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주 화암사, 봄빛 호수길 따라 절을 순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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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주 화암사, 봄빛 호수길 따라 절을 순례하다
  • 노승대
  • 승인 2023.04.29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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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속에 담아둔 절]

닫힌 공간 열린 마음

화암사는 ‘잘 늙은 절’, ‘곱게 늙은 절집’, ‘성채 같은 고찰’이라는 별명이 붙을 만큼 많이 알려졌다. 많이 알려질수록 그만큼 세속의 때가 묻을 수도 있지만 다행스럽게도 화암사는 지금까지 오롯하게 옛 몸가짐을 잘 지키고 있다. 참으로 고마운 일이다. 

화암사 우화루는 문이 있으되 닫힌 문이다. 바깥쪽으로 난 세 개의 창은 종이를 바른 창호가 아니라 나무 널판으로 짠 널문 창호다. 또 여느 절처럼 누각 아래를 통과해 절 마당으로 들어서는 구조도 아니다. 누각 아래는 막돌을 가지런히 쌓은 담으로 막혀 있다. 내방객은 우화루 왼쪽의 돌계단을 올라 문간채에 달린 문으로 진입해야만 절 마당에 들어설 수 있다. 우화루 널문을 닫고 대문을 잠그면 마치 성채처럼 견고해 보인다. 문간채는 세 칸인데 한 칸은 절 문으로 사용하고 두 칸은 각각 작은 방이다. 구조로 보아 기도객이나 고시생들이 묵어가던 곳이다. 아래위쪽이 다 휘어진 목재를 문지방으로 쓴 절 문을 지나면 요사채인 적묵당과 우화루 사이의 좁은 통로가 보인다. 이 통로를 통과하면 바로 절 마당의 한 귀퉁이다. 단청도 입히지 않은 적묵당은 ‘ㄷ’ 자 건물로 마당 쪽으로는 툇마루가 달려 있다. 

툇마루에 가만히 앉아 본다. 마당과 우화루는 마치 평지로 연결된 듯 이어져 있고 홀로 매달린 목어는 예나 지금이나 홀로 눈을 부릅뜨고 정진 중이다. 적묵당은 왼쪽 극락전이나 오른쪽 우화루와 바짝 붙어 있다. 자세히 살펴보면 우화루와 적묵당의 지붕은 서로 이어져 있다. 힘들게 지붕을 분리하느니 아예 두 지붕을 하나로 연결한 것이다. 북쪽으로 뻗은 적묵당의 지붕은 극락전의 풍판을 뚫고 들어갔다. 세 건물이 어깨를 비비듯 ‘ㄷ’ 자 형태로 서 있으니 적묵당의 툇마루는 볕이 잘 들지 않는다. 언제나 어둑하다. 오가는 인기척도 없으니 고요하고 고요해서 마음이 저절로 쉬어진다. 그러니 적묵(寂默)이다. 

적묵당과 마주 보이는 불명암은 적묵당보다 작은 규모다. 만약 불명암이 적묵당과 같은 규모였다면 너무나 닫힌 공간이 되어 답답했을 것이다. 적묵당 툇마루에 앉으면 하늘이 열려 보이는 것도 이 때문이다. 

불명암과 극락전 사이에는 뒤로 조금 떨어져 성달생의 위패를 모신 철영재가 있고 다시 불명암과 우화루 사이에는 멀찍이 떨어진 명부전이 앉아 있다. 이렇게 여섯 채의 건물이 올망졸망 모여 있지만, 닫혔으되 열린 공간이고 열렸으되 닫힌 공간이다. 참으로 절묘한 건축구조다. 

화암사는 시루봉 18연봉에 싸인 800여 평의 암반 대지 위에 올라앉았다. 화암사라는 이름도 절 앞 암반 위에서 자라는 단향목(檀香木)에서 유래한다. 의상대사가 가져와 심었다는 단향목 중에는 특이하게 누런 잎을 가진 3그루가 있었는데 중국에까지 알려져서 황제가 사신을 파견해 황궁의 정원으로 옮겨 심게 하였다 한다. 이런 연유로 화암사(花巖寺)라는 절 이름을 가지게 되었다고 전한다. 

 

극락전을 다시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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