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인연이야기] 불교와의 인연 그리고 오늘의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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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인연이야기] 불교와의 인연 그리고 오늘의 나
  • 배광식
  • 승인 2007.10.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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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글을 배운 것은 일제시대의 일본글을 배운 것이 처음이다. 지금의 초등학교인 심산소학교 시절 교과서에 ‘수행자와 나찰(修行者と 那刹)’이라는 제하의 일본어 ‘히라가나(平假名)’로 영어의 ‘ABC’ 같은 47음자(音字)로 된 노랫말을 만나게 된 것이 불교라는 개념 설명과의 첫 해우였다.

그 때는 이 어려운 말의 깊은 뜻을 잘 몰랐지만 지금까지 기억에서 벗어난 일이 없었다. 불교공부를 하면서 이 노랫말이 『열반경(涅槃經)』에 나오는 “제행무상(諸行無常) 시생멸법(是生滅法) 생멸멸이(生滅滅已) 적정위락(寂靜爲樂)”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부처님 전생담에 나오는 진리를 구하기 위해 목숨까지 내던진 고귀한 수행자의 감동적인 모습임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아마도 그 때 그 시절의 호기심과 뜻 모를 느낌이 오늘의 나를 불자로 만든 씨앗이었을 것이다.

그 후 나는 자유당 정권 말기에 칩거하며 독서로만 세월을 보내야만 했던 때가 있었다. 한문으로 된 『금강반야바라밀경』을 접하고 사전을 뒤적이면서 해독하려고 애썼다. 그러나 너무 어려워 결국 난해한 경전이니 후일을 기약하며 해독을 단념하고 말았었다. 그러나 그 때 ‘금강석 같은 굳은 지혜로 피안에 건너가는 길을 찾아야 한다’는 추상적 자해(字解)는 늘 기억에 담고 있었다.

나이가 들고 자녀들을 다 분가시키고 나서 나의 반려요, 지금의 도반인 자광수 보살이 언니인 유심화 보살의 권유로 불광사에 다니게 되었다. 자광수보살이 사경반에서 서예를 익히며 마하보디합창단에서 언니와 함께 음성공양을 하면서 불교 공부에 몰입하고 있었던 어느 여름날, 우리 둘은 언제나처럼 태릉을 지나 갈매리 쪽으로 산책을 하다가 보현사를 찾게 되었다.

대웅전 참배를 마치고 나오는데 원주실 보살이 “광덕(光德) 큰스님께서 조금 전에 들어오셨다.”는 말에 큰스님 처소로 인사차 발길을 옮겼다. 당시 큰스님의 시봉을 들고 있던 혜하 거사의 안내로 친견삼배하고 큰스님 모습을 가까이에서 뵙게 되었다. 깨끗하시고 단아하시며 맑고 빛이 나는 참수행자의 거룩한 모습에 감동했다.

광덕 스님께서는 “사람은 자기 값을, 자신의 진면목을 자각하고 그 생명의 고귀함을 바로 보고 바로 쓰는 책임 있는 존재가 되어야 합니다. 이것은 부처님의 교훈을 배우고 받들어 행하는 불자의 의무입니다. 거사님과 보살님도 부처님의 자비공덕으로 건강하고 환한 모습으로 살고 있으니 앞으로 더욱 정진해서 긍정적이고 보람 있는 삶을 누리는 것이 부처님 은혜에 보답하는 길이 아니겠습니까.”라는 요지의 법문을 주셨다. 아울러 여러 가지 자상한 일상사의 대화로 친견 인연의 소중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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