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전의 세계] 68.정토의 수행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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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전의 세계] 68.정토의 수행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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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7.09.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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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전의 세계(68)/ 정토경의 세계

 염불삼매 (念佛三昧)

 정토교에 있어서 수행과 신앙을 분류하기는 애매모호한 점이 없지 않다. 특히 정토교는 다른 어떤 교학이나 수행보다도 쉽고 간편한 것을 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토교를 이행도(易行道)라고 하며, 다른 교학을 난행도(難行道) 라고 하는 것도 이와 같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정토교는 믿음이 그대로 수행일 수 있으며, 또한 믿음이 그대로 왕생일 수도 있다. 진실한 믿음은 환희의 마음으로 가득차며 이 환희심에서 자신도 모르게 감사의 마음이 용솟음 친다. 이럴때 깊은 마음 속에서 감사의 마음으로 ' 나무아미타불' 이 우러난다. 이러한 염불이야말로 진실된 염불이며 감사의 염불이다.

 이 삼심 (三心) 이 합하였을 때 일심불란(一心不亂) 하게 염불이 된다. 이와같이 염불은 곧 신심의 표현이며 이 염불이 바로 왕생의 첩경이 된다. 그러기 때문에 정토교에서는 정토신앙과 정토수행을 구분짓기 어렵다. 그러나 구태여 구분하여 논한다면 정토수행은 다분히 자력적이고 관념적인 면만이 농후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정토신앙을 수행화한 사람으로는 염불결사 (念佛結社) 의 창시자라고 할 수 있는 여산 (廬山), 혜원(慧遠 ; 334 ~ 416 ) 스님이 그 첫번째로 꼽히고 있다.

 혜원스님은 일찍 도안 (道安 ) 스님의 문하에서 출가하여 ' 반야경 (般若經) 의 강의를 듣고 깨달은 바가 있었다. 그뒤 도안의 문하를 떠나 48세 때는 제자 10여 명과 더불어 여산에 들어갔다. 그는 여산에서 많은 경전을 번역 하였으며, 그로인하여 그의 명성은 널리 알려졌다. 그뒤 69세 되던 때에 유 유민 (劉遺民) 을 위시한 승속 123인과 더불어 여산의 동림사 (東林寺) 의 반야대에서 아미타상을 모시고 서방업 (西方業) 을 닦기 위하여 서원을 세우고 염불삼매를 닦았다. 이것을 가지고 소위 여산의 백련사 (白蓮社) 라고 한다. 이때 유 유민이 서문 (誓文) 을 짓고 결사에 동참한 결중 (結衆) 이 시 (詩) 를 지어서 모은 것을 ' 염불삼매시집 (念佛三昧詩集) 이라고 이름하였으며 혜원이 직접 서문을 쓰기도 하였다.

 혜원은 여산에 들어가 결사를 하는 동안 30여 년을 산에서 나오지 않으면서 염불삼매와 저술에 전념하였다고 한다. 이것이 염불결사의 최초로 볼 수 있다. 혜원의 결사에 있어서 중심된 사상이 된 것은 '정토삼부경' 이 아니라 ' 반주삼매경 (般舟三昧經) ' 의 사상이 아닌가 한다. 혜원이 결사를 시작하던 해인 천흥 원년 (天興元年) (402) 은 구마라습이 장안에 와서 처음으로 ' 아미타경(阿彌陀經) ' 1권을 번역해 낸 해이기도 하다. 이때까진 아직도 ' 관무량수경(觀無量壽經) ' 은 번역되지 않았다.

 그런데 혜원은 도안의 문하에서 반야경을 배우고 그곳에서 깨달음을 터득했다. 그러기 때문에 혜원이 아미타불 신앙에 귀의했다고 함은 ' 아미타경 ' 에서 말하는 것과 같이 단지 불명을 칭하는 실천이 아니고, 오직 마음을 서방아미타불에 전념함에 의하여 선정(禪定) 에 들고 정(定) 중에서 견불(見佛) 하며, 사후에는 정토에 왕생하고자 함에 더 관심이 있었을 것이다. 이와같은 사상은 ' 반주삼매경 '에서 강조하고 있는 사상이며, 혜원의 염불결사의 중심사상은 여기에 기반을 두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혜원의 관심사는 무엇보다도 염불삼매와 정중견불(定中見佛) 에 있음을 그가 구마라습과의 문답이나 ' 염불삼매시집 서' 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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