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여행 중 해인사에 들르려고 마음먹은 데는 두 가지 이유가 있었다.
첫 번째는 {팔만대장경도 모르면 빨래판이다}라는 책을 동네(미국 실버 스프링) 도서관에서 보았기 때문이다. 책의 제목을 보는 순간 나는 망치로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누가 저런 불경스러운 소리를 했을까? 아무리 모른다고 해도 팔만대장경이 어찌 빨래판이 될 수 있는가!
괘씸한 마음에 책을 꺼내 뒤적여봤다. 저자(전병철)는 책의 첫째 장에서 불상 이름에 대한 해설을 한다. 혀가 잘 돌아가지 않을 정도로 생소한 불상의 이름들은 그것을 짓는 기본규정이 있고, 그 기본규정을 알고 나서 불상 이름을 보면, 그 불상이 어디에서 제작 혹은 발견되었으며, 어떤 재료를 써서, 어떤 부처님의, 어떤 자세를(앉았거나 섰거나) 형상화했는가 하는 자세한 지식이 들어 있다는 것이다. 누가 내 마음 속을 들여다 본 것도 아닌데 나는 슬그머니 멋쩍어지고 책 제목만 보고 화를 낸 자신의 경솔한 판단이 부끄러웠다. 찬란한 5천년의 문화라고 우리가 툭하면 추켜세우는 우리 문화에 대해, 그리고 그 문화가 만들어낸 보물에 대해, 우리는 무엇을, 얼만큼 알고 있는가.
지금 내 앞에 한문이 새겨진 목판이 있다면 나는 그것을 판독할 만한 지식이 있는가. 십중팔구, 빨래판치고는 좀 유식한 빨래판이구나, 하는 정도로 지나쳤을 것이다. 문화재라고 자랑하는 것에 대한 우리의 무지(無知)를 이 책의 제목은 적절한 해학을 섞어 비난하고 있었다. 나는 해인사에 들러 유네스코(UNESCO)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한 팔만대장경을 내 눈으로 똑똑히 보아야 되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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