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체가 마음에서 일어나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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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체가 마음에서 일어나는 것을
  • 관리자
  • 승인 2007.09.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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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운명

선한 업을 지으면 좋은 과보를 받고, 악한 행을 한 자는 나쁜 과보를 받는 것은 당연한 이치입니다. 하나의 행위가 원인이 되어 그에 따른 결과를 가져온다는 것은 필연적인 이치 입니다. 본래 운명이란 전생에 지은 행위의 과보입니다, 정해진 운명이란 따로 없는 것입니다. 대개 행위의 결과는 같은 생에 받기도 하고 다음 생에 받기도 하고 그 다음 생에 받기도 합니다. 그러나 전생이나 금생에 지은 행위의 과보도 참회 염불수행을 통하여 과보가 변경되는 것입니다. 마음을 맑고 바른 방향으로 바꾸었을 때 마음에 나타나는 환경이 또한 바뀌게 됩니다. 이것은 과거인에 대한 결과를 수정한 것이 됩니다. 우리는 모름지기 항상 부처님의 본성공덕을 생각하여 자비와 보시를 행하고 착하고 너그러운 마음을 가지며 본래 청정한 자성을 깨닫는 데 힘써야 하겠습니다.

경칩 이 지나고 고로쇠나무의 수난이 시작됐습니다. 위장병, 신경통, 관절염 등 몸에 두루두루 좋다하여 너도 나도 즙을 뽑아 마십니다. 하지만 맨살에 드릴을 꽂아 뽑아내는 수액. 아니 울컥울컥 토해내는 피눈물이 약이 될는지 독이 될는지도 모르는 채 중생은 남의 말 끝에 매달러 정신없이 살아 가고 있습니다. 자신의 마음을 잃고 말입니다.

IMF한파에 경기불황이라고 세상은 야단입니다. 어차피 지구의 자원은 한계가 있게 마련입니다. 더구나 이땅의 부존자원은 부족해 수입에 의존할 수 밖에 없습니다. 흥청망청 낭비 할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아나바다', 즉 아끼고 나눠쓰고 바꿔쓰고 다시 쓰는 것이 어차피 정상적입니다. 비정상이 아닙니다. 지금까지 샴페인을 터트리며 과소비를 했던 것이 빚에 의한 비정상적 생활이었던 것입니다.

어디 그 뿐입니까. 반 만년의 인간미 넘치는 우리 문화를 송두리째 팽게치고 서구의 기계문명을 모방만 했으니 국가 경쟁력이 있겠습니까. 오늘의 현실은 주체성 없는 기업가와 소비자 그리고 주인의식을 갖지 못한 우리 모두의 책임인 것입니다. 누구를 탓하겠습니까.

원인없는 결과는 없습니다. 그것이 부처님의 가르침인 인과율(因果律)입니다. 원인을 찾아야 합니다. 그리고 인연설을 깨우쳐야 합니다. 외제 상품 하나가 내 부모, 내 남편, 내 자식의 명예퇴직이나 조기퇴직의 원인이 된 것인 줄도 모르고 무분별하게 수입해 썼던 것입니다.

인과율과 인연설에 대한 깨우침이 있어야 합니다. 자신의 불행도 마찬가지입니다. 운명이 아닙니다. 결코 운명이 아닙니다. 원인이 있습니다. 그런데도 사주팔자에 매달리고 부적에 매달리고 관상에 매달리고 부적에 매달리고 관상에 매달려 한숨을 푹푹 쉬는 사람들을 보게 됩니다. 산소에 매달리고 풍수에 끄달리다 결국은 눈물을 흘리며 조상탓과 운명탓으로 돌리는 사람들을 보게 됩니다. 불교 신자들도 스님들이 운명이나 풍수를 보아주는 사람들로 착각하여 매달리기도 합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이 무엇입니까 . 업의 끄달림을 훌쩍 뛰어넘어 열반을 얻는 것 아닙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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