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스님이 환속을 했다. 환속을 하자 곧 결혼을 했는데 상대는 상당히 재력이 있는 집 규수였다.
이 규수가 스님을 어찌나 찾아 다녔는지, 도통을 못할 바에야 환속해서 이 여자 한 사람 구제하자 하고 환속해서 결혼을 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결혼을 하고 보니 마땅한 직장이 없어 처가에서 충무로에 번듯한 상점을 차려 주었다.
청담 스님은 장가를 잘 들었다고 해서 “환속을 하려거든 아무개와 같이 하라”고 말할 정도였다. 그래서 젊은 스님들 중에는 우정 상점을 찾아 가는 이들이 있었다. 그러나 상점은 아내가 있을 뿐, 환속한 스님은 없었다. 점원에게 사장님 좀 보자 하면 여주인을 가리켰다. 여주인에게 물으면 마뜩치 않아 했다. 찾아간 스님들 가운데 환속한 스님을 상점에서 본 이가 없었다. 때문에 스님들 사이에서 환속한 스님이 스님들을 피한다는 말이 오고 갔다.
그런데 어느 날, 광덕 스님이 나에게 돌아오는 일요일 집에 있을 것이면 집으로 오시겠다 해서 그러자 했는데 함께 온 사람이 바로 그 환속한 스님이었다. 나는 두 사람이 함께 온 것이 뜻밖이어서 어리둥절할 뿐이었다. 내 아내가 내온 다과상을 받은 광덕 스님이 “이 두 사람에게는 다과보다 술상을 차려 주시지요.”해서, 이번에는 내 아내가 어리둥절하였다.
나는 통상 점심을 먹을 때 반주를 하므로 점심 때라면 모를까 점심 때가 멀었는데 아침부터 술상을 차리라는 스님의 뜻을 헤아릴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러는 내 아내에게 스님은 “오늘, 이 두 사람이 술을 마셔야 할 일이 있습니다. 보살님도 동석하세요.”하니 아내는 더욱 영문을 몰라 하면서도 술상을 차려 왔다.
나와 손이 마주앉아 술잔을 두어 잔 주고 받았을 때, 광덕 스님이 운을 떼었다. “두 사람 처지가 비슷해서 내가 가자고 해서 왔소. 어디 두 사람이서 이야기를 해 보시오.”
처지가 비슷하다는 말은 나를 또 의아스럽게 하였다. 그러나 이야기를 들어 보니 우리 두 사람은 두 가지 점이 똑 같았다. 환속한 점이 같고 아내가 기독교 집안의 딸이라는 점이 같았다. 나는 그제서야 ‘아하!’하면서 짚이는 것이 있었다. 그러니 속환이(俗還-) 주인과 속환이 손〔客〕이 마주앉아 동병상련의 술잔을 기울이고 있는 셈이었다.
월간불광 과월호는 로그인 후 전체(2021년 이후 특집기사 제외)열람 하실 수 있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