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로서의 삶, 그 인욕의 나날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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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로서의 삶, 그 인욕의 나날들
  • 관리자
  • 승인 2007.09.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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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인욕

나는 돌아가신 친정어머니같이 잘 참으시는 분을 본 적 없다. 그분은 칠십 삼 년 동안 참는 일을 끝없이 해 내셨다. 어머니께서는 늘상 이런 말씀을 하셨다. "말은 한번 뱉으면 물을 쏟 아놓은 것같이 다시 주워 담을 수 없다. 무슨 말을 하려면 하기 전에 꼭 이 말을 지금 해야 하나를 생각해라. 만일 적절한 때가 아니거나 해봐야 별 효과가 없을 것 같으면 차라리 안 하는 것이 더 낫다."

그래서 어머니는 과묵하셨고 또 참된 말씀만 하셨으며 여간해서는 어머니의 음성이 담 너 머까지 들린 적이 없었다.

아버지에게는 여자형제가 셋이 있었는데 모두 성질이 급하고 사나웠다. 느지막이 할머니 께서 중증에 걸리셨고 아버지께서 모시고 사셨다. 시누이 셋이 오가며 트집잡고 부부사이를 이간질하고 아버지의 역정을 돋우며 여러 가지로 어머니의 괴로움을 가중시켰다.

'방이 차다, 반찬이 짜다…. 이런 저런 일들을 아버지 귀에 속닥대면 귀가 엷으신 아버지 는 즉석에서 노발대발하시곤 했다. 나이 어린 내가 봐도 엉성하기 이를 데 없는 모함이 아 니면 일방적인 오해임에도 불구하고 어머니는 구태여 변명이나 반박을 한 번도 하지 않고 묵묵히 그 상황을 참아내셨다. 어린 내게는 그런 어머니의 처지가 억울해 보이고 어떤 때는 바보같이도 보였다.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 날 없다던가. 6·25, 4·19, 유신정권, 광주사태 등의 사회적 변 화에 따라 일곱 자녀들은 학생운동으로 여러 번 어머니의 가슴을 서늘하게 했다. 그런 가운 데서도 어머니는 며느리를 들이면서 남다른 결심을 하셨다. 시집살이는 어머니 대에서 끝내 고 며느리에겐 안 물려주겠다고.

살림을 따로이 내어주고 틈틈이 들러서 돌봐 주시고 손자를 낳았을 때는 손수 산후 조리 도 해주셨다. 며느리가 뒤늦게 대학원에 다닐 때는 두 손자를 하나는 등에 없고 하나는 놀 아주면서 비록 딸들에게는 그렇듯 살폿한 정을 줄 수 없었으나 며느리만큼은 딸에게도 못한 것을 다 해주려 하셨다. 또 그런 당신의 마음을 며느리가 잘 헤아리리라 믿으셨다. 어머니께 내가 물은 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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