어 있는 것이다. 그런데 10살 먹은 어린 소녀가 50대의 어른을 처음 만나면서 마치 어린 동생을 부르는 듯 '바브'하고 낮추어 부르는 일은 도저히 생각할 수 없는 일이다. '이 때의 광경에 대하여는 나 (스티븐슨) 자신이 1961년에 프라사드와 미슈라양 씨에게서 직접 증언을 듣고 확인 하였다.'

  프라사드는 카토니로 돌아온 뒤, 이러한 일을 마이할의 비아의 카토니의 유족들에게도 전해주었다. 그리고 그 뒤에 비하의 남편등이 스완라타를 만나러 차타라풀로 가기로 하였는데, 그 때에는 이 소녀를 어리둥절하게 하기 위하여 몇가지의 꾀를 꾸며 놓았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