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Ⅱ] 고대 한일 불교의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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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Ⅱ] 고대 한일 불교의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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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7.10.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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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Ⅱ: 일본불교의 어제와 오늘 : 古代韓日佛敎의 關係

印度에서 發祥한 佛敎文化가 約 五百年뒤에 中國에 들어왔고 그로부터 約 三百年뒤에 韓國에 傳來되었고 그 後 約 二百年뒤에 日本에 傳授되었다.

高句麗 陽原王代(五四五~五五八)에 惠亮大師는 百坐講會와 八關會를 奉行하여 國民에게 不殺生, 不偸盜, 不邪淫, 不忘語, 不飮酒, 不坐高廣大床, 不着香華, 不自樂觀廳들을 强調하여 當時 一般民衆과 더불어 上流階級의 奢侈 驕慢 放蕩한 생활을 是正하고 國民道德을 樹立하려고하며 一種의 憲法과 같은 것으로서 信仰的으로 施行하기를 勸獎하였다. 嬰梁王 六年(五九五)에도 惠慈大師가 日本에 건너가서 聖德太子에게 法華經 維摩經 勝鬘經을 講義하였는데 太子는 깨친바 있어 八關會와 形式을 같이 하고 佛敎를 內容으로한 十七條憲法을 判定하고 聖德太子가 眞正한 意味로서 日本文化의 鼻祖라고 하지마는 그에게 活力을 賦與한 것은 高句麗 法師 惠慈와 惠聰外에 百濟 博士 學哥가 政治에 對한 것을 指導하였고 新羅聖人 日羅가 開拓 水利 土木 등 技術로서 國土造成을 하였기 때문에 日本이 나라답게 되고 聖德太子가 深奧한 學問으로 憲政의 治國으로 國土의 建設로 技術의 導入등으로 日本最初의 實質的 文化國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同二十一年(六一○)에는 高句麗法師 曇徵이 渡日하여 經 論을 講義하고 書畵를 敎授하였으며 따라서 紙 筆 墨의 製造法도 傳授하였다. 慧灌도 隋나라를 거쳐 日本으로 건너가서 奈良 元興寺에 住하면서 三論을 講義하고 또 榮留王十一年(六二八)에는 三論의 硏究家 道證도 渡日하여 三論學을 大成하였다. 이와같이 高句麗는 海外에서 寺院의 建立 敎學의 硏究등으로 盛況을 이루었다.

百濟는 高句麗보다 十三年 늦게 枕流王元年(三八四)에 佛敎가 傳入하였다. 이때로부터 約 二百년뒤에 聖王이 謙益을 中印度에 派遣하여 梵文 阿毘曇藏 五部律을 가지고 오게하여 이것을 번역 하여 門下와 함께 疏釋을 짓게하였다.

이 聖王이 西部姬氏 達卒 怒唎斯致契 등을 日本에 派遣하여 釋迦佛金銅像一軀, 幡蓋若干 經論若干을 聖王三十年(五五二)에 國書와 함께 보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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