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반야봉 아래 숨은 암자인 묘향대에는 개운(開雲)조사와 관련된 전설이 내려온다. 조선 후기 스님으로 깨침을 얻은 후, 51세에 지리산으로 들어가 묘향대에서 수행했다 한다. 묘향대를 떠난 후 금강굴에서 250년을 수행했다는 이야기, 심지어 아직도 살아 있다고 회자된다. 도인의 면모를 가진 스님이다.
“10여 년 전 97세의 노장 스님이 오셨죠. 개운조사의 7대 법손이라면서 오늘 밤 이곳에서 개운조사를 만나기로 약속했다고 해요.”
묘향대에서 수행하고 있는 호림 스님은 그 전설이 아직 이어지고 있다 한다. 10여 명의 신도와 함께온 노장 스님은 101세에 입적했다고. 묘향대를 떠난 개운조사가 수행했다는 금강굴 역시 아직 ‘선망의 장소’로 기억되고 있다.
불타버린 묘향대
지리산의 대가람마저 불타버린 한국전쟁 당시 묘향대, 우번암 등 지리산의 수행처도 불타버렸다. 묘향대에서 수행하던 스님이 산길을 잠시 나갔다 오니, 흔적 없이 사라졌다 한다. 토벌대가 빨치산의 근거를 없앤다고 한 일이다. 묘향대 바로 밑에 빨치산 비밀 아지트가 남아 있으니, 이곳 역시 전쟁의 흔적이 남았다.
전쟁이 끝난 후 누가 처음 올라왔는지 모르지만, 묘향대에는 세 칸 움막이 다시 지어지고 다시 수행자들의 터전이 됐다.
“수월 스님, 활안 스님이 젊었을 때 계셨다고 해요. 법정 스님도 다녀가셨다고 하더라고요.”
기록에 의하면 금오 스님, 서암 스님도 이곳에서 수행했다. 지리산의 바람만이 이곳을 거쳐 간 수행자들을 기억하고 있는 듯하다.
“일어나서 논에 나가보면 뿌리를 잘 내리는 놈도 있지만, 땅에 박히지 못해 둥둥 뜨는 모가 생기기 마련이다. 다 같은 논 안에서도 잘 자라는 놈도 있고 비실비실 쓰러지는 놈도 있다.”
“오늘 용맹정진 한 번 하면 온 마음이 극락세계 같지만, 또 다른 경계에 부딪히면 바로 무명지옥으로 떨어지는 것이 인생사다. 모름지기 수행자라면 오늘도 정진하고 내일도 정진해야 한다.”
- 묘향대 정진 중 도광 스님이 제자들에게 한 당부
1971년 화엄사 주지로 있던 도광 스님은 묘향대를 복원하고자 했다. 그해 8월 1일 ‘묘향대 중건 취지문’을 작성하고, 불사를 위해 「반야봉묘향대 연기문(般若鋒妙香臺 緣起文)」을 작성했다.
“반야봉에는 묘향대(妙香臺)와 금강굴(金剛窟)의 두승지(勝地)가 있는 바 이는 모두 문수대성을 상징한 이름이다. 묘향대는 화엄사 창건주이신 연기조사가 개기(開基)하셨으며 신라 말엽 도선국사께서 주석하시면서 기상(基上)의 천연동굴인 금강굴을 발견하시고 두 곳에 왕래하시며 정진하셨다.
이렇듯 묘향대와 금강굴은 정진납자의 요람지로서 만인의 숭앙(崇仰)을 받아왔고 위에 열거한 큰스님 외에도 서산대사, 청매조사, 자운대사, 벽암선사 등 대도인(大道人)들이 주석하신 성도장(聖道場)인 것이다.”
- 「반야봉묘향대 연기문」 중에서
묘향대 복원은 도광 스님의 제자인 종안 스님의 바람이기도 했다. 종안 스님은 태안사에 모셔져 있던 ‘목조 관세음보살’을 모시고 지리산에 올랐다. 또 다른 제자 평전 스님 역시 묘향대를 올랐다. 수행자들이 한겨울이면 지리산 자락에 서식하고 있던 곰을 마주치기도 했던 시절이다.
당시 화엄사로 출가한 행자들의 중요 일과 중 하나는 묘향대까지 식자재를 옮기는 일이었다.
“제가 스무 살 되기도 전이었어요. 쌀 반 가마를 메고 화엄사에서 이곳까지 왔어요.”
묘향대 복원을 추진하고, 그곳에서 정진하고자 했던 도광 스님은 1978년이 돼서야 뜻을 이룰 수 있었다. 스님은 화엄사 주지를 마치고 해인사에서 또 소임을 살아야 했다. 해인사 주지 소임을 마치고는 모든 것을 회향한 뒤 묘향대로 올랐다.
“시절 인연이 어쩔 수 없어 본분사를 잊고 본의 아니게 많은 소임을 맡을 수밖에 없었던 게 수행자로서 늘 마음에 짐이 되었다”는 스님은 묘향대에 올라 3년을 수행했다.
그 후에도 많은 스님이 다녀갔다. 홀로 있기도 하고 3~4명의 운수납자가 함께 용맹정진하기도 했다. 호림 스님은 2004년부터 지금까지 묘향대를 지키고 있다.
묘향대 가는 길
성삼재에서 이른 걸음으로 묘향대에 도착하니 꼬박 4시간 걸렸다. 반야봉을 휘감아 도는 길에 숨이 헐떡거렸다. 반야봉을 돌아서면 나오거니 했는데, 묘향대는 한참 후에나 흔적을 드러냈다. 급한 마음에 몸이 고생했다.
“스님, 여기 계시면 반야봉의 정기가 느껴지나요?”
“나는 잘 모르겠는데, 그런 걸 느끼는 사람이 있나 봅니다. 그러니 여기를 찾겠지요.”
“곰은 보셨어요?”
“몇 해 전 겨울에 곰 궁둥이만 한 번 봤어요.”
시답잖은 물음에 정성껏 대답해주는 스님을 뒤로하고 문수대(노고단 아래), 우번암(종석대 아래)을 찾아 길을 재촉하기로 했다. 반야봉을 꼭 들르라는 말씀에 봉우리를 오르다 체력을 소진하고 말았다.
묘향대, 문수대, 우번암을 당일치기로 찾는 것은 지리산이 허락하지 않았다. 묘향대를 떠날 때 스님이 마지막으로 해준 말이 그 뜻임은 산에서 내려오면서 알았다.
“여유가 없으면 길이 안 보입니다. 목적보다는 즐기면서 가야 해요.”
사진. 유동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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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향대 가는 길은 탐방로가 아니어서 산길이 위험합니다. 국립공원공단의 허가를 받아 취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