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쿡의 선과 정토] 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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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쿡의 선과 정토] 지혜
  • 현안 스님
  • 승인 2022.11.16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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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쿡의 선과 정토 이야기(68)]
출처 셔터스톡

지혜란 무엇인가요? 지혜란 바른 지식이 풍부한 것입니다. 단순한 지식이 아니라 바른 지식이어야 합니다. 우리들은 사회에서 열심히 경쟁을 합니다. 더 좋은 학위를 위해서 열심히 고분군투합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명문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습니다. 그건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뭘 위해서 그걸 합니까? 모두 바른 지식을 얻기 위해서 하는 노력이 아닌가요? 예를 들어 우리가 경쟁해야만 할 때 경쟁하고, 경쟁하지 말아야 할 때 하지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 게 바로 바른 지식입니다. 그런데 우리 교육 시스템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보통 우리에게 지식의 축적만 장려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런 치우침에 균형을 줘야 합니다.

지혜란 앞서 말했듯 바른 지식이 풍부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바른 지식이란 무엇인가요? 바른 지식에는 지적인 지식도 포함됩니다. 지적인 지식을 거부하고, 영적인 것만 추구하는 게 아닙니다. 절에 온 참선반 학생들이 질문할 때, 스님에게 세속적인 질문을 해서 미안하다고 말합니다. 선은 그런 게 아닙니다. 선에는 그런 것이 모두 포함됩니다. 그것이 미국식 대승 수행법입니다. 우리는 여러분이 선을 통해서 더 좋은 문제 해결 능력을 얻길 바랍니다. 그것엔 세속적인 문제도 포함됩니다. 우리가 참선을 배우는 이유는 어려운 불교 용어를 이해하고 더 멋지게 설명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앞서 말한 바른 지식이란 세간적인 문제이든, 출세간적인 문제이든 풀 수 있어야 합니다. 불교에서는 바른 안목을 키울 수 있는 특화된 훈련법이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선(禪)입니다. 우리의 마음을 개발할 수 있는 방법입니다. 선 수행은 우리가 바른 지식을 얻을 수 있는 힘을 키워줄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박사 논문을 써야 합니다. 그러면 우린 그 박사 논문을 쓰기 위해서 경쟁하고, 분석해야 합니다. 그리고 논문을 마치면 그 생각하는 마음을 멈춥니다. 하지만 우리는 현실 속에서 생각하는 마음을 멈출 수 없습니다. 바른 자식이 있는 사람은 그런 능력이 있습니다. 그래서 분석하고 생각하는 마음이 필요하지 않을 때 의식을 끄고 멈출 수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지혜입니다. 우리의 의식, 즉 생각하는 마음이 더 생각할수록, 여러분도 더 생각합니다. 특히 필요할 때 더 그렇습니다. 지혜로운 사람도 필요할 때 마찬가지로 그렇게 합니다. 그러므로 불교에서는 세간적인 질문을 거부하지 않습니다. 생각하는 마음 즉 의식을 거부하는 게 아닙니다. 다만 더 잘 사용하는 방법을 배우는 것입니다. 비판하거나 버리는 게 아닙니다. 사용해야 할 때 써야 합니다. 현실 세계에서는 분석하기 위해서 마음을 써야 합니다.

그리고 그게 끝나면 의식을 멈추게 할 수 있는 기회가 있습니다. 분석해야 할 때가 아니라면, 우리가 생각하는 마음을 사용해야만 할 때가 아니라면 사용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런데 보통 사람들은 그걸 멈추질 못합니다. 그게 지혜로운 사람들이 알고 있는 비밀입니다. 지혜로운 사람들도 필요할 때는 분석하기 위해서 의식을 사용합니다. 그리고 나서 일이 끝나면, ‘일이 끝났어! 이제 그만해도 되겠군’이라고 합니다. 지혜로운 사람도 의식을 사용해서 분석합니다. 그리고 ‘내가 해야 할 걸 다 했나? 최선을 다했나?’ 그리고 나서 ‘응, 다 했어’ 그럼 멈춥니다.

그런데 우리는 의식을 멈출 수 없습니다. 그래서 단지 스스로를 두들겨 패고 있습니다. 그게 자신을 다치게 하고 있는 겁니다. 스스로를 피곤하게 만듭니다. 그래서 행복하질 못합니다. 우리가 의식을 멈추게 하면 무슨 일이 생기나요? 놀라운 일이 생깁니다. 바른 선택을 하게 됩니다. 더 좋은 선택을 합니다. 우리의 생각하는 마음으로는 할 수 없는 바른 선택을 합니다. 우리가 바른 선택을 한다는 것은 가능한 최선의 선택이란 뜻입니다. 그게 지혜로운 이들이 하는 일입니다. 우리가 싸울지 말지, 경쟁을 계속해야 할지, 양보해야 할지 선택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혜로운 사람이 경쟁하지 않고, 사회에 신경 쓰지 않는다는 것은 오해입니다. 진정으로 지혜로운 사람이라면 그와 정반대입니다. 그들은 무진장 경쟁하고 사회에 기여합니다. 하지만 그들은 바른 기여를 합니다. 우리와 같이 보통 사람과 똑같이 작동하지 않습니다. 우린 얼마나 돈을 벌지, 얼마나 더 유명해질 수 있는지에 기반해서 작동합니다. 반면에 지혜로운 사람은 ‘내 가족, 내 친구, 내 전문 영역을 도우려면 뭘 하는 게 최선일까’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불교 명상을 왜 하는데? 그게 어떻게 도움이 되는데? 라는 의문이 있다면 이게 바로 그에 대한 답입니다. 불교의 명상이란 의식을 필요할 때 사용하고 필요 없을 때 멈출 수 있도록 배우는 과정입니다.

참고법문: 영화 스님의 ‘여래선에 대해서’(2012년 9월 1일)

 

현안(賢安, XianAn) 스님
2012년부터 영화 선사(永化 禪師)를 스승으로 선과 대승법을 수행했으며, 2015년부터 미국에서 명상을 지도했다. 미국 위산사에서 출가 후 스승의 지침에 따라 한국으로 돌아와 현재 분당 보라선원(寶螺禪院)에서 정진 중이다. 국내 저서로 『보물산에 갔다 빈손으로 오다』(어의운하, 2021)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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