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가사유상] 사유의 방, 그리고 그 뒷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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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가사유상] 사유의 방, 그리고 그 뒷이야기
  • 신소연
  • 승인 2023.05.23 17: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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큐레이터가 본 사유의 방
<사유의 방> 개관 포스터

특별한 경험의 공간, ‘사유의 방’

국립중앙박물관 <사유의 방>은 국보 반가사유상 두 점을 전시하는 공간으로 2021년 11월 12일 개관한 이후 지금까지 관람객 약 100만 명이 다녀갔으며, 이제 명실상부한 박물관의 대표 전시실로 자리 잡았다. <사유의 방>은 전시 공간과 전시품이 하나가 되는 박물관의 새로운 전시 형태의 유행을 가져왔고 인스타그램과 같은 SNS를 적극 활용하는 젊은 세대의 방문이 늘어나는 등 새로운 박물관 전시 관람 문화로 이어졌다. 심지어 새로 출간된 서적과 공간에 ‘사유’라는 말이 여기저기서 사용되는 유행도 가져왔다. 

<사유의 방>에 들어서면 “두루 헤아리며 깊은 생각에 잠기는 시간”이라는 문구와 함께 사유의 여정을 시작하게 된다. 길고 어두운 복도를 들어서면 마음을 내려놓고 천천히 내 안에 깃든 초현실적인 감각을 일깨워 본다. 복도 한쪽에는 프랑스 작가 장 줄리앙 푸스(Jean-Julien Pous)의 얼음, 물, 수증기로 상징화된 물질의 순환에 대한 흑백 영상이 흘러간다. 아무것도 없는 것이 아닌 영원한 것은 없다는 불교의 가르침인가, 덧없는 우리의 삶인가. 

그저 요즘 멍때린다는 말처럼 아무런 생각 없이 바라봐도 좋다. 어둠의 끝에 이르러 빛이 나는 입구로 들어서면 저 멀리 나를 바라보는 반가사유상이 있다. 희미한 미소로 나를 바라보는 두 보살을 향해 나아간다. 현실을 떠나 어두운 복도를 지나 도착한 이곳은 반가사유상이 있는 초현실적인 세계. 천장에는 별빛이 빛나고 반가사유상 위에는 우주 속에 빛나는 지구의 푸른빛이 어른거린다. 방 안의 어느 것 하나 수직인 것도 수평인 것도 없다. 천장도 바닥도 그리고 벽도 모두 기울어 있다. 똑바른 것이 없듯이 무엇하나 고정된 것도 없다. 살짝 기울어진 경사를 걸으려면 저절로 속도가 늦추어지고 멈춘 듯 움직인 듯 기울어진 나의 시선 끝이 하나로 모이지도 않는다. 벽에 바른 숯의 향내와 붉은 흙에 섞인 계피의 은은한 향이 마음을 편안하게 해준다. 그렇게 다가가다 어느 순간 반가사유상을 마주한다.

깨달음을 얻은 부처가 아무런 장신구 없이 미동도 없는 모습이라면 두 반가사유상은 깨달음을 얻을 수 있으나 모든 중생의 구제를 위해 깨달음을 미룬 존재의 모습이다. 여기에서 멈출 듯 움직일 듯도 하고 얼굴에 살짝 올린 손을 내릴 것도 같다. 한쪽 다리를 내려놓거나 반대편 다리를 마저 올려 가부좌를 할 것도 같다. 마치 석가모니 태자가 수행을 이어가다 멈추고 다시 나아가는 듯하다. 그 모습이 어쩌면 인생의 기로에서 고민하고 생각하고 다시 나아가는 우리의 모습과도 같다. 

그래서 방 안에는 끊임없는 움직임이 있다. 심지어 반가사유상 두 분도 정면을 보고 있지 않고 저 멀리 방 안을 들어오는 사람들과의 시선을 맞추기 위해 살짝 틀어 앉으셨다. 화려한 보관을 쓴 왼쪽 반가사유상은 크기가 작아서 오른쪽 반가사유상보다 살짝 더 앞으로 배치되었다. 넓은 타원형의 낮은 대좌도 틀어졌고 공기의 흐름도 순환하는 듯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발걸음을 옮기게 되고 반가사유상 뒤를 돌아 숨겨진 뒷모습을 보게 된다. 이윽고 천천히 걸어 나오면 어느덧 빛의 현실로 돌아와 있다. 

사유의 방을 찾은 많은 사람은 반가사유상의 미소가 가장 감동적이라고 한다. ‘많이 힘들지. 이리 가까이 와보렴. 내가 너의 이야기를 들어줄게’라고 말하는 듯하다. 깨달음의 찰나의 미소, 어머니의 미소, 친구의 미소…. 다들 본인들의 경험으로 미소를 바라본다. 어떤 관람객은 한없이 반가사유상 앞에 서서 천정을 보며 수만 개의 봉이 하늘에서 비가 오다 멈춘 듯하다고도 한다. 마치 시간이 멈춘 것처럼. 무엇보다 사람들이 감동받은 이유는 이렇게 생생하게 반가사유상 두 점을 마주하며 특별한 경험을 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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