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원효대사(元曉大師)의 생애(生涯)와 사상(思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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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원효대사(元曉大師)의 생애(生涯)와 사상(思想)
  • 이종익
  • 승인 2007.10.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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一. 머릿말

여기에서 원효대사(元曉大師)의 생애(生涯)를 엮어보고자 함에 먼저 원효대사의 역사적 지위를 잠간 소개하기로 한다.

원효는 우리겨레가 낳은 한 성자(聖者)이다. 그는 한 불교인(佛敎人)이라는 위치에서 보면 신라불교(新羅佛敎)를 대표한 인물(人物)임이 일반적인 공론(公論)이다. 따라서 한국의 一千七百年 불교사 위에서 그 대표되는 인물 세분을 가려낸다면 신라에서 원효와 고려에서 보조국사 지눌과 이씨조선에서 청허대사 휴정을 내세우게된다.

그런데 만일 그 가운데서 한분만을 골라낸다고 하면 이것은 원효대사(元曉大師)를 내세우지 않을 수 없다고 한다. 오늘에까지 한국의 전통불교인 조계종의 개조(開祖)로 보면 보조국사가 더 크다고 하는 이도 있으나 동양불교사 위에 있어서 원효는 중국에서도 찾아보기 어려운 위대한 인물이었다. 그것은 인도의 원천적 불교, 중국의 분파적 불교를 한데 묶어 회통불교를 건설하려한 크나큰 역사적 과업을 이룩하려는 특이한 역량의 소유자이며 또한 대승보살도를 실천한 분이기도 하였기 때문이다. 그의 생애를 간단하게나마 소개하기로 한다.

二. 세속의 인연

원효(元曉)는 방언으로『첫새벽』또는『첫새밝』이라는 뜻이다. 혹은 어릴 적 이름을『서당(誓幢)』또는『신당(新幢)』이라고 하였다고 삼국유사에 기록되었으나 그것은 잘못 안 말이다. 철종은 신라 군직의 명칭인데 원효(元曉)가 삼국통일 당시에 군사고문으로 있을 때에 받은 직호(職號)이다.

성은 설씨(薛氏)니 신라 육부대성(六部大姓)의 하나로서 아버지는『담날내마(談捺乃麻)』요, 할아버지는『잉안공(仍安公)』또는『적대공(赤大公)』이라고 한다. 내마(柰麻)는 신라의 십칠등(十七等) 관품(官品)가운데 제십일급(第十一級)에 속하는 내마위(奈麻位)이다.

그의 출생지는 지금 경북(慶北) 경산군(慶山郡) 자인면(慈仁面) 유곡리(油谷里)라고 한다. (대구 영남대학 부근) 때는 신라제이육대(新羅第二六代) 진평왕(眞平王) 三九年(西紀 六一七年)이다.

二. 출가와 수학(出家와 修學)

원효(元曉)의 출가연령은 정확하지 않으나 송승전(宋僧傳)에 약관, 곧 十五세경이라고 하였다. 출가한 곳도 미상(未詳)하나 흥륜사(興輪寺) 법장의 문인이라고 기록한데가 있다. 그 배움에는 일정한 스승없이 여러곳에서 묻고 배웠다. 특히 기록에 전하는 것은 영취산(靈鷲山) 반고사(磻高寺)에 있으면서 그 동쪽절에 있는 낭지법사(朗智法師)에게 도를 물은 일이 있다. 낭지법사는 법화경을 강하던 신승이라고 한다.

다음에 의상법사(義湘法師)와 함께 백제호대산(百濟狐大山)(전주고달산(全州高達山))에 와서 있는 고구려 도승 보덕화상에게 나아가 열반(涅槃)․유마경(維摩經)등을 전수했다고 대각국사문집(大覺國師文集)에 기록되어 있다. 보덕화상은 도(道)가 높은 분인데 고구려에서 새로 도교(道敎)를 신봉하고 불교를 무시함으로 백제로 피해왔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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