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 어떻게 믿고 행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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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 어떻게 믿고 행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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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7.09.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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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광 300호 발행기념 특별좌담/좌담자 - 정련 스님/조계종 포교원장·정덕 스님/자비의 전화 회장, 실버타운 성라원 원장·이남덕/이화여대 명예교수·김현준/불교신행연구원장

사회자 공사다망하신데도 이렇게 함께해주셔서 대단히 고맙습니다. 저희 불광은 1974년 창간 이후로 300호에 이르는 오늘까지 불법의 대중화, 생활화에 기여하고자 노력해왔습니다.

특히 신행생활의 올바른 길잡이가 되고자 나름대로 애써왔는데 오늘 이 자리를 빌어 ‘불교 어떻게 믿고 행할 것인가?’ 다소 원론적인 주제를 가지고 여러 분의 말씀을 듣고자 합니다.

미래학자들은 불교가 인류를 구원할 수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불자들이 제대로 믿고 실천하지 않는다면 공염불이 될 수도 있고, 달리 생각하면 불자들의 올바른 신행생활이 인류의 미래를 밝힐 수 있다는 말도 됩니다.

다 아시겠지만 오늘 이 자리에 참석해주신 포교원장 스님을 위시해서 정덕 스님, 이남덕 교수님, 김현준 원장님은 그 누구보다도 큰 원력을 가지고 살아오셨습니다. 그저 살아오시면서 느끼셨던 것만 말씀해주셔도 불자들에게 신행생활의 모범답안을 보여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먼저 포교원장스님께서 한말씀 해주시지요.

정련 스님 월간 불광 통권 300호 발행을 축하드립니다.

광덕 스님의 원력으로 탄생한 월간 불광은 교계의 대표적인 신행지로 그 동안 많은 일을 해온 것으로 압니다. 앞으로도 부처님의 법을 널리 전하고 세상을 맑히는 데 더욱 정진해주시길 당부드립니다.

올바른 신행생활은 지혜로운 삶, 즉 하나를 알면 하나를 실천하는 삶입니다. 우리가 기도하고 수행하고 포교하는 궁극의 목적이 바로 보살행의 실천에 있다고 봅니다.

그런데 불자들 중에는 그저 남편 성공, 아들 딸 학업성취 등을 위해서 빌기만 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처음에는 부처님께 복달라고 빌기만 했던 불자라도 귀에 딱지가 앉도록 강조하면 점차 달라집니다.

오래 전부터 붙은 습이 어디 하루 아침에 떨어지겠습니까마는 불광같은 잡지에서 자비보살행을 강조하면서 좋은 법문과 함께 실천하는 사람들의 아름다운 이야기를 꾸준히 내보내다보면 결실을 맺으리라 봅니다.

그런데 내가 해보니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말로는 안 되요. 몸소 솔선수범을 해야지요. 지도자들부터 소리없이 좋은 일을 하다보면 대중들이 따라오기 마련입니다. 불자들은 대부분 심성이 착하고, 기본적으로 콩 심은 데 콩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는 인과의 법칙을 체득하고 있기 때문에 잘 이끌어주기만 하면 됩니다. 몰라서 실천 못하는 것이지 알고도 안 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정덕 스님 원장스님 말씀에 깊이 공감합니다. 저도 저희 가족들(자비의 전화 상담원들과 내담자, 인과선원 신도들, 실버타운 성라원 할머니들 등)과 부모형제간처럼 마음을 활짝 열어놓고 살고 있습니다. 제가 하고 있는 모든 일들이 다 부처님 같은 그분들의 협조로 이루어지고 있는데 처음부터 그렇지는 않았어요.

법회 때마다 “복 받고 싶거든 부처님께 복을 빌지 말고 복을 지으세요. 갈증난 사람에게 물 한 바가지 건네주고, 굶주리는 사람에게 밥 한 끼 사주고, 생활 속의 갖가지 문제로 고민하는 분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좋은 약을 처방해주는 것이 부처님께서 더 좋아하시는 일입니다.

내가 했다는 상(相)을 내지 않고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음덕을 쌓아야 합니다. 남이 알아주지 않아도 다 우주 공간에 그 복이 쌓이는 것입니다. 잔뜩 움켜쥐지 말고 육신이든 마음이든 돈이든 살아 생전 멋지게 쓰다 가십시오.”라고 누누이 이야기도 하고 실제 생활 속에 배게끔 행동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절에 동냥 오는 분들이 많은데 저는 그분들을 도인을 뵙는 마음으로 먼저 뛰어나가 맞이합니다. 혹여 신도들 중에 먼저 나가 “멀쩡한 사람이 무에 할 짓이 없어 동냥짓을 해”하면서 구업 짓고 성내는 업을 지을까 두려워서지요.

저는 마음을 맑히고 착한 마음으로 착하게 살아가는 것을 신행생활의 첫손으로 꼽고 있습니다.

오늘날까지 살면서 화낸 적이 별로 없는데 상대가 화를 내면 ‘왜 저이가 화를 내나? 그 원인이 무엇인가?’하고 들어주다보면 상대방이 저절로 화가 풀어져서 잘못했다고 용서를 빕니다.

그러한 일을 직접 경험하였기에 우리 자비의 전화 상담원들에게도 일단 내담자가 마음문을 열어놓을 수 있도록 부드러운 마음으로 잘 들어주라고 합니다. 상대가 원하는 대로 친구도 되주었다가 딸도 되주었다가 엄마도 되주었다가 그 사람의 눈높이에 맞추어 얘기를 성심성의껏 들어주다보면 상대가 스스로 고통에서 벗어날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남덕 교수 오늘 훌륭하신 두 분 스님을 뵙고 종교의 본질은 실천이구나 하는 것을 깨닫고 보니 부끄럽기 그지없습니다. 저는 일개인의 신행문제로 힘겨워하는데 스님들께서는 실로 중생과 더불어 사시는 것을 실감하겠습니다.

저는 따지는 것(국어학 연구)을 업으로 삼다 보니 사람이 이론적인지라 철이 들기 전에는 여성불자들에게 기복한다고 탓하기도 했는데 이제는 그게 얼마나 훌륭한 종교적 심성인지를 압니다.

제가 아는 한 보살님은 교리는 잘 모르는데 신심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지극합니다. 그분이 기도하는 모습 에서 인간미의 극치를 본 적도 있습니다. 그분의 기도에는 자기가 없습니다. 아들을 위하고 남편을 위하는 마음뿐이지 자기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대승불교권에서도 유일하게 우리 한국의 여성불자만이 보살이라는 칭호를 받는다고 생각합니다. 기복이 보살행으로 승화될 수 있는 것은 태생부터 보살인 우리 한국 여성들의 심성 덕분이 아닌가 합니다.

정련 스님 누구든지 행복하게 살기를 원하기 때문에 복을 바라는 마음(祈福)을 탓할 수는 없지요. 하지만 진정한 불자라면 가족을 위하는 그 마음에서 나아가 이웃과 국가, 인류를 위하는 마음으로 발전해야 합니다.

불교의 근본정신이 무엇입니까? 바로 지혜요, 자비입니다.

부처님께서 깨달으신 우주 만물의 이치가 바로 연기법입니다. 이 세상 만물이 서로서로 의지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으신 것입니다. 내 몸의 눈, 코, 입, 손가락, 발가락이 저 멀리 떨어져 있지만 실로는 한몸이듯이 이 세상 만물 너와 내가 다 그처럼 서로 연관지어진 한몸이니 어찌 자비심이 일지 않겠습니까?

이러한 연기법의 의미를 철저하게 깨닫고 사회적 차원으로 확장시키는 것이 그 무엇보다 필요하다고 봅니다.

불자들이 사회의식을 발전시키고 사부대중이 힘을 합쳐 봉사활동을 조직하고 다른 이를 돕는 한편 사회의 공동선, 정의를 추구하는 데 앞장서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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