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지식 탐방] 순천 조계산 송광사 화엄전 법흥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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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지식 탐방] 순천 조계산 송광사 화엄전 법흥 스님
  • 관리자
  • 승인 2007.09.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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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진 그릇에는 물을 부어도 차지 않습니다."

승보종찰 송광사 가는 길엔 텅빈 자유가 있었다. 무척이나 평온하고 여법한 분위기의 송광사 큰절 오른쪽에 난 작은 계류를 지나 돌계단을 오르면 법흥 스님께서 주석하고 계신 화엄전이 있다. 화엄전은 송광사의 여늬 돌담처럼 눈부시게 아름다운 돌담이 먼저 눈길을 끈다. 돌과 기와조각과 황토흙으로 빚어낸 돌담, 담장 하나에도 지극한 정성을 보인 그 모습 하나만으로도 그 주인의 향기를 느낄 수 있었다.

화엄전 법흥 스님의 처소에는 방우산방(放牛山房)이라는 편액이 달려 있었고, 주련(柱聯)에는 「선요」에 나오는 구절이 담겨 있었다. 마치 스님의 살림살이를 훔쳐보듯 무슨 뜻인가 한참을 실랑이하다 결국 풀지 못하고 의문보따리를 스님께 풀어 놓았다.

스님, 얼핏 목우산방인 줄 알았는데 방우산방도 매우 생소하고, 주련의 내용도 도대체 무슨 소리인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방우(放牛)라 함은 풀어 놓은 소를 의미합니다. 곧 해탈한 소, 자유로운 소를 일컫는 말이지요. 원래 내 대학시절은 은사이시던 조지훈 선생께서 말년에 보낸 오대산 토굴의 당호를 방우산장이라 하였는데 그 뜻이 좋아서 산장을 산방이라고 바꾸어 걸었지요.

또 주련은 고봉 선사의 선요에 나오는 것인데, '바다 밑 진흙소가 달을 머금고 달아나니(海底泥牛 月走) 바위 앞에 돌호랑이가 아이를 안고 졸고 있다(巖前石虎抱兒眠) 철뱀이 금강신장의 눈에 끼어드니(鐵蛇鑽入金剛면眼) 곤륜산이 코끼리를 타고 백로가 이끈다(崑崙騎象白驚牽)'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유가식으로 해석해서는 안 됩니다. 글자 풀이로는 진정한 의미를 알 수 없지요. 선문(禪門)의 격외도리를 나타낸 것인데, 설탕이 달고 소금이 짠 것은 맛본 사람만이 알 수 있듯이 스스로 공부하고 깨쳐야 알 수 있는 도리인 것입니다. 백날 파고들어도 수행하지 않고서는 그 이치를 통할 수 없습니다. 경전 보고 암기해서 되는 일도 아니고 문자를 공부해서 되는 일도 아니라는 말입니다."

그렇게 알쏭달쏭하고, 수행하지 않고서는 그 경지를 알 수 없다고 하기 때문에 불교를 어렵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스님, 불교의 대의(大意)가 무엇입니까?

"허허, 그렇게 물으니 출가하기 전의 내 모습이 생각나는군요. 국문학을 전공하면서도 학과공부보다는 불법에 매료되어 학창시절 내내 불교서적을 끼고 살았지요. 그런데 어느날 김동화 박사님이 쓰신 불교학개론을 읽는데 그와 같은 대목이 나왔습니다.

'부처님 법의 대의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봄날 닭 우는 것'이라고 답하더니 재차 질문을 해도 '중추에 개 짖는 것'이라고 하는 겁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무슨 소리인지 몰라서 권상로 선생한테 가서 자꾸 물어도 웃으시기만 할 뿐 답을 안 해주셨지요. 그 후로 그게 화두가 되었고, 출가하게 된 결정적인 인연이 된 셈이지요.

불교는 깨달음의 종교입니다. 진리를 깨달음으로써 부처님과 같은 각자(覺者)가 되어 인간고를 해탈하고, 세상 모든 사람들을 구원하는 것입니다. 유일신을 설정해놓고 그 유일신에 의지해서, 한마디로 바깥의 객관세계에 있다고 믿는 유일신에게 구원받고자 하는 것과는 달리 불교는 스스로 깨달음에 이르는 종교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사람사람마다 부처가 될 수 있는 지혜덕상을 가지고 있고, 모두가 부처님처럼 깨달을 수 있다고 설파하셨습니다. 스스로 발심하여 수행정진하면 인간 그대로의 몸으로 우주 만법의 진리를 깨달아 부처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마음바깥에 부처님이 있다고 생각하면 불교교리에 전적으로 위배되는 것입니다. 자기 안에 부처가 될 수 있는 절대무한한 성품자리, 능력이 있음을 확실하게 믿고 정진해서 생사해탈하는 게 불자의 본모습입니다. 극락과 지옥이 따로 있고, 부처와 중생이 따로있는 게 아닙니다. 마음을 깨달으면 부처요, 깨닫지 못하면 중생이고, 마음을 깨달으면 이 땅이 그대로 극락이요, 불국토입니다."

불자들 가운데 수행을 고달프다고 지레 짐작하고, 수행을 한다 해서 성취할 수 있을지에 대한 확신이 없기 때문에 아예 수행할 엄두조차 내지 못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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