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측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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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측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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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7.09.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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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승법석1

원측(圓測) 법사삶과 죽음의 반복에서 벗어나는 길

김충현 옮김. 원측법사는 타고난 천재성에 끝없는 열정으로 독창적인 교학을 확립, 삼국 초기의 승랑(僧朗), 원광(圓光) 등에서 시작된 한국 불교학의 벽두에서 중원을 평정하고, 국제적으로 활약한 위대한 천재학승이었다. 그의 『해심밀경소』는 중국, 일본 등 동아시아를 통털어 현재까지도 가장 탁월한 유식학 연구서로 평가받을 만큼 그의 학문적 성과는 대단하다.

신라 진평왕 34년(612년) 왕손으로 경주 모량리에서 출생한 그의 천재적 면모는 3세에 스스로 출가했다는 데서 나타난다. 15세에 당(唐)으로 유학, 17년 뒤 현장 법사가 인도에서 새로운 유식학을 들여 오기 전까지 『섭대승론(攝大乘論)』 등의 구유식학(舊唯識學)을 섭렵했다. 그의 천재성은 유학 시절에도 유감없이 발휘되었는데, 티벳어 등 6개 국어에 능통하였으며, 현장 법사가 번역한 『반야심경』의 잘못된 점을 지적할 정도로 탁월했다. 현장 법사는 중국 불교학이 신라인에 의해 주도될 것을 염려하여 중국계 제자였던 규기(窺基) 대사에게만 인도 논사들의 저서를 강의해 주었다. 그러나 그는 규기 대사를 앞질러 빼어난 주석서와 논소들을 잇달아 발표했다고 전한다. 그는 중국에서 세수 84세로 입적할 때까지 당시 실권자였던 측천무후의 지원을 받아 현장 법사 이후의 중국 역경을 관할했으며 인도의 뛰어난 스님들이 중국에 올 때마다 그들을 맞이하는 등 혈혈단신 중국에 건너간 해동의 불교학자가 중국 불교계의 대표에까지 올랐던 것이다.

해심밀경(解深密經) 원문1):

부처님께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절대 평등(不二)의 진리를 설하시니

이는 매우 심오하여 어리석은 범부들이 실천하기 어렵다.

어리석은 범부들은 무명의 어두운 마음에 미혹되어

이의(二依;현상과 공)에 집착하므로 진리에 어긋나는

부질없는 말을 하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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