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생이 다하면 다음생에서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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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생이 다하면 다음생에서라도…
  • 관리자
  • 승인 2007.11.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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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 20주년 기념 연속 대담 10

해득 스님 먼저, 이번 10월을 맞으면서 스님께서 이 신흥사 어린이불교학교, 청소년 수련원을 개원하신지 만 20주년이 됨을 축하드립니다.

성일 스님 예, 감사합니다.

해득 스님 20 년 전쯤에는 우리 불교의 전반적인 사정으로나, 또 비구니 혼자라는 입장에서나 선뜻 어린이 포교를 하겠다고 원을 내시기가 쉽지 않았으리라고 짐작되는데 그때 당시의 상황이나 스님의 각오가 어떠했는지 들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성일 스님 그때는 우리 불교 집안에서 어린이 포교에 대해서 관심이 없을 때였어요. 제가 처음 시작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점은 참고할 만한 자료가 없었다는 점이었죠. 그런데 부처님께서 어린 라훌라를 가르치시는 것을 보면 참으로 대단한 가르침이구나 하는 생각을 갖게 됩니다. 우리 불교에 이렇게 좋은 가르침이 있는데 오늘의 우리가 제대로 서먹질 못하는게 안타까웠습니다. 그래서 저라도 먼저 시작을 하고 자료들을 만들어 가면 나중에 하는 사람들이 조금은 수월하지 않을까 생각하고 하나하나 교안도 만들면서 해오보니 20 년째가 된 것입니다.

또, 비구니 혼자라는 제 입장은 그리 힘든 것이 아니었습니다. 저는 처음에 청암사에서 초발심자경문을 배울 때부터 비구스님들 틈에 끼어서 함께 배웠습니다. 전혀 비구니 혼자라는 것이 힘들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이런 질문을 여러번 들어왔지만 그때마다 제 대답은 똑같았습니다.

어린이 포교를 하게 된 동기

해득 스님 스님께서 어린이 포교를 하시게 된 좀더 구체적인 동기가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만….

성일 스님 아 예, 그게…제가 수원 용주사에 잇을 때 수원교도소 법회에 다녔습니다. 그때 한 살인죄수가 보내온 참회편지에, 자기가 어려서 일찌감치 불법을 만났더라면 그런 끔찍한 죄를 저지르지 않았으리라고 써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 편지를 읽어보니 사람들이 어릴 때부터 착하고 올바르게 커나가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어린이 법회를 시작한 거지요. 그렇게 시작해서 지금까지 해오고 있습니다. 어린이들의 작고 사랑스런 입으로 찬불가를 부르는 걸 보며 별로 힘든 줄 모르고 해오게 되었습니다.

해득스님 오늘의 신흥사 청소년수련원은 이제 명실공히 최고의 시설과 교육내용을 자랑하는 청소년 포교의 으뜸 도량으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스님께서 처음이 외진 곳을 찾아오셨을 무렵부터 지금까지의 역정을 간단히 회고해주시고, 또 이 신흥사의 절터나 대웅전에 모셔진 부처님에 관한 재미있는 얘기도 좀 들려 주십시오.

성일스님 22년 전에 여기에 왔을 때는 열 평 정도 되는 저기 작은 법당과 스물두평 되는 초가 요사채가 전부였습니다. 전 기도 수도도 없었고 기도 비포장이었지요. 촛불을 켜서 경을 읽고, 저 아랫마을까지 가서 물을 길어다 먹었습니다. 또 이 뒷산에 올라가서 나무를 해다가 때서 쓰기도 했습니다. 농사를 직접 지을 수밖에 없어서 매일 밭을 메는 시간을 비워놔야 했습니다. 이 근방 세 개의 면에 절이라곤 이 신흥사가 유일한 것이데도 절은 아주 가난했어요.

신도들도 그랬습니다. 제가 처음 오니까 오래 전부터 절에 다녔다고 하는 할머니들도 저를 보고 스님이라고 부를 줄도 몰랐습니다. 그저 “처녀! 처녀!” 하고 불렀지요. 정말 황무지였다는 게 이런 걸로 알수있었어요.

그래서 저는 먼저 자급자족하는 불교를 만들겠다고 생각하고 이 주변에 온통 나무를 심기 시작했습니다. 그걸 팔아서 불사도 하고 가난한 사람들도 도와 줄 심산이었지요. 그런데 매일 매일 산에 가서 나무만 심고 밭에 나가 이만 하다보니까 그것도 할 짓이 아니었어요. 불사도 좋고 남에게 도움을 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불교 황무지에 참 불교의 뜻을 심는 것이 가장 시급한 일이란 생각이 불현 듯 들었습니다. 한 2년 동안 농사짓고 나무 심던 것을 치우고 그때부터 어린이 포교를 한 것입니다.

불사보다는 불교를 먼저…

그러다보니 불사에 온 힘을 쏟을 때보다 포교와 전법을 할 때가 오히려 불사도 더 잘되었습니다. 80년도에 옛날의 요사채를 헐어내고 지금의 60평짜리 요사채를 새로 지울 수 있었습니다. 여기서 정말 열심히 수련을 했어요. 열심히 하다보니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서 60평 으로도 부족하게 되었습니다. 그래 처음에는 조립식으로 한 200 평 지을 생각을 해봤는데 가만 따져보니 그게 낭비가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86년에 지금의 청소년수련원을 짓게 된 것이죠.

이걸 다 짓고 나니까 빚을 엄청나게 지게 되었어요. 앞이 막막했습니다. 생각타못해 88년도부터 두문불출하고 천일기도에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부처님의 가피라는 것이 이런 것이구나 감탄할 정도로 기도 시작한 지 다섯 달만에 그 많은 빚을 다 갚을 수 있게 되었어요. 게다가 지금의 큰법당까지도 이 천일기도 중에 다 이루어 낼수 있었습니다.

너무 감사한 생각에 천일기도가 끝나자마자 이천일기도에 입제하고 이 기도 중에는 14억 예산이 든 교육관 건립을 마쳤습니다. 지금은 다시 삼천일기도에 들어가 있습니다. 이 기간에 발원한 것이 현판도 ‘어린이 법당’ 이라고 씌여있는 진짜 어린이 법당을 짓는 것입니다. 지금 거의 완성되어가도 있는데 여기는 단청도 어린이들에게 거부감이 없는 연한 색을 칠할 예정입니다. 어린이들에게 설문조사를 해보면 대부분이 절의 단청색이 무섭다고 해요. 그래서 고안해낸 것이 지금 지어지고 있는 어린이 법당의 단청입니다. 아마 다 짓고나면 법당 단청 중에서 가장 특이한 단청이 될 것입니다. 다른 곳에서 어린이 법당을 만들 때 기준처럼 여겨지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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