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라이 라마 망명수기 <9> 침략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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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라이 라마 망명수기 <9> 침략 2
  • 달라이 라마
  • 승인 2007.10.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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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벳 불교 총수이며 국가원수인 비구 달라이 라마의 망명 수기 : 내 나라, 내 겨레

제5장 침략

달라이 라마도 티벳의 풍습 종교를 위하여 사찰도 다 둔다. 농업개발복지향상도 강제집행은 않는다고 약속했다. 우리 나라는 중공에 내주고 없어진다는 결론이다. 무력한 우리에겐 친구도 없고 그저 잠자코 있었다. 오로지 명문화 된 약속이나 지켜주기를 바랄 뿐이었다.

조약이 끝났다고 라사에 주재할 중공군 장성이 떠난다고 우리 대표가 전보를 쳤다. 그 장성은 먼 육로보다 내가 있는 인도 변방으로 바로 온다고 했다. 사람은 아예 인도로 피하라고 했다. 장성이 올 때까지라도 보류하자고 거절했다.

나는 마중간 사람들을 기다렸다. 중공은 자기들과 내가 동등한 대접을 요구했다.

시간이 되자 창밖으로 뾰족한 모자에 회색옷을 입은 세 사람이 단조롭고 보잘 것 없는데 비해 우리 쪽이 대조적인 차림이었다. 그 단조로움은 우리를 그렇게 누르려 한 본보기고 보잘 것 없던 인식은 우리의 착각이었다.

함께 들어선 방안에서야 누그러졌다. 장성은 모택동의 편지를 전했는데 조국 중공품에 안긴다니 환영한다는 소리고 통역을 통하여 장구한 장성의 인사로 되풀이, 같은 내용이었다. 나는 차를 대접했다. 누가 보면 회의는 잘 진행된 줄 알았을 것이다.

그의 라사 도착은 그렇지 못했다. 내가 극빈으로 대해주라고 지시해서 국무위원 두 사람이 마중나가고 다음날 수상이 만찬을 베풀었는데 장성은 우방의 대표에게 적절한 예의를 안했다는 불평이었다. 우리쪽도 그 사람의 우정이란 내막을 알만 했다.

나도 라사로 불려 갔고 중공군 치하를 맛보게 됐다. 장성 도착 후 도달만에 라사에는 3천명의 중공군이 진주하고 또 그만한 병력이 두 장성의 인솔로 증원했다. 시민들은 별다른 표정없이 접촉도 없었다. 중공군이 주둔지와 보급을 요구하자 난리가 났다.

하계별궁 일대를 야영지로 쓰고 몇몇 집을 차지했다. 보리 2천톤을 꿔 달라고 했다. 정부는 사찰과 개인까지 공출했다. 다른 식품도 요구했다. 물품이 동나고 물가가 폭등했다. 또 장성이 8천에서 1만 명을 끌고 나타났다. 더 땅을 차지하고 더 식량을 요구했다. 우리 경제는 단숨에 파탄이 났다. 중공군은 입만 갔고 와서 우리에게 먹이라고 들이댔다. 곡가(穀價)는 10배, 버터는 9배, 일반 상품은 2, 3배 뛰었다. 시민들은 아사(餓死)직전이었다. 어른들은 분을 참고 아이들은 구호를 외치고 돌을 던졌다. 정부에 대해서도 불평을 터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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