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라이 라마 망명수기 <18> 망명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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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라이 라마 망명수기 <18> 망명생활
  • 달라이 라마
  • 승인 2007.09.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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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벳 불교 총수이며 국가원수인 비구 달라이 라마의 망명 수기 : 내 나라, 내 겨레

제12장 망명생활

슬픈 남행은 계속됐다. 나는 젊고 튼튼했으나 나이 많은 사람들은 여독이 쌓이고 갈 길은 아득하기만 했다. 유격대를 만나면, 권장하는 뜻은 아니지만 나라의 자유를 위하여 싸우는 그들은 존경했다.  개인적으로는 나를 보호하기 위하여 베푼 용맹에 감사했다. 반동이라 부른데 오해하지 말고 라사에서 중공에게 얼마나 협박을 당했는지 설명했다. 말을 하다보니 폭력을 쓰지 말라는 뜻과 어긋났다. 그들은 중공과 싸우느라 가정을 망치고 평안과 행복을 떠났다.

이제 그들에겐 돌아올 전투뿐 내가 선물할 것은 없어졌다. 라사의 소식은 중공군이 유격대 보루(堡壘)를 공격할 작전이니 나는 두고, 빨리 가서 방어만 하라고 부탁했다. 일주일 동안 산으로 행진했다. 낮은 지대는 눈이 녹아 질고 미끄러웠고 높은 지대는 1만 9천 피트 이상의 얼음 천지였다. 산으로 다니며 장사하던 사람도 아닌 라사 사람들에게는 난관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말에서 내려 사람이 말을 뜨는 길도 흔했다. 그런데 정상은 놀랍게도 펑퍼짐했고 박빙의 호수가 있었고 소도 어정거렸다.

오르는데 만 11시간, 얼마나 험한 곳이면 차라리 짐승이 되어 돌 있는 곳에 살겠다고 했을까. 온통 폭풍, 질풍 모래뿐이었다. 주민이 4,5백 명 사는 곳이라 일행은 외양간에도 수용됐다. 이 무렵, 온 세상이 우리 이야기로 신문에 대서특필중인지는 몰랐다. 그렇다고 외부와 연락할 수 있는 길도 전무했다. 중공이 우리 정부를 없앴다는 소식도 있었다.

그들이 우리 정부를 없앨 근거는 없었지만 그들 스스로 우리와의 약속을 위배했으니 내가 그들의 결과를 묵인했다고 믿으면 큰일이었다. 오전 5시부터 열 시간 눈길을 돌진했다. 천신만고 끝에 임시 정부를 구성했다.이곳은 바위의 요새라 작은 포탈라궁(宮)과 비슷했다.

절에서 종교의식으로 우리를 환영했다. 연도에는 주민들이 향불을 들고서 있었다. 우리는 절에서 예불하고 임시 정부 수립 행사를 거행했다. 나는 전국에 보내는 정부수립 선언문에 날인했다. 세 시간 걸리는 큰 잔치였다. 눈앞의 고난은 먼 훗날의 희망으로 잊었다. 여기서 판첸에게 편지와 선물을 보냈다. 사실은 나의 공부가 끝나기 한 달 전에 보냈어야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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